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좋아하시나요? 요 며칠 A매치 기간이라 축구 이야기가 많이 들려왔을 텐데요. 축구 대표팀 친선경기뿐 아니라 브라질의 네이마르도 한국에 왔고 손흥민 선수의 토트넘도 다음 달 내한해 한국 팬들을 만난다고 하고요. 축구 팬들은 다양한 경기를 골라보는 재미가 있을, 설레는 초여름이네요.
영국에서 “축구 좋아해?”라는 질문은 아마 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협회가 인정한 공식 클럽 수만 4만개가 넘는 나라이니까요. 네이마르나 손흥민처럼 유명 선수가 아니더라도 축구를 하고 있거나 축구를 한 적이 있는 사람도 많습니다. 저희 아이들 역시 전직 축구선수였던 아빠가 가르치기 전부터 이미 어린이집에서 축구를 배워왔습니다. 영국에선 거의 모든 아이가 축구를 하거든요. 어린이집 다닌 아이 중에서 공을 안 차본 아이들은 찾기 힘들 거예요. 물론 여자아이들도요!
사실 여자 축구의 인기는 최근 영국 축구계의 가장 중요한 화두 중 하나입니다. 1990년대 이후 여자 축구를 성장시켜야 한다는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축구협회(FA·The Football Association)는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2020-2024 전략’을 수립해 세계적 수준의 선수를 유치하고, 관객을 극대화하며, 상업적 수익을 늘리는 등 영국을 세계 최고 프로 여성 스포츠 리그 및 대회의 본거지로 세우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그 노력의 결실로 최근 여자 축구의 인기가 높아지며 각종 기록을 갱신하고 있습니다.
오는 7월 31일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릴 예정인 여자 유럽 챔피언십 결승전 티켓은 판매 시작 후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매진됐습니다. 잉글랜드 여자 축구 최상의 단계인 여자 수퍼리그(WSL) 역시 스카이스포츠와 BBC에서 중계되기 시작하면서 점점 많은 시청자를 끌어들이고 있고요. 특히 지난 에버턴과 맨체스터시티의 경기는 80만명의 시청자 수를 기록해 영국 TV에서 가장 많이 시청한 여자 클럽 축구 경기가 되었습니다. 나이절 허들스턴 스포츠 장관은 남자 게임과의 동등성을 달성하기 위해 엘리트와 풀뿌리 차원에서 여성 게임의 대담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제공하겠다는 다짐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영국 여자 축구가 걸어온 길이 늘 꽃길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1881년 최초의 공식 여자 축구 경기가 열렸을 때는 선수들 의복과 외모에 대한 경멸과 조롱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신변에 위협을 느낀 선수들은 가명을 써야 했다고도 하지요. 그럼에도 골키퍼 헬렌 매슈스(그레이엄 부인)를 비롯한 선수들은 끈질기게 버텨냈고, 여자 축구는 1차 대전 때 큰 인기를 끌게 됩니다. 전선으로 파견된 남성 대신 공장으로 몰려든 여성들이 이전 노동자들과 같은 방식으로 공장 마당으로 나가 축구를 하기 시작한 겁니다. 팀은 빠르게 발전해 150팀이 생겨났고 5만3000명 이상의 최대 관중을 기록하며 번창했지만, 흥분한 관중을 통제하는 것에 부담을 느낀 축구협회가 여자 축구 경기를 전면 금지하기에 이릅니다. 축구가 여성의 건강에 위협이 된다는 것이 이유였지요.
그 후로 100년이 흐른 현재, 여성 프로 스포츠는 극적인 변화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2021 년에는 영국 크리켓의 새로운 국내 대회인 ‘더 헌드레드(The Hundred)’에서 26만7000명이 여자 경기를 관람해 새로운 역사를 썼습니다. 럭비 유니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3월 캄프누(Nou Camp, FC바르셀로나의 홈경기장) 에서 열린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맞대결에는 9만1553명의 관중이 모여 열기를 쏟아냈습니다. 발롱도르 수상자 알렉시아 푸텔라스는 그날의 경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지요. “그것은 완전히 마법 같았습니다. 나는 많은 소녀들, 눈에 불꽃을 가진 아이들을 보았습니다. 그날의 모든 것이 놀라운 역사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얼마 전, 8년 동안 영국 여자 수퍼리그에서 활약했던 지소연 선수가 한국행을 결정했습니다. 리그 최다 우승팀이자 올해 여자 리그 우승과 FA컵 리그컵을 들어올린 첼시와의 재계약을 앞두고 내린 결정입니다. 선수가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봐주는 구단을 떠난다는 것은 켤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지 선수의 새로운 여정을 바라보며, 100년도 더 전에 총알처럼 날아드는 공격 속에서 꿋꿋이 골대를 지켰을 그레이엄 부인을 생각합니다. 그들이 열어놓은 길을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는 소녀들을 떠올립니다. 이제 소녀들은 “여자애가 너무 뛰어다닌다”는 핀잔을 받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축구 선수’라는 꿈을 꿀 수가 있으니까요.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를 쓴 김혼비 작가는 ‘남자 축구의 매력이 빠르게 휙휙 지나가는 것이라면 여자 축구는 (상대적으로) 느리고 정적인 몸동작과 전개가 선수들과 공이 만들어내는 축구의 전체적인 그림을 좀 더 명확하게 보여준다’고 했습니다. 저 역시 남편 덕에 최고 수준의 경기를 수없이 직관하는 호사를 누렸지만, 축구의 매력을 눈으로 따라가며 제대로 확인한 경험은 여자 경기를 보며 하게 되었습니다. 골이 터지고 안 터지고가 축구의 전부가 아니라는 ‘축잘알’(축구 잘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제야 좀 이해가 된달까요? 위치 선정, 볼터치, 역습, 압박 같은 것들이 유기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내면서 ‘축구’가 되는 장면이 명확하게 눈에 들어오니 정말 재미있더군요.
작은 체구로 축구를 얼마나 잘하는지 ‘지메시’라고 불리는 선수. 잉글랜드 축구 리그에서 가장 영예로운 상이라는 ‘PFA 올해의 선수상’을 받은 선수의 축구가 어떤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런던 한복판에 걸개 사진으로 걸려 관객 몰이 하던 첼시의 간판 선수를 이제 눈앞에서 응원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별들의 전쟁’도 좋지만 ‘우리들의 블루스’도 좋거든요. 아 물론 좀 많이 격하고 치열합니다. 발로 차고 미끄러져 뒹굴고 힘껏 내달리고요. 한번 보세요. 정말 멋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