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효자동 청와대 경내. 평일임에도 청와대를 찾은 시민이 북적이는 가운데 곳곳에선 연방 “와” “어휴, 너무 좋다” 같은 감탄이 이어졌다. 부산에서 온 한 60대 시민은 “이렇게 좋은 곳을 대통령만 누렸다고 생각하니 조금 억울한 마음이 든다”며 웃어 보였다.
개방 직전까지 대통령 집무실 이전과 청와대 개방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이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지난 10일 청와대가 전면 개방되자 여론은 수일 만에 급반전했다. 직접 관람한 시민과 전문가들 사이에선 호평이 이어졌다. “제왕적 대통령의 구중궁궐이었던 청와대가 시민들의 휴식 공간이자 미적·역사적 가치가 높은 문화 공간 겸 명소로 변모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74년간 청와대에 있었던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고 대통령 취임 당일 곧바로 청와대를 개방하는 건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고 한다. ‘청와대 이전·개방 태스크포스(TF)’를 맡은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을 비롯한 TF 팀원들에게 개방 막전막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국방부 연병장에 텐트 치고 일할 각오로”
-청와대 개방과 대통령 집무실 이전은 어떻게 논의된 건가.
윤한홍 의원(이하 윤): 지난 1월 청와대 개방 공약을 내놨는데 사실 이때는 ‘대통령에 당선되면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것만 확실했다. 광화문으로 갈지, 용산으로 갈지 자세히 검토되지는 않은 상황이었다. 2월이 되니 윤석열 당시 후보가 ‘청와대 개방과 집무실 이전 준비를 미리 좀 하라’고 했다. 당선인 의지가 강했기 때문에 5월 10일에 청와대는 무조건 개방하는 쪽으로 방향이 잡혔다.”
-반대 여론이 꽤 높았다.
윤: “여러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나오겠다고 했고 문재인 전 대통령도 청와대에서 나오겠다는 공약을 걸고 당선됐지만 결국 지키지 못한 과정을 다들 생생히 기억하지 않나. 이미 국민 사이에서는 청와대 개방에 대한 공감대가 있다고 생각했고, 실천의 문제만 남았다고 봤다. 물론 이전·개방을 본격 추진하면 더불어민주당과 언론 등에서 강하게 비판하고 여론도 나빠질 수 있다는 예상들도 있었다. 그래서 청계천 복원 사업을 많이 얘기했다. 청계천도 복원하기 전에는 70~80%가 반대했다. 그런데 막상 복원되니 반응이 매우 좋지 않았나. ‘5월 10일 청와대가 열리면 100% 여론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내부에서도 속도 조절론이 나왔다던데.
윤: “반대 목소리가 작지 않았다. 청와대를 그대로 쓰자거나 일단 1~2년 정도 있다가 나오자는 얘기들이 많았다. 청와대에 절대 들어가면 안 된다고 한 건 사실 저랑 권성동 의원 등 둘, 셋 정도였다.”
-어떻게 조율이 됐나.
윤: “저는 ‘무조건 지금 해야 한다. 한번 들어가면 못 나오기 때문에 만약 들어가면 문 대통령처럼 중간에 국민에게 포기 선언을 하게 될 거다’라고 했다. 저도 이명박 정부 때 청와대에 5년 있어봐서 잘 안다. 일단 들어가면 ‘아유, 이 좋은 데를 왜 나가’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당선인 의지가 얼마나 강했나.
윤: “문재인 정부가 이전 협조를 잘 해주지 않았다. 3월 22일, 3월 29일, 4월 5일에 국무회의가 세 번 열렸는데도 집무실 이전을 위한 예비비 의결이 안 되니 윤석열 당선인이 ‘천생 내가 국방부 연병장에 텐트 치고 근무해야겠다. 그래도 청와대는 취임 첫날 꼭 개방하겠다’고 말하더라. 의지가 대단하다고 느꼈다.”
-이유가 뭘까.
윤: “윤 대통령은 ‘거대 권력을 감싸 쥔 대통령은 안 하겠다’고 하더라. 대통령을 ‘장관보다 한 단계 높은 고위 공무원’으로 생각하고 있다.”
