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6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아카데미 박물관에서 열린 '파친코' 시사회에서 모자수 역할을 연기한 배우 박소희가 두 개의 배지를 가리키고 있다. 그는 "오른쪽엔 한반도, 왼쪽엔 일본 열도"라며 "자이니치(재일 한국인)로서의 내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 직접 만들었다"고 했다. /게티이미지

레드카펫 위에 선 남자의 가슴엔 두 개의 배지가 달려 있었다. 지난 3월 16일(현지 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아카데미 박물관에서 열린 애플TV+ 드라마 ‘파친코’ 글로벌 시사회.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에 빛나는 배우 윤여정, 아시아 톱스타 이민호 등 쟁쟁한 배우들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지만, 그는 기죽지 않았다. 카메라를 향해 양 손가락으로 배지를 가리키며 “오른쪽 가슴엔 한반도, 왼쪽엔 일본 열도 지도다. 자이니치(在日·재일 한국인)로서의 내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 직접 만들었다”고 했다.

극 중 선자(윤여정)의 둘째 아들 모자수를 연기한 이 배우는 아라이 소지(47). 하지만 본명이 아니다. 진짜 이름은 박소희. 일제강점기 부산 영도에서 오사카로 건너간 여성 백선자를 중심으로 한국·일본·미국을 가로지르는 4대에 걸친 가족사를 담은 이 드라마에서, 출연 배우 중 유일한 ‘진짜 자이니치’다. 1975년 니가타현에서 자이니치 3세로 태어나 도쿄 와세다대를 졸업했고, 연극 무대에서 시작해 올해 배우 데뷔 20년 차를 맞았다. 2012년 미국으로 거점을 옮겨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다 인생작 ‘파친코’를 만났다. 그는 “이민진 작가가 동명 원작 소설을 쓰기 위해 도쿄에서 인터뷰한 수십 명의 자이니치 중 한 명이 바로 나”라며 “파친코는 나와 우리 가족, 내 친구들의 이야기”라고 했다.

‘파친코’는 지난 3월 25일 1~3화가 전 세계 동시 공개된 직후부터 호평이 쏟아졌다. 비평 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신선도 지수 100%를 기록했고, 외신에선 “눈부신 한국의 서사시”(BBC), “강렬하게 마음을 뒤흔드는 시대를 초월한 이야기”(할리우드 리포터), “쉽게 볼 수 없었던 보석”(포브스) 등 찬사가 이어졌다. 애플TV+는 지난달 29일 마지막 에피소드인 8화를 공개한 지 하루 만에 시즌2 제작을 알렸다. 박소희는 시즌2에서도 모자수로 활약할 예정이다. 데뷔 이래 최고의 전성기를 맞은 그를 화상으로 만났다.

드라마 '파친코'에서 모자수(박소희·오른쪽)가 어머니 선자(윤여정)와 함께 부산을 찾아 찍은 장면. /애플TV+

◇내 이름은 박소희, 한국 심장을 가졌다

-‘파친코’ 인기를 실감하나.

“10년째 미국에서 배우를 하면서 이런 반응은 처음이다. ‘파친코’ 글로벌 시사회 때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굉장히 많이 왔다. 할리우드에 성공한 아시아계 미국인이 이렇게 많았구나 하는 깨달음과 함께 처음으로 이 사회에 속해있다는 소속감과 연대 의식을 느꼈다. 제 소셜미디어로도 전 세계에서 많은 분들이 응원 메시지를 보내주고 있다.”

-어떤 메시지인가.

“드라마 보면서 울었다, 감동받았다는 반응이 제일 많고, 배우님 섹시하다는 말도 있었다(웃음). 영어, 한국어, 일본어뿐 아니라 포르투갈어, 스페인어로도 문자가 온다. 어릴 때 이후 소식이 끊긴 자이니치 친구들도 자랑스럽다고 연락을 해왔다. 많은 자이니치들이 ‘우리의 역사와 자이니치 커뮤니티를 대변해줘서 고맙다’는 얘기를 해줘서 뿌듯하고 기쁘다.”

-어떻게 ‘파친코’에 출연하게 됐나.

“2년 전 애플TV+가 ‘파친코’를 드라마로 만든다는 기사를 보고 바로 소속사에 전화했다. 이건 내 이야기니까 꼭 하고 싶다, 오디션이 시작되면 바로 연락해달라고 했다. 아마 내가 ‘파친코’ 원작 소설의 ‘1호 독자’일 거다. 이민진 작가가 2007년부터 도쿄에 4년간 체류하면서 수십 명을 취재했는데, 그때 작가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었다. 알고 지내던 잡지 편집장이 작가를 소개해줬고, 자이니치에 대한 책을 쓸 거라고 해서 저와 우리 부모님, 삼촌들이 살아온 얘기를 해드렸다. 다른 자이니치 친구들도 소개했다. 소설이 나온 2017년, ‘드디어 나왔구나!’ 하면서 곧바로 서점으로 달려가 책을 샀다. 맨 뒤에 작가가 쓴 ‘감사의 말’에도 내 이름이 나온다.”

