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교육 봉사를 위해 쉰 살에 파일럿이 된 폴 김 교수는 “다음 도전이 무엇일지 벌써 설렌다”고 했다. 그는 “꿈을 이루고자 할 때, 나만 끝까지 놓지 않으면 결국 도달하고 성취할 수 있다”고 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1970년 인천 부평에서 태어난 소년 김홍석은 학교가 싫었다. 매일같이 이유도 모른 채 매를 맞았고 혼이 났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안 맞는 친구들의 어머니는 선생님에게 촌지를 갖다 바치고 있었다.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학을 결심했고, 고등학교를 마치자마자 미국 조지아주에 있는 대학으로 날아갔다.

미국 학교는 한국 학교와는 180도 달랐다. 첫 학기에 실수로 듣게 된 음악 수업에서 5장짜리 감상문을 써가야 했는데, 영어가 서툴렀던 그는 ‘This is good music’이라고만 쓴 리포트를 제출했다. 교수는 자초지종을 물었고, 한국어로 감상문을 다시 써오라고 했다. 그는 한국어로 쓴 감상문을 들고 교수를 찾아가 사전을 이용해 감상문에 쓴 단어 하나하나를 설명했다. 교수는 A 학점을 줬다. 이 수업은 음악 수업이지, 영어 수업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한국에서 ‘양’ ‘가’만 받았던 그가 받은 최초의 ‘A’였다.

이 소년은 미 스탠퍼드대 교육대학원 부학장이자 최고기술경영자(CTO)인 폴 김 교수다. 한국 교육에 환멸을 느껴 미국으로 떠났던 그는 세계적 권위를 가진 교육공학자가 됐다. 그가 하는 일은 혁신적인 교육 시스템을 개발해 세계 교육 현장에 도입하는 것. 2009년에는 비영리 국제교육재단인 ‘시즈 오브 임파워먼트(Seeds of Empowerment)’를 설립, ‘국경 없는 교육’을 실천하고 있다.

최근엔 자신의 파일럿 도전기를 책 ‘다시, 배우다 RE:LEARN’으로 펴냈다. 2018년 어느 날, 캐나다 출신 석사과정 학생 루빈과 아프리카 교육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의 가슴이 요동쳤다. 파일럿 자격증이 있는 루빈이 ‘마음 맞는 파일럿들과 함께 세상 곳곳에 필요한 것들을 전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하자,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동차로 며칠을 가야 할 길을 비행기로 몇 시간 만에 갈 수 있다면, 그래서 더 많은 사람이 쉽게 자주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노벨상 수상자와 밥을 먹을 때보다, 200억달러짜리 연구 프로젝트에 펀딩이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보다, 유네스코 초청으로 연설했을 때보다 훨씬 큰 설렘을 느꼈다. 바로 비행학교를 알아봤고, 경비행기 조종 과정에 입문해 2020년 자격증을 취득했다. 지난달 모국에 온 폴 김 교수를 만났다.

◇꿈이 있다면 이루면 된다

오래된 비행기를 타고 장거리 비행 훈련을 하는 폴 김 교수의 모습. /폴 김 제공

-나이 쉰에 파일럿 자격증을 땄다.

“(교육 봉사를 위해) 오지를 자주 가는데, 사실 이게 쉽지 않다. 멀기도 하고, 길이 없는 곳도 있으니까. 그런 곳을 내가 경비행기를 몰 수 있으면 좀 더 쉽게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도전했다.”

-어려웠을 것 같다.

“시력도 안 좋았고, 수업도 어려웠고, 낙방도 여러 번 했다. 그래도 ‘나만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에 된다’는 생각으로 버텼다. 많은 이들이 ‘내가 그런 걸 어떻게 해’ ‘너무 나이가 많은 건 아닐까’ 등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꿈을 포기한다. 그런데 꿈이 있다면 이루면 된다. 꿈을 버리거나 마음에만 간직하면 불행해진다. 파일럿 교육을 받으면서 교육자의 역할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끝없이 배우는 학생의 자세로 살아야 더 나은 교육자가 된다는 것도 배웠다.”

-교육자의 역할이라면?

“여러 교관을 만났다. 첫 교관은 23세 대학생이었는데 계속 ‘잘한다’며 긍정적 피드백을 줬다. 기분은 좋았지만 세밀한 부분에서 놓치는 것이 많았다. 두 번째 교관은 ‘You just failed!’를 외치며 부정적 피드백만 줬다. 자신감이 사라졌고 훈련은 늘 두려움으로 시작됐다. 세 번째 교관은 정확한 피드백을 주는 분이었다. 내가 실수한 부분, 더 신경 써야 될 부분을 정리해 설명해줬다. 네 번째 교관은 예순을 넘긴 베테랑이었다. 경험이 많다 보니 상황마다 능력을 증진하는 방법을 들려주셨다. 이분이 주는 모든 피드백은 상당히 정교했다. 세 번째, 네 번째 교관은 ‘티칭’이 아닌 ‘코칭’을 해주는 분이었다.”

