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서울 성동구 행당동의 한 아파트 화단에서 40대 여성 A씨와 그의 6세 아들 B군이 떨어져 숨진 채 발견됐다. B군은 발달장애가 있어 정기적으로 지역 복지관에서 심리·미술 치료 등 재활 치료를 받고 있었다. A씨의 이웃은 “장애인 아들만 돌보다 정작 심적으로 지친 본인은 돌보지 못해 생긴 참사”라고 했다. 같은 날 인천에선 60대 여성이 30대 중증 장애인 딸에게 다량의 수면제를 먹여 숨지게 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 아들에게 발각돼 미수에 그쳤다. 이 여성은 죽은 딸을 향해 “같이 살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발달장애인 가정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양육 부담과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장애를 가진 자녀를 살해하거나 동반 자살을 하는 참사가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6개월 동안 주요 매체를 통해 보도된 발달장애인 가정 자살 사건만 10여 건. 장애인 단체에서는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것까지 포함하면 20건이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자살한 장애 가정에 대한 추모제가 열리고 있는 분향소에서 만난 한 어머니는 “발달 장애 자녀가 있는 부모라면 매일 한 번쯤 삶의 희망이 보이지 않아 죽는 게 차라리 낫다고 생각할 것”이라며 “한국처럼 장애인을 방치하는 사회에서 이런 자살 사건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지난 20일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앞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장애인 탈시설’을 주장하고 있다. 최근 양육 부담과 생활고를 비관한 장애인 가정 자살 사건이 늘면서 이들에 대한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벼랑 끝 내몰린 발달장애인 가정

부모가 발달장애 자녀와 함께 생을 마감하는 것을 두고 일각에선 “이 또한 엄연히 살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별다른 정부 지원 없이 24시간 발달 장애인의 모든 양육을 각 가정에서 떠안아야 하는 이른바 ‘독박 돌봄’이 해결되지 않는 이상 동반 자살 문제가 사라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중증 발달장애인 5명 중 2명은 서비스 부족 등으로 장애인 복지 시설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국내 발달 장애인은 25만5207명이다.

장애인 가정이 고통받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빈곤이다. 부모 중 1명이 장애인 자녀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맞벌이를 하기 어렵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20년 발달장애인 부모 117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20%는 ‘자녀 돌봄 문제로 부모 중 한 명은 직장을 그만뒀다’고 답했다. 또 발달 장애인은 다른 신체 질환을 동시에 앓는 경우가 많아 치료 비용이 배로 든다. 정모(55)씨는 21세 중증 자폐성 발달 장애 아들이 최근 혈액암의 일종인 골수형성 이상증 진단을 받았다. 장애 재활과 별도로 병 치료에만 한 달에 100만원 가까이 들어간다. 지난달엔 아들이 대형 마트에서 다른 사람을 폭행하고, 시설물을 부숴 합의금으로 수백만원을 치렀다. 지난해 남편의 실직으로 별다른 수입이 없어진 정씨는 최근 경기도 시흥 월세 아파트에서 나와 충남의 한 임대주택으로 이사했다.

장애인 단체들은 발달 장애인이 낮 시간 동안 공공기관에서 일하며 자립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하는 ‘24시간 지원 체계’ 구축을 요구하고 있다. 중증 장애인 아들을 둔 김모(47)씨는 “발달 장애인은 특수학교에서 고교 과정까지 마칠 수 있지만 그 이후엔 갈 곳이 없어 부모까지 평생 집에 발이 묶인다”며 “각 구의 복지관이나 평생교육센터에 아이를 보내려 해도 1년 넘게 기다려야 하고 최장 5년밖에 이용하지 못한다”고 했다. 발달 장애인 아들이 있는 송모(56)씨는 “한국처럼 발달 장애인 인프라가 열악한 나라에서 장애인은 거주시설에 갇혀 살거나 부모에게 살해당해야 하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독박돌봄’에 우울증 앓는 부모

장애인 당사자뿐 아니라 이들을 돌보는 가족에 대한 정신 상담 치료 지원도 절실하다. 가족 대부분이 장애인 자녀를 돌보는 과정에서 우울증 같은 정신 질환을 앓지만 모든 자원이 자녀에 투입되다보니 이를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가 최근 장애인 가족 37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36.7%가 우울·불안 등 정신 건강 문제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절반가량은 어려움에 처할 때 도움을 처할 곳이 없다고 답했다. 지난 3일 경기 안산에선 홀로 20대 발달장애인 아들 2명을 키워 온 60대 남성이 삶을 비관해 자살했다.

발달 장애인 자녀가 휘두르는 폭력도 감내해야 한다. 자폐성 장애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가 있는 20세 아들을 혼자 키우는 성모(45) 씨는 “올 초 아들이 코로나 확진을 받아 격리되자 폭력성이 심해져 문을 부수고 새벽에 소리를 질러 경찰이 출동했다”며 “매일 아침 눈을 뜨기가 두렵다”고 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이 열악한 현실을 알리기 위해 지난 4월 550여 명이 단체 삭발을 감행했다.

단체들은 탈시설 둘러싸고 갈등

장애인 단체들은 최근 ‘탈(脫)시설’을 둘러싸고 갈등하고 있다. 탈시설은 장애인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이 시설 밖으로 나와 자율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과거 일부 장애인 요양 시설에서 장애인을 학대해 사망에 이르게 한 사례를 들며 탈시설을 주장한다. 우정규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조직국장은 최근 집회에서 “적어도 (시설에) 갇혀 있는 장애인의 삶은 인권적인 삶이 아니다”라며 “탈시설은 UN장애인권리협약에 명시된 권리”라고 주장했다. 이들 단체 주장에 따라 지난 21일 서울시의회는 ‘장애인 탈시설 및 지역사회 정착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가결했다. 장기적으로 장애인 시설에 있는 장애인들이 지역에서 자립할 수 있는 지원 방안을 담고 있다.

반면, 전국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부모회) 등 일부 단체에선 “장애인이 정당하게 거주시설에 머물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박모(61)씨는 “발달장애 아이를 24시간 돌볼 여력이 안 돼 10곳이 넘는 전국 거주 시설을 돌아다녔지만 대기 명단까지 차서 아이를 정신병원에 보낸 적도 있다”고 말했다. 부모회 김현아 대표는 “발달장애인이 시설에서 나올 경우 통제가 어려워 더 큰 사고로 이어지는 등 생존권을 위협받을 수 있다”며 “탈시설을 일률적으로 적용할 게 아니라 각 개인의 상황에 맞는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모회는 최근 오세훈 서울시장 측에 ‘탈시설 조례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해달라’는 요구서를 제출했다.

해당 조례안을 대표 발의한 서윤기 더불어민주당 시의원은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 살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서는 사회적 기반이 마련돼야 하기 때문에 중장기적인 서울시의 지원을 제도화한 것”이라며 “조례에는 시설을 폐지한다거나, 시설에서 강제로 나오게 하는 내용은 없다”고 밝혔다. 한 사회복지사는 “외국에선 장애인 거주시설에 의료진을 둬 장애인이 지역사회로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판단을 내린다”며 “거주 시설을 무조건 폐쇄할 게 아니라 어떤 방향으로 선진화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