-원래 선자의 손자인 솔로몬 역으로 오디션을 봤다던데.

“제가 자이니치 3세에다 영어도 할 줄 알고 미국에서 일하고 있으니까 솔로몬과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솔로몬을 맡기엔 내 나이가 많았나보다. 오디션이 진행되다가 어느 순간부터 연락이 없었다. 이건 진짜 내 얘기인데, 내가 꼭 해야 하는데 하고 슬퍼하고 있는데 갑자기 모자수 배역으로 오디션을 받아보라고 제안이 왔다. 모자수? 한 번도 생각지 못했던 배역이라 급하게 오디션이 진행됐다. 7페이지짜리 대본을 23시간 전에 받아서 연습하고 영상을 보내는 식이었다. 한국어로 말하는 영상도 보내달라고 해서 2~3분짜리 스피치 영상을 제출했다.”

-무슨 영상이었나.

“자이니치 1세대인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한국말로 했다. ‘선자는 우리 할머니 같은 존재입니다.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저는 한국말을 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할 수 있어요. 할머니와 한국어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한국 심장을 가진 제가 이 역할을 맡는다면 천국에서 할머니가 분명 자랑스러워하실 겁니다.’ 영상을 본 제작진들이 모두 감동받았다고 나중에 감독님께 전해들었다.”

박소희가 어린 시절 할머니와 함께 집 앞에서 찍은 사진. 그의 할머니는 드라마 속 선자(윤여정)처럼 자이니치 1세대다. /박소희 제공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

박소희의 조부모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왔다.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할아버지는 공사판에서 일을 했고 할머니는 쇠붙이를 모아다가 팔았다. 아버지는 일본 내 유일한 교포신문인 통일일보 기자이자 운동가였고, 어머니도 미용사로 일하며 재일 한국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부모님은 대학 시절 어렸을 때부터 써온 일본 이름을 버리고 한국 이름을 택했다. 장남이 태어나자 ‘박소희’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자이니치로 일본에서 살면서 차별받은 경험이 있었나.

“어릴 때 재일 한국인을 위한 학교가 아니라 일반 일본 학교에 다녔다. 자이니치 3세가 한국 이름만 쓰는 경우는 정말 드물다. 학년이 바뀔 때마다 전쟁터에 나가는 기분이었다. 자기 소개를 해야 하는 순간이 무서웠다. ‘박? 무슨 이름이 그래?’ ‘너 한국인이야?’ ‘김치 냄새 난다’는 말을 들었다. 우리 집 현관에서 삐뚤빼뚤한 일본어로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고 적힌 메모를 발견한 일도 있었다. 어머니는 읽을 필요도 없다고 바로 찢어버리셨다. 참다 못해 한국 학교로 전학 가고 싶다고 말한 적도 있었지만, 아버지는 ‘안 돼.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자이니치로서 당당하게 일본 학교에 다녀라. 그게 너에게도 일본 사회에도 좋을 일일 거다’라고 하셨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그런 일을 겪었나.

“다행히 심한 차별을 경험하지는 않았다. 배우가 되고 나서도 박소희라는 본명으로 활동했다. 주변을 보면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숨기고 살 때 더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언제 밝혀질지 몰라서 두려워하고 전전긍긍하는 친구들을 많이 봤다. 저는 처음부터 공개했기 때문에 인생이 간단해졌다. 일본인 친구들도 내게 적극적으로 다가와서 한국에 대해 묻고 허심탄회하게 얘기한다. 부모님이 옳은 선택을 하신 것에 대해 감사드린다.”

-모자수는 당신 아버지 세대의 얘기다. 모자수를 연기하면서 아버지를 더 이해하게 됐나.

“사실 선자 같은 1세대는 완전히 한국인이다. 한국어를 구사하고, 주변에도 한국인 사회가 형성돼 있다. 반면 2세대인 노아나 모자수는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첫 세대다. 일본에서 태어났고 이름도 일본 이름인 경우가 많은데 핏줄은 한국인이다. 일본 사회에서 살아내기 위해서 더 강해져야 했던 세대다. 상당수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았고, 일본인으로 살아가길 원했다. 정체성의 혼란을 극복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반면 모자수는 강한 사람이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파친코 사업을 하며 열심히 일했다. 내가 어릴 때 보며 자란 아버지나 삼촌, 그들의 친구 같은 자이니치 2세들도 멋진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성실한 일꾼이고, 말솜씨가 좋고, 돈도 많이 벌었다. 일본에서의 한국인 차별에 맞서 싸우기도 했다. 모자수 역할을 연기하면서 그런 이미지들을 많이 녹이려고 했다.”

