다도해가 펼쳐지는 비경(祕境), 파도와 바람이 부서지는 절벽 끝에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나무 뒤로 비계(임시 가설물)를 설치하고 그 위로 흰 천을 씌운다. 순식간에 흰 천은 거대한 캔버스로, 나무는 작품으로 변신한다. 이제 이 순간을 남겨야 할 시간이다.
카키색 벙거지 모자와 체크무늬 바람막이를 입은 사진작가 이명호(47)가 본인 키보다 더 높이 설치된 카메라 앞에 박스를 밟고 올라섰다. 리아스식 해안 절벽 꼭대기에 있는 나무와 시선을 맞추기 위해서다. 고요함 속에 부서지는 파도 소리만 들린다. 가끔 새도 지저귄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렌즈를 가만히 응시하던 그가 드디어 셔터를 눌렀다. 달려가 보니 피사체인 나무가 거꾸로 찍혀 있다.
카메라의 기본 원리는 뒤집어 찍힌다. 우리가 흔히 보는 건 반사경을 사용해 한 번 더 굴절시킨 것이다. 그러나 그는 반사경이 없는 필름 카메라를 사용한다. 그는 이 작업을 이렇게 표현한다.
<거꾸로 본다/달리 본다/ 잘 (다시) 본다.>
“인위적인 것을 최대한 빼고 나무의 숨결을 오롯이 가져오고 싶었어요. 필름 카메라는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으니 한 컷 한 컷 집중해 찍게 돼요. 뒤집혀 있으니깐 더 자세히 꼼꼼히 보게 되고요.”
그는 유학 한번 하지 않은 순수 토종 사진작가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미국 장 폴 게티 미술관, 프랑스 국립도서관, 암스테르담 사진 미술관 등 세계적인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엘턴 존, 우디 앨런, 저스틴 팀버레이크 등 세계적인 스타들도 그의 팬이다. 대표작은 ‘나무 시리즈’, 별명도 ‘나무 작가’다. 미국, 중국, 러시아, 브라질 등 전 세계를 다니며 나무를 촬영해 온 그는 3년 전부터 전남 해남군 골프장 ‘파인비치’에 있는 소나무를 촬영하고 있다.
작품 속 나무를 보러 가고 싶은데 골프를 치지 않는다고 낯설어할 필요는 없다. 미국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 중 하나인 ‘17마일 드라이브’를 타고 달리다 보면 나오는 골프장 ‘페블비치’처럼, 해남 오시아노 해변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파인비치’가 보인다. 골퍼가 아니더라도 파인비치는 편안하게 들어갈 수 있다. 페어웨이 대신 산책로를 걷고 이명호 작가의 나무를 구경한 다음 식당에서 남도 음식을 먹어보자. 여기서부터 땅끝 해남 여행이 시작된다.
◇오시아노의 ‘나무’
파인비치는 말 그대로 소나무가 많은 골프장이다. 그 나무 중 이명호는 왜 이 나무를 골랐을까. “대상을 보다 보면 ‘이거다’ 하는 느낌이 와요. ‘나야’라며 말을 걸어오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렇게 말을 걸어와도 열 번은 더 와 봐요. 주관적 기준을 객관화시키는 작업이에요. 작가의 자격은 내 작품을 남 거 보듯이 할 수 있느냐는 것이지요. 또 보고, 또 보면서 내가 느낀 감정을 남들도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일치화하는 작업이에요.”
촬영하는 순간에도 기다림의 과정을 거친다. “대상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나 준비됐으니깐 찍어줘’라고 말을 건네요. 그런 말을 건네지 않으면 다음 날, 그 다음 날 또 와서 기다리지요. 그렇게 정성을 들이다 보면 그게 작품에도 반영돼요. 태도가 작품을 만드는 거죠.”
그는 보통 한 나무를 찍을 때 사계(四季)를 다 본다. “소나무는 한결같이 푸르지만, 주변 환경이 다 변해요. 그게 참 이상한 느낌을 줘요. 나무 혼자 정지해 있고 나머지만 시간이 가는 것 같은.”