-티칭과 코칭이 어떻게 다른가.

“티칭은 일방향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다. 코칭은 ‘어떻게 하면 학생을 더 잘 이해할까’에 초점을 둔다. 학생들의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각각의 학생이 가진 유니크한 재능, 역량을 끌어내고 도와주는 게 코칭이다.”

◇교육은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는 일

-왜 교육자의 길을 선택했나.

“석사 과정을 시작했을 무렵, 수희라는 아이를 코칭할 기회가 있었다. 부모가 안 계셨던 수희는 열네 살이었는데 글을 읽지 못했다. 그래서 ‘아침부터 지금까지 뭘 했는지 얘기를 해보라’고 한 뒤에, 그걸 하나씩 적고 읽어보라고 했다. 자기가 한 말이니까 읽는 게 너무 쉬운 거다. 이렇게 매일 했더니 수희가 자신감을 갖게 됐다. ‘가르친다는 게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수희는 몇 해 뒤 명문대에 우수한 성적으로 진학했다.”

-한국에서의 학교 생활은 끔찍했다고 했는데.

“12년 동안 즐거운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 엉뚱한 질문 한다고 맞고, 어머니 안 모셔온다고 맞고…. 하루는 친구들이 몰려가기에 따라가 보니, 그 무섭던 담임 선생님이 불법 과외를 하고 계시더라. 충격을 받았다.”

-학교는 싫었어도, 배움에 대한 열망은 있었던 건가.

“아버지가 기술공이셨다. 집에 공구, 부품 같은 게 많았다. 온갖 걸 뜯어보면서 놀았던 것 같다. 형, 누나의 찢어진 헌 책을 물려받아 보면서 ‘이 이야기의 결말은 이럴 거야’ 하며 상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창의력과 상상력을 엄청나게 키웠던 것 같다.”

‘인생이란 건 불편하면 불편할수록 나중에 편해진다.’ 폴 김 교수가 전한 아버지의 말씀이다. 김 교수는 “무슨 일이든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 진정한 도전이다. 내가 만일 인생의 도전들을 회피하며 살았다면 평생 후회로 남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유학은 어떻게 가게 됐나.

“학교가 싫기도 하고, 새로운 걸 경험하고 싶어서 초등학생 때부터 가게 해달라고 졸랐다. 아버지가 ‘고등학교는 졸업해야 갈 수 있다’고 못을 박으셨다. 동네 살던 외국인을 찾아가 영어를 가르쳐달라고 했고,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미국으로 나갔다.”

-미국은 달랐나.

“대학에서 처음 들은 음악 수업에서 좋은 코치를 만났다. ‘양’ ‘가’만 받다가 ‘A’를 받으니까 ‘나도 A를 받을 수 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계속 A를 받아야지’란 생각도 했다.”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미국 학생이 1시간 공부하면 나는 10시간을 하겠다고 생각했다. 세차장, 중국 식당, 잡화점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공부했다. 내가 발전해 가는 모습이 즐겁고 재밌었다. 미국에서 만난 선생님들은 학생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조력자로서의 기쁨과 보람을 찾는 이들이었다. 한국에선 만날 ‘바보 같다, 공부 못한다, 저능아냐’는 소리만 들었는데…. 나는 (선생님의) 부정적 피드백은 어떤 상황에서도 백해무익하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n+1’을 양산하는 교육은 범죄

김 교수는 미국 교육과 한국 교육의 차이점으로 실패를 보는 관점을 들었다. 미국에서 실패는 곧 시도와 노력의 증표이자 다음 도전의 귀중한 자산으로 여겨지지만, 한국에서 실패는 곧 ‘끝’이라는 분위기란 것이다. “계속 도전을 해야 혁신할 수 있다. 실패를 두려워하면 도전도, 혁신도 있을 수 없다.”

-한국 교육을 ‘공포와 두려움을 기반으로 하는 교육’이라고 했다.

“‘실패하면 절대 안 돼’ ‘서울대에 꼭 가야 해’ ‘다른 길은 없어, 이 길뿐이야’ 이런 말을 많이 듣지 않았나. 대부분의 이들이 ‘다수가 가는 길이 맞는다’고 생각한다. 다들 아이들에게 공부를 시키니까, 우리 아이도 공부를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개개인의 고유한 역량들은 무시된다.”

-한국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뭐라고 보나.