◇10일 0시에 트럭 50대로 화장실·벤치 ‘긴급 수송’
-이전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윤: “국방부 청사 2층 국방부 장관실이 대통령실로 쓰기에 가장 좋은 구조인데, 한미 훈련을 핑계로 2층은 늦게 나갈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 그래서 ‘일단 다른 직원들 근무하는 층이라도 먼저 비워달라’고 했고, 그래서 5층과 6층이 먼저 나갔다. 궁리 끝에 5층에 ‘대통령 제2집무실’을 먼저 만들었다. 경호 차원에서도 대통령이 2층 집무실에 있는지 5층에 있는지 혼동을 주는 이점도 있다고 봤다. 2층 집무실은 아직 공사 중이다.”
-과거 청와대에 있을 때 청와대가 가진 문제를 느꼈나?
윤: “참모와 대통령이 떨어져 있다 보니 참모 개개인이 제각각 왕이 된다. 하지만 용산으로 이전해 대통령과 참모들이 한 공간에 들어가니 그런 권력이 확 줄어든다. 청와대 부속실이 가진 ‘문고리 권력’이 없어진 것만으로도 이전 효과가 크다.”
-분단 상황을 감안하면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가 떨어져 있는 건 문제라는 지적이 있다.
윤: “맞는 지적이다. 장기적으로는 집무실과 관저가 한 공간에 있어야 한다. 다만 이번에는 이전을 우려하는 여론이 있는 만큼 일단 집무실을 먼저 이전하고 추후 국민에게 관저 신축에 동의를 얻는 쪽으로 진행했다.”
-대통령 취임 당일 곧바로 시민에게 청와대가 개방됐는데.
박충원 행정관: “윤석열 정부가 청와대를 인수받는 시점이 10일 0시였다. 그날 곧바로 시민에게 개방하려면 시민들이 이용할 화장실, 벤치 등이 필요하지 않나. 그래서 10일 0시 직전에 간이 화장실과 벤치, 쓰레기통, 안내 스피커 등을 실은 대형 트럭 50여 대가 청와대 근처에 대기하다가 0시가 되는 순간 청와대 경내로 진입해 간이 화장실과 벤치, 쓰레기통들을 후다닥 설치했다.”
-그 전에 준비할 수 없었나.
박충원 행정관: “계속 청와대에서 업무가 이뤄지고 있었다. 개방 날짜는 정해졌는데 문 대통령이 언제 나오는지 모르니 막막했다. 문 대통령이 9일 저녁 청와대에서 나온다는 사실도 4일 청와대 브리핑을 보고 알았다.”
-더 천천히 개방하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나.
박선연 행정관: “취임 첫날에 맞출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10일에 바로 개방한다고 약속하지 않았나. 취임 시작부터 약속을 어길 수 없다는 의지가 강했기 때문에 그 약속을 지키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하루 관람 인원이 3만9000여 명으로 제한돼 있다.
김순호 문화재재단 활용기획팀장: “쾌적한 관람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미 17일 0시까지 관람 신청한 인원만 403만명이 넘는다. 개방 전 사전 답사를 통해 청와대 전체 면적과 청와대 내 인도의 넓이 등을 다 감안해 경찰과 놀이공원 업체 측에 자문했더니 하루 3만9000여 명이 쾌적하게 관람할 수 있는 최대 인원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청계천 복원 사업도 청계천 개방 이후 거의 10개월에서 1년 정도는 많은 인파가 몰렸기 때문에 당분간은 당일 관람 인원 제한이 불가피할 듯하다.”
-청와대 시설 내부는 언제 개방되나.
백현민 문화재청 사무관: “전 대통령과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간 곳이라 업무하던 걸 정리하고 내부 현황 파악도 하고 있다. 건물 하나하나가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크기 때문에 대통령의 공언대로 전문가와 정부가 협의하는 거버넌스 과정을 통해 각 건물이 어떻게 활용·공개될지 결정될 것이다.”
-보람이 크겠다.
정태준 행정관: “청와대가 비로소 국민의 것이 되었다는 걸 이제 체감한다. 비가 내리는 날인데도 청와대를 찾은 분들이 지었던 만족스러운 표정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이제 정말 국민의 것이 되었으니 더 소중하게 다뤄주실 거라 기대한다.”
[배준용 주말뉴스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