그와 갔던 3월은 겨울이 끝나고 봄이 틀 무렵이다. “겨울의 나무가 한 폭의 동양화, 잿빛 수묵화 같다면, 3월의 나무는 색이 입혀지기 시작하는 수묵 담채화 같아요. 4월의 나무는 더욱 색이 진해지며 봄기운이 만연하겠지요.”
이곳의 봄 소나무 사진은 싱어송라이터 이린재의 앨범 ‘나무’의 표지로도 쓰였다. 그의 타이틀곡 ‘나무’의 가사는 이렇다.
“안간힘을 쓰며 새싹을 틔우네요/.../그리고 꽃도 피울 거예요/ 꽃이 떨어진 자리에 열매도 맺을게요.”
◇법정 스님 生家 터
이명호가 나무 뒤에 흰 천을 대기 시작한 건 대학원생 시절 ‘사진이란 무엇일까’라는 담론에 대해 고민한 결과다. 그는 사진에 대한 정의를 내리려면 흔하고 사소한 대상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작가란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것, 있어도 없고, 봐도 보지 못했던 것들을 주목해서 드러내는 게 아닐까.’ 사소하고 흔한 소재, 그래서 그는 나무를 생각했다. 그의 첫 나무 작품 대상은 모교인 중앙대 대학원 건물 앞 나무다.
“제가 생각하는 사진이란 ‘환기(喚起)’예요. 250분의 1초, 그 짧은 시간에 필름 한 장을 시공간에 넣었다가 빼는 것. 세상 만물에는 똑같은 가치가 있고, 그 가치를 사진이라는 도구를 통해 복권시켜주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는 천으로 나무를 가린 적이 있다. 2020년 고은사진미술관에서 가진 전시에서다. 아무것도 없는 물결 위에 흰 천만 놓여 있다. 작품명은 ‘낫싱 벗(Nothing but)’. “전 그동안 ‘드러내는(나타나게 하는)’ 작업을 해 왔는데, 그 단어는 ‘들어내다(사라지게 하다)’와 발음이 같은 거예요. 작가가 어떤 사물을 나타낼 수 있는 뷰포인트는 무한대잖아요. 그걸 저라는 작가 한 명이 촬영하면 무한대 분의 1, 결국은 0이 돼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돼 버려요. 그런데 이게 무한대가 되게 하는 방법이 뭔 줄 아세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에요. 어떻게 보면 동양적이고 불교적인 사고방식이에요. 다 비우면 다 채운 것이고, 다 채우면 다 비운 것이 되는.”
종교가 없지만 이런 그의 생각은 불교, 특히 법정스님의 무소유와 통한다. 법정의 생가도 해남에 있다. 전남 문내면 법정스님 생가터에는 그의 정신을 기리는 마을 도서관이 올해 초 들어섰다. 그 앞에는 스님이 생전 머물던 송광사 불일암에 보관돼 있던 빈 나무의자가 실물을 본떠 똑같은 크기로 설치돼 있다. 팔걸이 하나 없는 이 단순한 모양의 나무 의자는 탐욕스러운 세상, 비움이 곧 채움이라는 그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는 듯하다. 그 뒤로 설치된 법정 스님의 뒷모습을 담은 포토존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달마산 도솔암
이명호는 산을 즐겨 오른다. 산이 좋아 작업실도 북한산을 가운데에 두고 그 테두리를 옮겨가며 잡는다. 북한산은 악산이다. 이렇게 바위가 많은 산은 산이 뼈를 드러낸 것으로 좋은 게 아니라고 하지만, 종교인들과 예술인들에게는 잘 맞는다고 한다. 절이나 암자가 악산에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가 해남에서 종종 찾는 곳도 바위산인 달마산이다.
