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이름) 지방선거는 전과자 집합소네요.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음주 운전 (이력) 없으면 시의원도 못하겠네요.” “진짜 어처구니가 없네요. 음주 운전, 사기…. 싹 다 거릅니다.” (A 지역 인터넷 커뮤니티)
6·1 지방선거가 10여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적지 않은 유권자들이 전과를 가진 후보자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범죄 이력 있는 사람이 공직 선거에 나서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후보 본인 등 일각에서는 “전과가 있다고 해서 출마 자체를 비난하는 것은 억울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전체 출마자 36.2%가 전과자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243명의 자치단체장과 3860명의 지방의원을 뽑는 이번 지방선거에는 총 7531명이 입후보했다. 이 가운데 1건이라도 전과가 있는 후보는 2727명(36.2%). 이 중 홀로 입후보해 이미 당선을 확정 지은 무투표 당선자가 148명에 달했다. 가장 많은 전과를 가진 후보는 총 14건의 전과를 보유한 채남덕(무소속) 전북 군산시장 후보와 강해복(무소속) 부산 부산진구의원 선거 후보였다. 채 후보는 사기, 횡령, 음주운전, 상표법 위반 등의 전과가, 강 후보는 운전자 폭행, 재물 손괴, 음주 운전, 상해 등의 전과가 있었다.
정당별로 봤을 때 전체 출마자 중 전과 기록이 있는 후보자 비율은 국민의힘 35.4%, 민주당 30.9%, 정의당 24.1%였다. 무소속은 52.6%였다. 후보자들이 신고한 전과 기록 중 가장 많은 범죄 유형은 음주 및 무면허 운전(40.8%)이었다. 음주운전 5회, 무면허 운전 5회의 전과 기록을 신고한 시의원 후보도 있었다. 다음으로 많은 것은 폭행 등 폭력 관련 전과(10.4%)였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과 강제추행 등 성범죄, 특수강도, 집단흉기상해, 상습도박 등의 전과를 가진 후보도 있었다.
선거구의 모든 후보가 전과 보유자인 기초단체장 선거구는 총 27곳. 대표적인 곳이 전북 군산시장과 경남 산청군수 선거다. 군산시장 후보자 4명의 전과 개수는 도합 20건에 이른다. 채남덕 후보가 14건이고, 강임준(민주)·이근열(국민의힘)·나기학(무소속) 후보가 각각 2건의 전과를 보유하고 있다. 강 후보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업무상 과실치사, 이 후보는 공무집행방해, 나 후보는 음주운전 등의 전과를 신고했다. 산청군수 선거에 나선 후보 3명도 모두 전과를 갖고 있다. 이승화(국민의힘) 후보가 뇌물 공여 등 9건, 이병환(무소속) 후보가 사기 등 8건, 허기도(무소속) 후보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 2건을 신고했다.
◇”후보 모두 전과자라 난감”
군산에 살고 있는 자영업자 이모(43)씨는 “시장 후보 모두가 전과가 있어서 뽑을 사람이 없다”며 “내 주변에는 전과자가 한 명도 없는데, 선거판에는 전과자가 이렇게 많으니 기가 막힌다”고 했다. 그는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은 범죄 전력이 없는, 깨끗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물며 연예인도 음주운전하면 퇴출되는 세상 아니냐. 전과자는 선거에 나올 수 없게 하는 법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30대 구의원 선거 출마자 B씨는 “후보자의 도덕성, 자질을 판단하는 데 있어 가장 기본적인 기준이 바로 전과 유무”라며 “정당이 전과자를 공천하는 것은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공기업에 다니는 김모(36)씨는 “전과 있는 후보를 뽑고 싶진 않다”면서도 “어떤 전과냐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과거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생긴 전과는 괜찮지만 강력 범죄, 음주운전 등의 전과가 있는 후보는 절대 뽑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반대 의견도 있다. 국민의힘 공천을 받았지만, 법원의 판단으로 공천 효력이 정지된 유천호 강화군수 후보는 억울함을 호소했다. 유 후보는 과거 사기죄로 실형을 선고 받은 적이 있다. 법원은 ‘사기죄로 집행유예 이상의 형이 확정된 자는 추천 대상에서 배제한다’는 국민의힘 공천후보자 추천 규정을 근거로 들며, 유 후보에 대한 공천은 정당의 내부 자치 규정을 위반한 것이라고 봤다. 결국 유 후보는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유 후보는 “공정한 경선을 치러 압도적 승리를 이뤘는데, 경선에서 참패한 후보가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뒤늦게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낸 것”이라며 “재판부는 무려 47년 전 사건을 가지고 공천 효력을 정지시켰다. 과거 공천을 다섯 번 받았는데, (전과가) 한 번도 문제된 적이 없었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기초의원 선거 출마자 C씨는 20여 년 전 음주운전을 해 처벌받은 적이 있다. C씨는 “내 잘못으로 생긴 전과자라는 낙인에 대해 깊이 반성한다. 그래도 ‘전과자는 무조건 안 된다’는 시선은 억울하다. 다양한 면을 유권자들이 평가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공천 배제할 것” 약속 어긴 정당들
경실련은 지난 3월 각 정당에 경실련이 마련한 ‘11대 공천 배제 기준’을 채택할 것을 촉구하는 제안서를 보냈다. 11대 공천 배제 기준에는 살인 등 강력범죄, 부정부패, 성폭력, 음주운전 등이 포함됐다. 이에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모두 해당 범죄 전력은 자당의 공천 부적격 기준에 해당한다고 밝히며 “공정하고 엄밀한 검증을 통해 사회적 지탄을 받는 범죄·비리 경력자는 공천에서 배제”(민주당) “이보다 강화되고 광범위한 추가 부적격 기준을 마련했고, 각급 공천관리위원회에서 지침으로 시행 중”(국민의힘)이라고 했다.
김성달 경실련 정책국장은 “공천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요구에 거대 양당은 ‘할 수 없다’는 태도로 일관하며 ‘깜깜이 공천’을 자행해왔다. 그 결과 전과 기록을 가진 분들이 또 선거에 나오게 된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며 “유권자들이 투표로 평가를 하겠지만, 정당들이 안 바뀌면 이런 행태가 계속될 것으로 본다”고 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어떤 후보를 공천하느냐는 정당이 갖는 고유 권한”이라며 “후보 경쟁력을 평가하는 데 있어 전과는 하나의 참고 사항일 뿐이다. 전과가 있더라도 그 사람이 최선이라고 판단하면 공천을 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범죄 이력이 있는 사람을 공천한다는 것은 유권자를 모독하는 일”이라며 “정당이 당헌당규를 통해 공천 배제 기준을 정해놨으면 철저히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2018년 지방선거 결과를 분석한 정치학자 윤지성·송병권의 연구에 따르면, 후보자의 전과 여부가 득표율에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기초단체장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 749명 중 266명(35.5%)과 광역의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 1756명 중 697명(39.7%)이 전과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기초단체장의 경우 전과가 있는 후보들은 전과가 없는 후보들에 비해 득표율이 약 2.1~2.7%포인트 정도 낮았고, 광역의회의원의 경우 전과가 있는 후보는 그렇지 않은 후보들에 비해 득표율이 약 0.6~1.1%포인트 정도 낮았다. 그러나 당락에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분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