-모자수처럼 파친코는 실제로 자이니치들이 많이 하는 사업이다.

“일본에서 파친코는 누구나 즐기는 오락이지만 음지의 비즈니스 취급을 받는다. 일본인들은 더럽다고 하지 않는 사업에 자이니치들은 살기 위해 뛰어들었다. 자이니치들은 공공 기관이나 민간 기업에 취업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해야 했다. 그래서 가수, 배우, 운동선수처럼 인기를 먹고 살거나 변호사, 의사처럼 자격증이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 많다. 성공한 사람 중 자이니치라는 걸 숨기는 이들이 많긴 하지만. ‘파친코’로 자이니치에 대한 관심이 많아진 지금이 좀 더 앞으로 나올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일본에선 이 드라마에 대해 반발한다는 얘기도 있는데.

“저는 사람들이 얼굴과 이름을 숨긴 채 하는 말은 믿지 않는다. 혐오성 발언을 하는 사람은 사실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 시청자도 호의적이고 좋은 리뷰를 많이 써주고 있다. 곤경 속에서 살아가는 한 여성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일본인이든 한국인이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드라마 '파친코'에서 모자수(박소희·오른쪽)가 어머니 선자(윤여정)를 모시고 할아버지 묘를 찾는 장면. 그는 "한국에서 자이니치의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라 가장 공감하며 찍었다"고 했다. /애플TV+

◇윤여정 액센트, ‘우리 한매’ 발음과 똑같아

-배우 윤여정과 모자(母子)지간으로 나왔다.

“윤여정 선생님과 연기할 수 있다니! 그를 카메라 밖에서는 ‘YJ’라고 불렀는데 촬영이 끝나면 자주 와인을 마시며 얘기를 나눴다. 부산에서 처음 뵀을 때 ‘함께 연기하게 돼 영광입니다’라고 했더니 ‘영광이라니, 나는 그런 단어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굉장히 쿨하고 멋진 분이다. 저 같은 자이니치 3세들이 한국과 연결됐다고 느끼는 게 바로 할머니를 통해서다. YJ가 일본어 대사를 할 때마다 말투가 할머니랑 너무 비슷해서 눈물이 났다. 우리 ‘한매’도 선자처럼 한국어 액센트가 강한 일본어를 구사했다. 드라마를 보는 수많은 자이니치들이 그 발음을 듣고 눈물을 흘렸을 거다.”

-윤여정과의 연기 호흡은 어땠나.

“YJ가 ‘소희, 일본어 좀 알려줘. 어떻게 하면 일본어 대사를 더 잘할 수 있을까’라고 하셨는데 ‘지금 이대로 너무 좋아요. 그게 바로 자이니치 1세대거든요. 우리 한매랑 똑같아요’라고 말씀드렸다. 처음에 그가 ‘자이니치라고 부르는 게 혹시 무례가 아니냐’고 묻길래 제가 답했다. 자이니치라고 부르셔도 돼요. 우리는 자이니치라는 게 자랑스러우니까요!”

윤여정도 기자 간담회에서 같은 에피소드를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는 “자이니치는 깔보는 말이 아니라고, 언어와 성씨를 지키며 살아온 자부심을 느끼는 호칭이라고 하더라. 그분들 국적도 없이 아무 데도 속하지 못한 채 설움 속에 살았던 세월을 생각하니 ‘내가 그걸 다 표현해야 되는데, 큰일 났네’ 했다. 몰랐던 걸 너무 많이 배웠다.”

박소희는 극 중 선자 아버지 묘를 찾으러 부산으로 건너가 촬영한 장면을 가장 공감한다고 꼽았다. 50년 만에 아들과 처음 고향 땅을 밟은 그녀에게 돌아온 건 홀대와 무시. 관청 공무원은 “일본 이름은 반도 노부코”라고 말하는 선자에게 “아, 그쪽 분이시구나” 하며 ‘진짜 국적’을 되묻는다. “할아버지 묘 좀 찾자는데 이게 무슨!” 모자수가 화가 나 버럭 소리를 지르자, 선자는 아들의 손을 지긋이 누른다.