해발 489m인 달마산은 남도의 금강산이라고 불릴 만큼 수려한 산세를 자랑한다. 능선은 울퉁불퉁한 암봉으로 동서 8㎞가 넘게 형성돼 있다. 정상으로만 이어지는 등반길에선 멀리 바다와 섬들, 꽃피는 들판을 볼 수 있다. 바위 능선을 따라 걷다 보면 상록수가 어우러져 있다. 토종 들꽃들도 장관을 이룬다. 대여섯 시간의 종주가 자신 없다면, 도솔암 근처까지 차로 올라가는 방법도 있다. 주차장에서 15분 정도 산능선을 따라 걸으면 도솔암이 나타난다. 현생에서 내세(來世)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대지가 높다고 나무가 없을 리 없다. 이곳의 나무들은 달마산의 바위들과 톤이 비슷하다. 조각가 안토니 곰리의 “모든 유기체는 개별적인 존재 같아도 다 부분 간의 관계로 이어져 있다”는 말이 떠오른다. 도솔암 옆 나무들은 기와를 피해 자라나 있다. “나무는 눈이 있어서 자라면서 다 피해간대요. 나무는 생각보다 똑똑해요. 은행나무는 암수가 자라다가 성비가 안 맞으면 성을 바꿔요.”
도솔암은 미황사를 창건한 신라시대 의조화상이 도를 닦으며 낙조를 즐겼던 자리라고 한다. 전국 각지에서 수행하는 스님들이 많이 찾아온다. 예불을 마치고 조석(朝夕)으로 보는 붉게 물드는 하늘이 마치 미륵보살의 정토인 도솔천 같다.
미황사는 달마산의 중간 지점, 산 중턱 비교적 낮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불교 해로 유입설을 뒷받침하는 고찰이다. 해남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찰이라고도 불린다. 대웅전은 보물 제947호로서 그 규모나 정교함에 있어서 매우 훌륭한 건물이다.
◇송호해수욕장의 ‘해송’
이명호가 해남에 처음 온 건 20년 전 봄이다. 당시 그는 누나로부터 10년 된 중고차 아반떼 한 대를 물려받았다. 그 차를 타고 무작정 해남으로 향했다. 한반도의 끝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우연히 TV에서 본 소설가 김동리의 말 때문이었다.
<남도의 봄빛을 보지 않고서는 초록을 논하지 마라.>
그렇게 도착한 해남 땅끝마을에서 그는 너무 실망했다고 한다. 청량한 초록도, 드넓은 망망대해도 없었다. 땅끝임을 알리는 표지석과 양식장이 전부였다. 실망하고 돌아서는 길. 드라이브 코스가 멋졌다. 땅끝 해안도로 양옆으로 봄꽃과 나무가 펼쳐졌다. 그러다 병풍 같은 해송들이 보였다. ‘송호해수욕장’이다. “해송과 산송은 같은 소나무라도 그 모양이 달라요. 산송이 조금 더 오래되고 우람하다면, 해송은 조금 더 가늘고 조밀하죠.”
그는 이곳 백사장에 해가 질 때까지 앉아 있었다. 나무도 찍고, 바다도 찍고, 해가 진 후 별 사진도 찍었다. 그리고 성철 스님의 말씀을 떠올렸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그의 첫 작업실은 서울 청운동에 있던 스물세평짜리 한옥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대청마루에 앉아 예술에 대한 생각을 싹틔웠다. “한옥은 덴조(천장을 막아 파이프를 가리려고 만든 벽)가 없어 층고가 높아요. 창의적인 생각이 잘 나게 하는 공간이지요.”
해남 대흥사 안에 위치한 84년 된 숙소 ‘유선관’이 그러한 곳이다. 전남 해남 두륜산에 자리한 대흥사까지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십리 숲길. 소나무, 동백나무, 왕벚나무가 빽빽하게 우거져 있다. 한국 영화계 거장 임권택 감독이 ‘서편제’를 촬영한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여관’으로 알려진 이곳이 최근 한옥 호텔로 거듭났다.
“나중에 이런 제대로 된 작업실을 갖는 게 목표예요. 벌써 이름도 정해놨어요. 제 성인 오얏나무 리에 쉴 휴를 더 해 ‘이휴(李休)’. 나무 아래에서 태어난 놈이 나무에 기대어 산다는 뜻이에요. 전 꽃보다 나무가, 바다보다 산이 더 좋아요. 왠지 기대어 쉴 수 있는 포근한 느낌이 들거든요. 나무와 산이 멋진 해남도 마찬가지예요. 20년 뒤에 또 오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