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울에 사는 직장인 강모(27)씨는 요즘 ‘궁(宮)투어’에 푹 빠져있다. 평일 반차 휴가까지 불사하며 궁투어를 한다는 강씨는 5월에만 고궁 세 곳을 다녀왔다. 그는 자기 블로그에 궁투어 일지를 작성하고, 궁에서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최근에 그 어렵다는 경복궁 생과방 ‘궁케팅’에 성공해 다녀왔는데,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 시대로 돌아간 것 같은 색다른 체험이었어요. 궁마다 특색이 있어 알아가는 재미가 있고, 배경이 예뻐 ‘인생 사진’도 여럿 찍었습니다. 여름휴가 때는 ‘능(陵)투어’를 하려고요!”
#2. BTS 팬인 대학생 이모(24)씨도 궁투어에 심취해있다. BTS의 ‘궁 사랑’은 잘 알려져 있는데, 이들은 2020년 경복궁 근정전과 경회루를 배경으로 퍼포먼스를 선보인 바 있고, 리더 RM은 지난해 유튜브 촬영을 위해 찾은 경복궁에서 고궁 야간 프로그램에 대해 “(예매) 할 때마다 항상 매진돼서 저는 못 와봤다”며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씨는 “나를 포함해 많은 아미(BTS 팬클럽)들이 ‘BTS 성지순례’로 궁투어를 한다”며 “멤버들 캐릭터 인형을 갖고 (궁에) 가서 사진을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린다”고 말했다.
‘궁투어’ ‘궁케팅’ ‘능투어’…. 요즘 MZ세대 사이에서 통용되는 신조어다. 궁투어는 ‘궁’과 ‘투어(여행)’의 합성어로, 고궁을 탐방하고 궁에서 열리는 행사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궁궐 체험 행사는 대부분 온라인 예매를 통해서 가능한데, 경쟁이 치열해 ‘궁케팅(궁+티케팅)’이란 말까지 등장했다. 능투어는 왕릉 탐방 여행을 뜻한다.
궁케팅은 대개 예매가 시작되자마자 마감된다. 원조 격인 ‘경복궁 생과방’은 이번 상반기 전 회차 입장권이 매진됐다. 생과방은 조선 시대 임금과 왕비의 후식과 별식을 준비하던 곳. 문화재청은 지난 2016년부터 궁중 병과(간식)와 궁중 약차(음료)를 즐길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는데, 최근 소셜미디어를 통해 소문이 나면서 인기가 높아졌다. 인터넷에는 눈물겨운 생과방 궁케팅 후기가 다수 올라와 있다. ‘1차(예매)는 몰라서 못 했고, 2차는 시도했다가 광탈, 3차에 겨우 성공했다. 수강 신청보다 빡센 듯.’ ‘생과방 결제 중 매진…. 짜증 나. 언제 가볼 수 있는 거야?’ ‘솔직히 모든 연뮤(연극·뮤지컬) 티케팅 다 합친 것보다 힘들다.’ 인스타그램에는 ‘생과방’이란 해시태그(#)를 붙인 게시물이 5000건 이상 게재돼 있다. 한복을 입고 생과방을 체험하는 사진을 올린 유튜버 최모씨는 “사방에 뚫린 창으로 구경도 하고 가야금 소리 들으며 힐링 가능. 예약은 힘들지만 너무 좋은 경험이었다”고 했다.
지난 12일 상반기 행사가 종료된 덕수궁 ‘밤의 석조전’과 창덕궁 ‘달빛 기행’ 역시 뜨거운 인기를 모았다. 밤의 석조전은 석조전 야간 탐방과 가배(커피)와 디저트를 음미하는 테라스 카페 체험, 대한제국 배경의 뮤지컬 공연 관람이 포함된 덕수궁 체험 행사다. 예매는 어려웠지만, 프로그램은 훌륭했다는 평이 줄을 이었다. ‘피케팅(피가 튀는 전쟁 같은 티케팅) 광탈하고 취소 표 줍줍(주워 담는다는 뜻)해서 다녀왔는데 프로그램이 너무 좋아요.’ ‘오늘 하루 제가 정말 특별한 사람이 된 기분이었어요.’ 달빛 기행은 청사초롱을 들고 창덕궁 곳곳을 다니는 궁투어. 전문 해설사의 안내, 대금·거문고 연주 등 전통 예술 공연, 왕과 왕비의 산책 모습 재현 등으로 구성됐다. 입장권 예매자는 대부분 30대 이하. 예매 사이트 인터파크에 따르면, 생과방은 입장권 예매자의 82.6%가 30대 이하였고, 밤의 석조전은 81.9%, 달빛 기행은 74.1%가 30대 이하였다.
문화재청은 MZ세대의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올해 ‘밤의 석조전’ 행사에 셀프 사진 스튜디오를 마련했다. 중절모, 리본 장식 등 개화기풍 소품을 비치, 요즘 젊은 층 사이에서 유행하는 ‘인생 네 컷’ 같은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한 것이다.
MZ세대는 왜 궁투어에 빠진 걸까.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김진희 사무관은 “고궁이라는 평범하지 않은 배경에서 사진을 찍고, 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투어를 할 수 있다는 점 등이 MZ세대의 관심을 끈 것 같다”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젊은 세대는 전통 문화를 낯설고 ‘힙’한 것으로 본다”며 “특히 궁투어는 현실에서 벗어나 판타지로 들어가는 것 같은 체험이라 환호를 받는 것”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또 “(관람 인원 제한으로) 희소성이 높은 점 역시 MZ세대의 마음을 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