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에미리트(UAE)에 있는 루브르 아부다비 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종이 이야기' 전시에 세워진 한옥을 관람객이 둘러보고 있다. /AFP

아랍에미리트(UAE) 수도 아부다비에 있는 ‘루브르 아부다비’에 한옥 한 채가 들어섰다. 비행기로 공수한 한국산 소나무 목재를 끼워 맞추고 벽과 창, 바닥에 한지를 발랐다. 한옥 옆으로는 한지로 지은 수의(壽衣)와 한지에 인쇄한 불경, 한지에 그린 수묵화, 모자·조끼·물병·신발 등 한지로 만든 온갖 생활용품이 전시됐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의 분관인 루브르 아부다비에서 지난달 20일부터 ‘종이 이야기(Stories of Paper)’가 열리고 있다. 파리 루브르 본관에서 2년에 걸쳐 준비한, 인류의 가장 중요한 발명품 중 하나인 종이의 역사와 활용을 보여주기 위해 전 세계의 지류(紙類) 문화유산 100여 점을 한자리에 모은 대형 기획전이다. 루브르뿐 아니라 프랑스 국립도서관, 기메국립아시아박물관, 퐁피두센터 등이 소장한 종이 문화재와 세계 각국에서 대여한 그림·서적·생활용품 등 국보급 종이 문화재가 출동했다.

오는 7월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 특정 국가의 ‘집’이 독립적으로 마련된 건 한국이 유일하다. 전시 기획에 참여한 루브르 박물관 소속 문화재 복원가 김민중(35)씨는 “종이에서 태어나 종이에서 죽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으니 당연한 일”이라며 “전시 개막식에 참석한 누리 알 카비 UAE 문화지식개발부 장관이 ‘한국의 종이 전통이 대단하다’며 감탄하더라”고 했다.

“태어나면 종이를 꼬아 만든 금줄이 걸리고, 죽으면 종이 수의를 입힙니다. 집 바닥도 벽도 창문도 종이이고, 옷·모자·허리띠·신발, 심지어 물통까지 종이로 만들죠. 루브르가 한옥을 전시장에 지은 건 종이가 생활 전반에 활용된다는 걸 보여줄 수 있는 가장 뛰어난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미래에서 온 종이’ 김성중(40) 이사는 “코로나로 한옥 설치가 무산될 뻔하기도 했지만, UAE 측에서 ‘한국이 반드시 참여해주길 바란다’는 요청을 받고 어렵게 추진했다”고 했다. “코로나로 모든 선박의 선적이 예약된 상황이라 비행기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어요. 목재 무게가 10t이 넘어 운송비가 큰 부담이 돼 전시를 포기해야 할 위기를 맞았지만, 다행히 전주시와 루브르에서 후원해줘서 한옥을 설치할 수 있었습니다.“

루브르 아부다비 '종이 이야기'전에 나온 한지 수의. 고려문화연구원 문광희 동의대 명예교수의 고증에 따라 송년순 한복침선공예명장이 문경 외발뜨기 한지로 제작했다./미래에서 온 종이

미래에서 온 종이는 한지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설립된 사단법인으로, 이번 전시를 위해 루브르와 협력했다. 김 이사는 김민중 복원가의 형으로, 두 형제는 ‘직지 대모’ 고(故) 박병선 박사를 도와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 외규장각에서 약탈해간 의궤를 돌려받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해외에서 한지는 일본 화지(和紙)의 아류 정도로 인식돼 왔으나, 차츰 그 우수성이 알려지고 있다. 최근 루브르에서는 유물 복원에 화지 대신 한지를 사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지난해 파리 루브르에서 열린 ‘부르봉가(家)의 역사’전이 대표적으로, 전시에 나온 모든 그림은 경북 문경에서 외발식으로 생산한 전통 한지로 복원했다. 그동안 전 세계 박물관에서 미술품·문화재·유물 복원에 사용돼온 종이는 99% 이상이 화지다.

‘종이 이야기’전에는 세계 각국 종이의 차이점을 비교해 보여주는 코너도 있다. 김민중씨는 “화지는 세로로만 뜨기 때문에 한쪽 방향으로 잘 찢어지는 반면, 전통 한지는 가로세로 동시에 떠 훨씬 견고해 문화재·유물 복원용으로 더 적합하다”며 “이번 전시는 한지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