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음악 한 곡이 떠올랐습니다. 기억이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1970년대 초 주로 일본에서 활동하시던 수필가 김소운 선생이 음악 한 곡을 곁들이며 구수한 목소리로 인생 이야기를 전했던 ‘인생 수첩’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시그널 음악 ‘우리는 누구인가?(Who are we?)입니다. 독일의 제임스 라스트(James Last) 악단의 연주곡입니다.
늦은 밤 노(老)문학가가 살아오면서 경험하고 생각한 바를 화로(火爐) 곁의 정담처럼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프로그램의 제목이나 시그널 음악이 너무 좋아 마치 종교의식에 참여한 것 같은 마음으로 가끔 들었습니다.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느낀 쓸쓸함, 순수함, 경건함 등이 뒤얽힌 감정 때문에 저 자신이 정화되는 듯하였습니다. 처음 듣는 곡이었기에 궁금하여 제목은 알아냈지만 범상(?)치 않은 제목 때문에 혹 노랫말이 따로 있는지, 있다면 어떤 내용인지 더욱 궁금하여 알아보았으나 실패하였습니다. 그래서 노랫말이 없는 연주곡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제가 과문한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제목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궁금하였습니다.
‘나는 누구인가?(Who am I?)’는 자신을 탐구하는 구도자적 생각으로 흔히들 하는 질문입니다. ‘너는 누구인가?(Who are You?)’는 그저 상대방을 알고 싶은 생각의 질문인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의구심을 갖고 던지는 도발적 질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누구인가?(Who are we?)’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다 그만 접었습니다.
2014년 서울 송파구에서 세 모녀가 집주인에게 죄송하다는 편지와 함께 밀린 집세와 공과금을 전하고 자살하였습니다. 그 사건을 접하고서 한동안, 편지를 쓰며 죽음을 준비하는 세 모녀의 모습이 눈에 어른거려 고통스러웠습니다. 그 후로도 유사한 사건이 여러 건 발생하였습니다. 또 최근 서울 동대문구에서 가난과 병마에 시달리던 70대 어머니와 50대 아들이 사망한 지 한 달 이상이 지나서야 발견되었습니다. 관련 행정기관에 지원을 요청하였지만, 집을 소유하고 있어 지원 요건에 해당하지 않아, 지원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런 안타까운 일들이 세계 10위권 경제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들의 딱한 사정을 알았더라면 종교·자선단체나 선량한 시민 등 도와줄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차고 넘치는데도 말입니다. 결국 이들을 찾아내 지원하는 시스템이 미흡하거나 담당자들의 적극적인 노력이 부족한 탓입니다. 2011년 당시 정부에서 공무원 증원 억제 정책을 시행하면서도 복지 담당 공무원만은 7000명 증원하기로 하였습니다. 각 지역 단위로 촘촘히 챙겨 위기 상황에 있는 국민을 찾아내 복지 사각(死角)이 생기지 않도록 하고, 형식상 지원 요건에 해당하지 않으면 민간 지원과 연결시켜 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저는 당시 일선 복지 업무 담당자에게 사생활 침해가 되지 않도록 하면서도 지혜롭게 각 가정의 숟가락 숫자까지 헤아릴 정도로 실태를 파악해서 보다 창의적이고 적극적으로 일해 달라고 당부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정책 목표는 아직도 달성되지 못하고 위와 같은 비극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최근 다시 안타까운 사건을 접하고 ‘정말 이럴 수밖에 없는가?’ 하는 생각과 함께 떠오른 음악이 50년 전에 들었던 ‘우리는 누구인가?’입니다. 그리고 곡의 제목이 포함하고 있는 뜻을 ‘우리는 서로에게 무엇이며, 서로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으며,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로 정리해보았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연인일 수도, 가족일 수도, 사회 공동체 구성원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뜻에서 우리 모두 ‘우리는 누구인가?’를 계속하여 자문(自問)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 곡을 다시 들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