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대학원생 임건우(27)씨는 요 근래 편의점들을 순찰하고 있다. 걸어서 30초면 닿는 집 앞 편의점을 두고 7분 거리에 떨어져 있는 편의점을 일부러 찾아가기도 한다. 편의점에 들어서자마자 직진하는 곳은 빵 매대. 목표물은 편의점에서만 파는 ‘크림빵’이다. 임씨는 “원래 빵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편의점 크림빵은 일주일에 3~4개씩 사 먹고 있다”며 “반으로 갈랐을 때 크림이 가득 찬 모습 때문에 더 만족감을 느낀다”고 했다.
대형 프랜차이즈 제과점들이 매장에서 직접 구워내는 빵보다, 공장에서 대량으로 제조하는 이른바 ‘마트빵’이 인기를 끌고 있다. 편의점 CU에 따르면 이번 달 빵 카테고리 매출은 전년 대비 70.1%, 냉장 보관 해야 하는 빵 카테고리 매출은 같은 기간 115.9%가 올랐다. 보름달빵·땅콩잼샌드·꿀호떡 등 ‘연식’이 오래된 원조 마트빵을 찾는 사람도 늘고 있다. 홈플러스에 따르면 지난 5월 한 달간 마트 빵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5%까지 뛰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연세우유 크림빵’은 품절 사태에, 물건 발주 자체를 넣을 수 없다는 공문이 각 편의점에 내려오기도 한다.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내 맛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천덕꾸러기 취급 받던 마트빵을 사람들이 다시 찾는 이유는 뭘까?
이것은 빵인가 크림인가... ‘반갈샷’ 인기
우선 진화된 빵맛이다. 제과점 빵에 비해 맛이 떨어진다는 편견을 깼다. 연세우유 크림빵이 대표적이다. 맛도 맛이지만 크림으로 가득 찬 빵은 절반으로 가른 모습 때문에 사랑받는다. 이른바 ‘반갈샷’. 반을 갈라 크림의 양을 보여주는 것이다. 소셜미디어(SNS)와 유튜브에 우유 크림과 초콜릿 크림이 빵 안 가득 들어찬 모습들이 올라온다. 대학생 임서빈(23)씨는 자주 보던 먹방 유튜브에서 크림빵 먹는 모습을 보고 편의점에 들를 때마다 빵 매대를 꼭 살펴본다고 한다. 임씨는 “편의점 앱을 보고 남은 수량을 확인해서 찾아가기도 하고, 우연히 편의점에서 발견하면 반가워서 맛별로 하나씩 사게 된다”고 했다. 서울 동대문구 한 편의점 점주인 손현수(29)씨는 “인근 대학교에서 교수와 학생들이 단체로 빵 30개를 사가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또 다른 편의점 점주 박정숙(57)씨는 “9개를 주문 넣었는데 오늘은 운이 좋아 초콜릿 크림 빵 2개가 들어왔다”며 “학생들은 물론 중·장년층, 중국인 유학생들이 구매한다”고 했다.·
월등한 가성비... 대체 불가능한 추억의 맛
꿀호떡빵, 땅콩샌드빵, 보름달빵 등 원조 마트빵들도 덩달아 인기다. 가파른 물가 상승에 월등한 ‘가성비’가 가장 큰 이유다. 제과점 빵 1개 값으로 마트빵은 3개를 구할 수 있다. 서울 구로구에서 자취하는 직장인 김민정(36)씨는 “마트에서 5000원에 세 개짜리 단팥크림빵은 할인해서 3950원이면 살 수 있다”며 “가성비가 좋은데 맛도 좋으니 자주 구입하게 된다”고 했다. 의정부에서 대학생 자녀와 함께 사는 워킹맘 김미(50)씨는 “주 3회 이상은 간식용으로 편의점에서 4000원어치 땅콩샌드랑 보름달빵을 사고 있다”며 “통신사 할인, 묶음 행사 덕분에 제과점보다 훨씬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1인 가구, 자취하는 학생 등 경제적으로 열악한 사람들 중심으로 편의점·마트빵 등이 인기를 끄는 것”이라고 했다.
제과점과는 다른 고유의 맛 때문에 마트빵을 찾는 사람도 있다. 경기 수원시에 사는 조종근(45)씨는 보름달빵 3개들이와 꿀호떡 5개들이를 구입해 매주 쟁여놓는다. 조씨는 “프랜차이즈 제과점 카스텔라와 다르게 보름달빵만이 내는 특유의 옛맛 때문에 자꾸 찾게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