“변화를 두려워하고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 대한민국에는 자신의 꿈은 접어두고 남들처럼 하면 중간은 간다는 신념이 존재해왔다. 자신의 인생을 유일무이한 ‘The One’으로 만들지 않고, 많은 사람 중 하나인 ‘n+1’이 되라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The One’이다. 한국 교육은 그것을 잊게 한다.아이들의 엄청난 역량을 다 죽이는, 범죄와 같은 일이다.”

-해결 방안이 있을까.

“학부모라면 일단 환경을 바꿔야 한다. 아이들의 꿈과 열정을 찾아가는 부모들과 어울려야 한다. 국가적으로는, 다른 나라에서 도입할 수 있는 훌륭한 교육 프로그램이 많다. 핀란드에선 학생 개개인의 역량을 끌어내려는 교육이, 남미 쪽에선 학생들을 사회적 프로젝트에 참여시키는 교육이 많이 행해진다. 나는 21세기 인재가 갖춰야 할 역량 ‘4C(의사소통·협동·비판적 사고·창의성)’에 연민(compassion)과 헌신(commitment)을 더한 ‘6C’를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많은 교육자와 부모들은 ‘말은 좋지만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이런 교육들이 이뤄지는 걸 두 눈으로 봤다.”

-고위층 인사들이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불법을 저질러 논란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결과에만 집착해서 그렇다. 사실 서류에만 존재하는 경력은 가짜라는 게 티가 난다. 평소 ‘스탠퍼드대 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란 질문을 많이 받는다. 면접관으로 들어가면 학생이 추구하는 리더십과 그가 써낸 스펙이 얼마나 연결성이 있는지 보고 묻는다. 왜 이런 활동을 했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명확히 설명할 수 없다면 (허위 스펙이) 다 탄로가 난다. 결과보다 과정, 앞으로의 계획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자녀 교육은 어떻게 했나.

“딸이 둘인데, 독립적인 아이로 키우려고 노력했다.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면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걸 가르쳤다. ‘이거 해라, 하지 마라’ 같은 지시는 하지 않았다. 죽을 때 자신에게 미안하지 않은 삶, 후회되지 않는 삶을 살라고 했다. 맏이는 미 해군 장교고, 둘째는 대학에서 동물학을 공부하고 있다.”

◇남 돕는 즐거움 모르는 것은 불행

폴 김 교수가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한 학교에서 ‘스마일(SMILE)’ 사용법을 가르치는 모습. /폴 김 제공

-오지 교육 봉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2005년 멕시코에 가서 눈이 뜨였다.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학교도 없고, 선생님도 없고, 아이는 일을 하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일해서 40대가 되면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 것이다. 이런 아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고 싶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나라는.

“제노사이드(집단 학살)가 있었던 르완다다. 그곳엔 학교도, 책도, 롤모델도 없었다. 그래서 만든 게 ‘천일 스토리(One thousand one story)’였다. 이런 곳에서 신데렐라 이야기가 공감되겠나. 천일 스토리는 개도국 아이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드는 프로젝트다. 책을 몰랐던 아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다른 나라 아이들과 나누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그는 천일 스토리 이전에도 ‘포켓 스쿨’ ‘스마일(SMILE)’ 등을 개발해 교육봉사 현장에서 사용했다. 포켓 스쿨은 모바일 학습의 일종으로, 손바닥만 한 기기에 언어를 학습할 수 있는 콘텐츠를 저장해 학생들에게 제공한다. 스마일은 학생들이 언제든지 질문하고 토론할 수 있게 하는 모바일 교육 프로그램. 2016년 유엔 미래교육혁신기술에 선정된 스마일은 현재 아프리카, 남미, 동남아 등 25국 이상에서 사용되고 있다.

-왜 남의 나라 아이들까지 도와야 하느냐는 사람도 있다.

“나의 작은 도움이 타인의 인생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내 인생의 의미를 찾게 된다. 그 즐거움을 모르고 사는 것은 참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것, 열정이 없는 사람도 있다.

“비행으로 따지면 계기판이 싹 다 꺼져버린 것과 같다. 그럴 때 비행사들은 ‘5C’를 한다. 고도 상승(Climb)·주변 돌기(Circle)·아끼기(Conserve)·소통(Communicate)·고백(Confess)이다. 일단 지금 안주한 이 상황에서 빠져나온 뒤, 끊임없이 움직이며 조언을 구해야 한다. 그 뒤 에너지를 비축하면서, 사람들과 허심탄회하게 대화하고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인생에서 성공적으로 잘 착륙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잘 계획하고 준비해야 한다. 생일과 사망일 사이를 무엇으로 채울지는 전적으로 나의 선택이다. 주어진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의미 있는 일을 해서 보람을 찾아야 한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 비행 훈련장에서 만난 이들을 보면, 가난도 신체적 결함도 문제가 아니었다. 아무런 깨달음 없이 오늘 하루를 보냈다? 그럼 인생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