박소희는 “일본에서도 자이니치에 대한 차별이 있지만, 한국에선 오히려 자이니치의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라며 “이 무지야말로 또 다른 의미의 차별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제가 한국에 오면 친구들이 ‘그런데 너는 일본인이잖아’라고 얘기한다. 저는 일본에서 한국 이름을 갖고, 한국인의 정체성으로 살았고, 한국인인 게 자랑스러운데도 정작 한국에 오면 일본인이 되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상처를 받는다. 이번 ‘파친코’ 시리즈를 통해서 자이니치 사회가 전 세계에 알려지길 바라지만, 특히 한국에서 우리의 존재를 알아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파친코'에서 모자수(박소희·가운데)가 어머니 선자(윤여정)를 모시고 할아버지 묘를 찾는 장면. 관청 직원(오른쪽)은 선자에게 '진짜 국적'을 계속 묻는다. 박소희는 "한국에서 자이니치의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라 가장 공감하며 찍었다"고 했다. /애플TV+

◇할리우드에서 뜻밖의 벽을 만나다

일본에서 이방인으로 자라면서 그는 늘 “강인해져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명문 사립대인 와세다대에서 무역을 전공했고, 어릴 때부터 동경했던 배우의 길을 택했다. 2002년 미국 유명 연출가 로버트 앨런 어커맨에 발탁돼 TPT(극장 프로젝트 도쿄)의 연극 ‘BENT’ 주인공으로 데뷔했다. 일본과 미국을 오가며 활동하다 2008년 어커맨 감독의 영화 ‘라멘걸’에서 브리타니 머피의 연인 역을 맡았다. 2012년 아예 미국으로 거점을 옮긴 건 “이민 대국인 그곳은 이방인의 나라니까, 그곳에선 ‘보통 사람’으로서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기 때문”이다. “할리우드에선 배역이 대부분 오디션을 통해 결정되니까, 도전하면 다양한 역할을 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일본에서 자랐기 때문에 일본어가 제일 익숙했고, 일본인 역할 오디션을 주로 보다가 뜻밖의 벽에 부딪혔다.”

-어떤 벽인가.

“7~8년 전 할리우드에서 갑자기 일본인만 일본인 배역 오디션을 볼 수 있다는 규정이 생겼다. 게이샤 역할을 중국 배우가 연기했다가 일본 문화계의 항의를 받은 적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일본인 배역 오디션을 보러 가면 “소희 박? 넌 한국인이잖아”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설마 이민 대국의 나라에서 그런 말을 들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당황스러웠다. 나는 재일 한국인이고 일본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일본어가 능숙하다고 얘기해도 ‘일본인이 아니니까 안 돼’라고만 했다. 오디션을 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으니 힘들었다. 아버지께 상의했더니, ‘그럼 예명을 만들자. 그래봤자 너의 정체성은 그대로다’라는 말씀을 해주셔서 아라이 소지라는 예명을 만들게 됐다. 아라이는 친가 쪽에서 쓰던 일본 성이다. 일본에서도 한 번도 쓰지 않던 일본 이름을 미국에 와서 쓰게 되다니,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쉴 때는 주로 무엇을 하나.

“무술을 훈련한다. 어릴 때부터 일본에서 박소희로 살려면 강인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몸도 강해지고 싶었다. 언제든지 액션 연기를 펼칠 수 있게 준비가 돼있다(웃음).”

-소셜미디어에 한국과 K팝, K드라마에 대한 애정이 흘러 넘치더라.

“30년 전부터 한국 드라마를 좋아해서 집에서는 한국 유선방송만 봤다. 2004년 연세어학당에서 6개월 한국어 연수를 한 것도 모국어를 잘하고 싶다는 마음 반, 언젠가는 한국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마음 반이었다. 최근에는 ‘이태원 클라쓰’와 ‘오징어 게임’을 재밌게 봤다. 틈날 때마다 한국을 여행하길 좋아해 부산 감천마을이나 서울 서촌 등을 여행하며 찍은 사진도 많다. 지금도 2002년 월드컵의 한국과 이탈리아 경기를 돌려본다. 안정환 선수의 골든 골 장면은 여전히 저에게 용기와 희망을 준다.”

박소희가 부산 감천마을을 여행하며 벽화 앞에서 찍은 사진. /박소희 제공

-한국어 실력은 어느 정도인가.

“글쎄, 서울 가서 택시를 타면 부산 사람인 줄 아시더라. 하하!”

-배우로서 앞으로의 계획은?

“한국 영화에 출연하는 게 꿈이다. ‘올드보이’ ‘살인의 추억’ ‘신세계’를 가장 좋아하고, 봉준호 감독, 박찬욱 감독이 우상이다. 한국인 역할을 하기엔 무리겠지만, 일본인이나 자이니치 캐릭터가 있다면 누구보다 잘할 수 있다. 유재석씨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가 진행하는 예능 프로에 꼭 나가고 싶다. 세계 각국의 코리아타운을 돌아다니면서 그곳의 교포들을 만나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이야기를 들어보는 다큐멘터리도 기획 중이다. 무엇보다 ‘자이니치’라는 단어가 영어 사전에 오를 정도로 유명해져서, 미래의 자이니치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롤 모델로 기억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