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천국’, ‘지상낙원’. 한국 사회가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회사원 박지우(42)씨도 낭만적인 이 말에 끌려 2014년 스웨덴으로 향했다. “당시 국내 언론과 방송에 나온 북유럽은 정말 혹할 정도로 멋지더라고요. 마침 회사에서 스웨덴 지사에 발령 낼 사람을 찾기에 곧바로 지원했죠.”
3년간 스웨덴에서 살다 귀국한 박씨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며 틈틈이 스웨덴에서 보고 듣고 겪은 것들을 차곡차곡 글로 정리했고, 올해 초 책으로 펴냈다. 제목은 ‘행복한 나라의 불행한 사람들’. 박씨는 “완벽한 지상낙원은 없더라. 언론과 방송을 통해 접한 스웨덴과 실제로 제가 겪고 살펴본 스웨덴은 많이 달랐다”고 했다.
-책 제목대로라면 스웨덴 사람들은 불행하다는 건가?
“아니다. 스웨덴 국민에겐 스웨덴이 행복한 나라일 수 있다. 이 책은 철저히 한국인의 시각으로 스웨덴 사회를 바라본 것이다. 한국인에게 스웨덴 같은 나라는 불행한 나라가 될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더불어 스웨덴 같은 복지 국가에도 불행하고 가난한 사람이 분명히 있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다.”
-스웨덴에 가난한 사람들이 있다니 상상이 안 된다.
“수도인 스톡홀름 거리에 놓인 쓰레기통을 뒤지며 공병을 모으는 노인들을 보고 충격받았다. 젊은 시절 일자리를 갖지 못해 나라에서 지급하는 월 100만원 정도의 기초연금으로 생활하는 분들이다. 세금 떼고 높은 주거비를 제하면 생활비가 부족해 공병을 팔아 근근이 살아간다. 한국 언론과 방송에서는 전혀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모습이다.”
-스웨덴 고령층은 풍족한 연금으로 풍요로운 노후를 누리지 않나.
“분명히 한국보다 노인 빈곤율이 낮고 연금을 많이 받는다. 하지만 세율이 높고 물가와 주거비가 비싸기 때문에 실제 생활이 그렇게 여유롭지는 않다.”
-스웨덴의 무상 의료에 대해 비판적이던데.
“한국은 과잉 진료가 문제일 수 있지만, 스웨덴은 무상 의료라 정부가 의료 수요를 가능한 한 제한하려는 경향이 다분히 강하다. 스웨덴 국민 한 사람이 1년에 부담하는 병원비 상한액은 최고 15만원, 약값은 연 30만원이다. 그 이상을 넘어가면 아무리 중병이라도 치료비를 전부 정부가 부담한다. 하지만 의사를 만나려면 상담원을 통해야 하고 가벼운 질환으로는 예약을 받아주지 않는다. 예약에 성공해도 의사를 만나려면 최소 3일에서 길면 한 달 넘게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스웨덴 사람들은 아파도 바로 병원에 가지 못하고 집에서 쉬는 게 보통이다. 보통 1년에 의사를 만나는 횟수가 2~3번에 그칠 정도로 의료 접근성이 낮기 때문에 대부분이 연 병원비 상한액을 채우지 못할 정도로 의료 서비스를 적게 받는다. 대기 없이 병원에 가고 싶은 사람은 값비싼 민간 보험에 가입해 보험회사와 연계된 민간 병원에 간다.”
-진료·치료 방법도 제한된 건가.
“스웨덴에서는 병원에서 CT 촬영을 하는 게 친구 사이에서 자랑할 정도로 희귀한 일이다. 스웨덴 산모 대부분이 출산 기간 내내 의사를 거의 보지 못하고 간호사의 처치와 상담만 받고 아이를 낳는다. 입원도 오래할 수 없다. 의료 인력과 병상이 부족해 자궁 적출 수술 같은 큰 수술을 받아도 1~2일 만에 퇴원해 집에서 요양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스웨덴 친구가 손가락이 베여 출혈이 심해 응급실에 갔는데 수 시간을 기다려도 치료해주지 않아 항의했더니 ‘그 정도로 죽지는 않는다’고 답했다더라(웃음).”
-대학교까지 이뤄지는 무상교육도 한국인에겐 부러움의 대상이다.
“단점도 없지 않다.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은 전통적으로 평등주의 문화가 강하다. 누가 뛰어난 재능을 보이면 칭찬하고 독려하는 게 아니라 ‘너도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 겸손하라’고 가르친다. 누구를 칭찬했을 때의 이점보다 그 칭찬을 듣는 다른 사람이 느낄 상대적 박탈감을 더 중시하는 분위기다. 교육 시스템도 실력이 뛰어난 아이들을 더 키우는 게 아니라 뒤로 처지는 아이들이 평균 수준에 따라오도록 하는 데 방점이 찍혀있다. 이런 방식이 한국의 뜨거운 교육열과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한국에선 북유럽을 예로 들며 부자 증세를 주장한 경우가 적지 않았는데.
