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사람은 평생 한 번 가볼까말까 한 검찰청사를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3년간 출퇴근했다. 왕년에 검찰 직원이었소? 아니요. 검찰청 ‘매점’ 아저씨였습니다. 그것도 굵직한 사건마다 등장하는 서울중앙지검의 매점을 운영했다.

일러스트=김영석

“대체 누구 ‘빽’으로 여기 들어왔소?” 매점 주인장일 때 가장 많이 듣던 질문이다. 그런 물음에는 모모 장관 동생이라고 괜히 흰소리하는 것보다 별것 아니라는 듯 넌지시 웃어주는 것이 가장 강력한 대답이란 사실도 그때 터득했다.

대단한 ‘빽’을 갖고 있긴 했다. 서울중앙지검은 구내식당과 카페, 매점을 일괄 입찰하는데, 당시 S기업이 낙찰받았다. 그런데 그 회사에 외식사업부는 있어도 매점사업부는 없었던지라 내가 따라가게 된 것이다. S기업에 친인척이라도 있는 거냐고? 그것도 아니다. 우리 편의점을 종종 찾는 손님이 S기업 직원이었는데, 헤프게 웃는 것이 맘에 들었는지, “매점 하나 맡아 주실래요?” 제안받은 것이 인연의 출발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친구 따라 강남, 아니 손님 따라 서초동에 간 기막힌 사연이다.

예전에 나는 학생운동으로 유명한 대학의 총학생회장이었고 주사파 지하 조직원이었으니, 왕년의 잠재적 공안사범이 검찰의 심장부에서 삼각김밥과 바나나우유를 팔았던, 그야말로 소설 같은 이야기다. 거기서 보고 겪은 일을 글로 옮기자면 책 한 권을 따로 써야 할 정도인데, 그동안 굳이 꺼내 말하지 않았다.

그곳에서 매점을 운영하며 느낀 점은 세상엔 ‘억울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는 사실이다. 중앙지검에는 민원인을 위한 복사기가 따로 없어 대부분 2층 매점을 찾았다. 그렇다 보니 민원인 하소연 들어주는 일도 매점 주인장의 독특한 일상 가운데 하나였는데, 친구 믿고 명의 빌려줬다가 졸지에 사기꾼이 되었다는 배불뚝이 아저씨부터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입시비리 주인공까지, 사연들은 다양했다. 그 가운데 ‘내가 잘못했다’ 말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하긴 매점 아저씨한테 그런 고백은 할 필요 없겠지.) 허리 굽은 할머니가 힘겹게 올라와 “우리 아들은 그런 짓을 할 아이가 아니에요”라며 똑같은 탄원서를 복사하고 또 복사할 때는 나도 모르게 찔끔 눈물이 났다.

사람 살아가는 풍경은 어디든 똑같다는 사실도 그때 깨달은 평범한 진리다. 손님의 구 할은 검찰청 내외부 사람들이었다. 셔터 문 내릴 때 헐레벌떡 뛰어와 담배를 구입하고는 “아이고 살았네” 하면서 불기소 처분 받은 피의자처럼 기뻐하던 검사님이 계셨고, 요새 사건에 치이고 육아에 치인다며 에너지 음료를 서너 개씩 들이켜던 베테랑 수사관이 있었으며, 깐깐하게 물건값 따지던 중년 여성이 알고 보니 경제범죄를 담당하는 실무관이라 괜스레 뜨끔했던 적이 있고, 출입증에 적힌 이름 볼 때마다 저 사람은 배고프겠다 생각했던 기자도 있었다. (귀한 이름 갖고 죄송합니다. 조선일보 김아사 기자님.) 어젯밤 TV 뉴스에 압수수색 상자를 들고 나오는 근엄한 모습으로 등장한 수사관이 다음 날 아침 매점에서 마지막 삼각김밥을 ‘겟’(쟁취) 하고 환호하는 모습을 볼 때는 나도 모르게 풋, 웃음이 나올 뻔했다.

점심 먹고 몽마르뜨 공원을 산책하며 뛰노는 토끼들 구경하는 것도 즐거운 일과였다. 얼마 전 전국 검찰 수사관들이 모여 ‘검수완박’ 대책을 논의했던 대강당은 내가 매일 오후 슬그머니 들어가 책을 읽거나 글을 쓰던 곳이다. 검찰청사 대강당을 작업실로 삼은 글쟁이는 세상에 나밖에 없을 것이다. 그때 검사장이었던 분이 지금은 취임 앞둔 대통령 당선인이 되었고, 음료수 배달 갔다가 복도에서 꾸벅 인사했던 양반이 지금은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되었으니, 그 또한 인생의 별난 인연이다. 0.1초 스쳐 지나간 것도 인연이라 생각하는, 나는야 역시 한국인!

되풀이하는 말이지만 평범한 사람이 검찰청에 드나들 일이 평생 한 번이나 있을까? 그런 소중한(?) 경험을 나는 3년이나 겪었다. 요즘 뉴스를 뒤덮는 검수완박인지 검정수박인지 하는 난리 굿판도 국민 99%는 ‘나와 상관없는 피곤한 이야기’일 따름이다. 앞으로 그곳을 드나들 일이 가득한 어떤 분들끼리만 빼앗느니 지키느니 넘기느니 하면서 사활을 걸고 있을 뿐. 물론 피해는 고스란히 돌고 돌아 국민에게로.

문득 옛일이 떠올라 끼적거려 보았다. 중앙지검을 20년 동안 청소했다는 미화원 여사님, 매일 아침 멋지게 거수경례해주시던 청원경찰 형님들, 잘 계시죠? 공익요원 강모 군은 복학했겠지? 카페에서 일하던 희숙 씨는 지금은 어디서 향긋한 커피를 내리고 계시려나. 내가 그곳에서 겪은 일을 글로 쓴다면, 검사나 수사관이 아니라, 바로 이런 분들 이야기다. 그들이 역사의 주인이니까.

검수완박? 직접적 이해당사자들은 이제 뒤로 빠지시고, 어떤 방식으로든 국민에게 심판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당신들이 입이 닳도록 “국민이 주인입니다”라고 추어주던 그 국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