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걸 왜?’
이 신발을 보고 이런 반응을 보이면 당신은 옛날 사람. 발가락만 살짝 가리는 앞코에 바닥 감촉이 그대로 느껴질 정도로 낮은 굽. 바로 고무신이다. 발등과 발목이 훤히 드러나 시원하고, 가벼운 소재로 걸음마저 산뜻해 보이는 고무신이 MZ 세대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다. 샤넬 플랫슈즈나 발레리나 슈즈보다 저렴하고, 원하는 디자인으로 다양하게 변주도 가능해 ‘K-플랫슈즈’로도 불린다. 뭐든지 ‘K’만 붙이면 장땡이냐고? 고무신엔 특별한 이유가 있다.
◇마음대로 꾸밀 수 있는 ‘조선 크록스’
요즘 고무신은 ‘대충 신는 신’이 아니다. 사찰 바지나 작업복 아래에도 어울리지만, 잘 차려입은 시티룩에도 고무신을 매치할 수 있다. 특히 생활한복과 철릭(조선시대 의상의 한 종류) 원피스가 유행하면서 고무신 활용도가 더 높아졌다. 경남 창원시에 거주하는 전지현(35)씨는 최근 집 근처 사찰에서 고무신을 샀다. 전씨는 “옛날부터 한복에 꽃신이나 고무신을 신었으니, 내가 갖고 있는 철릭 원피스에 매치하면 어울릴 것 같아서 샀다”며 “물에 젖거나 막 신어도 한복과 곱게 어울려서 맘에 든다”고 말했다.
붕어빵 기계처럼 한 금형에서 찍어내는 고무신은 운동화나 구두와 달리 모양이 대부분 비슷하다. 그래서 오히려 본인 취향에 맞게 변주하는 것이 더 용이하다. 마치 크록스 신발을 지비츠(액세서리)로 꾸미고, 반스 올드스쿨 운동화를 페인팅해 커스터마이징(customizing·맞춤 제작)’ 하는 것과 같다. 전북 완주에서 아트 공방을 운영하는 이은희(43)씨는 “다 똑같아 보이는 고무신이지만, 자수나 페인팅으로 조금만 외형을 꾸며도 다른 신이 된다. 미국의 크록스가 인기 있는 이유도 직접 꾸며 신을 수 있기 때문 아닌가. 꾸미는 재미가 있는 게 고무신이다. 고무신을 ‘조선 크록스’라 부르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고무신에 수놓아지는 단골 소재는 ‘꽃’이다. ‘꽃신 신고 꽃길만 걸어라’는 말 때문인지 꽃이 그려진 고무신은 신는 것뿐 아니라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인기가 많다. 서울 양천구에 사는 신모(35)씨는 “일상복과 매치해 포멀한 무늬의 고무신 따로, 화려한 꽃 그림이 그려진 고무신이 따로 있다. 후자의 경우 신기 아까워 집안 잘 보이는 선반에 두고 있는데, 분위기가 훨씬 화사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고무 다라이’색 아니고, 버건디입니다
캐주얼한 고무신은 온라인 숍에서, 하이엔드 고무신은 공방에서 살 수 있다. 일상복에 매치할 수 있는 가벼운 디자인인 ‘뉴칼라 고무신’이 온라인 숍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브랜드다. 밝은 옥색 대신 에메랄드, ‘고무 다라이색’ 대신 버건디와 같이 컬러명을 강조했다. 뉴칼라 고무신을 판매하고 있는 괄호프로젝트 최은정 대표는 “3년 전 펀딩을 통해 국내에 몇 남지 않은 고무신 공장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촌스러움과 세련됨 사이를 가르는 건 바로 ‘컬러’였다”며 “누구에게나 친근한 국민 신발이라는 점에서 상품성이 있고, 실용적이고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MZ 세대에게도 인기를 끌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충남 예산군에서 고무신 공방을 운영하는 오수빈(39) 대표는 기본 고무신을 사서 수를 놓거나 페인팅한 뒤 판매한다. 오 대표는 “색상에 따라 다르지만 어린이 신발은 4000~5000원, 성인 신발은 6000~1만원대로 다양하다. 직접 수놓은 신발은 가격이 천차만별이지만 비싼 건 8만 5000원까지도 한다. 대량으로 팔 수는 없지만 가게에 방문하는 손님들은 사이즈에 맞기만 하면 무조건 다 사간다”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고무신 신기를 장려하기도 한다. 전주시는 전주국제영화제 기간에 맞춰 ‘고무신 파티’를 연다. 지역에서 활동 중인 예술가들이 직접 디자인한 고무신도 선보인다. 전주시 관계자는 “’고무신 GO 전주파티’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파티는 말 그대로 캐주얼한 파티에 고무신 코스튬이 더해진 것” 이라며 “한복 입기 붐이 일어난 것처럼 더 많은 사람이 고무신을 좋아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