“스웨덴은 오히려 사회민주주의와 고(高)복지를 유지하기 위해 친기업·친부유층 정책을 펼치고 있다. 부유층에 적용되는 최고 세율이 52%인데, 이를 적용하는 기준이 평균 연봉의 1.5배 수준이다. 대략 연봉이 6800만원이 넘으면 연 수십억을 버는 사람과 똑같은 최고 세율이 적용된다. 한국은 연소득이 10억원을 넘어야 최고세율 구간에 들어가고, 최고 세율이 49.5%다. 상대적으로 보면 한국의 부유층이 세금 부담이 더 크고, 최고 세율만 봐도 스웨덴과 한국의 차이가 크지 않다. 1983년까지 70%에 이르던 상속세와 증여세는 2004년에 폐지됐다. 따져보면 부자 증세는 스웨덴보다 한국이 더 가깝다.”
-왜 그렇게 된 건가?
“부자에게 세금을 많이 부과하니 많은 부유층과 기업들이 해외로 이전했다. 그러니 양질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그만큼 세수도 줄어 고복지를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결국 스웨덴 정부는 국내의 기업 활동을 유지하기 위해 법인세를 낮추고 상속세도 폐지했다. 가족 내 경영권·재산 상속을 완전히 인정해준 셈이다. 그렇게라도 기업이 국내에 있어야 일자리와 고용이 유지되고 중산층이 막대한 세금을 내 복지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식의 사회적 대타협이 이뤄진 것이다.”
-결국 중산층이 내는 세금이 고복지의 핵심 재원이라는 건가.
“스웨덴 상위 10% 소득자가 스웨덴 전체 소득세에서 부담하는 비중은 27%인 반면 우리나라는 상위 10%가 전체 소득세의 70%를 부담한다. 저소득층의 세금 부담도 스웨덴이 훨씬 크다. 한국에서는 소득세를 면제받는 비율이 40%에 가깝지만, 스웨덴은 소득세를 면제받는 국민이 6.6%에 불과하다. 중산층과 저소득층이 세금을 많이 내고 그만큼 혜택을 받는 게 스웨덴식 복지인데, 한국에서는 이런 시스템에 반대할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평등주의 속에 불평등이 숨어 있다는 뜻일까.
“통계로 보면 스웨덴은 소득 격차가 매우 적다. 이건 조세나 복지 때문이 아니라 역사적·문화적으로 임금 격차가 적기 때문이다. 대졸자가 고졸자보다 소득이 22% 정도 더 높은데 OECD 평균인 57% 차이보다 훨씬 낮다. 그런데 자산을 보면 빈부 격차가 심각한 곳이 스웨덴이다. 스웨덴은 상위 10%가 전체 자산의 75.3%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상위 1% 부자가 스웨덴 전체 자산의 37.4%를 차지하는데 이는 미국 1% 부자가 35.4%를 차지한 것보다 더 크다. 자산으로만 보면 스웨덴은 세계에서 셋째로 불평등한 나라다.”
-그래서 스웨덴에서 도박이 유행하는 건가.
“스웨덴은 온라인 베팅 카지노를 허용하는 등 도박 규제가 약한 편이다. TV를 켜면 도박 광고가 많이 나온다. 대부분 ‘한방으로 인생 역전을 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수퍼마켓에 가면 도박 상품이나 마권을 사려고 길게 줄을 선다. 자산 불평등에서 기인한 현상이라고 본다.”
-양극화 문제를 풀려면 복지를 더 늘려야 한다는데.
“제가 보기엔 복지는 양극화를 없애는 기능이 거의 없다. 의료보험은 아픈 사람이 건강한 사람의 돈을 가지고 가는 셈이고 국민연금도 금방 죽는 사람이 장수하는 사람한테 자기 돈을 나눠주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복지는 모두에게 최소한의 삶의 안정성을 부여하면서 각자 가진 리스크를 대비하는 수단이지 부자의 돈을 가난한 사람한테 나눠주는 재분배 기능은 크지 않다. 스웨덴만 보더라도 소득 불평등이 적지만 자산 불평등이 크지 않나. 결국 양극화를 없애려면 가능한 한 기업 활동을 많이 유치해 경제 성장과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고 본다.”
-너무 우파적인 결론 아닌가?
“답이 우파적이라는 건 인정하지만, 정치 성향 때문에 그런 건 절대 아니다(웃음). 스웨덴에서 겪고 본 것을 공부하다 보니 자연스레 그런 생각을 갖게 됐다. 분명한 건 사회민주주의 체제라고 해서, 고복지 체제라고 해서 빈부 격차가 없다거나 적다는 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스웨덴과 한국의 차이는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되는 걸까.
“한국에는 ‘스스로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고 능력이 있으면 계층도 상승할 수 있는 사회가 더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스웨덴을 겪어보니 한국도 스웨덴만큼 장점도 많고 긍정할 부분이 많은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준용 주말뉴스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