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비싼 단체 회식이었다.
지난 15일 그룹 방탄소년단이 데뷔 9주년을 기념하는 2022 BTS 페스타 ‘찐 방탄회식’에서 “잠깐 단체 활동을 멈추고 쉬면서 개인 활동을 강화하겠다”고 말한 후 지난 일주일 사이 하이브 시가 총액이 약 2조원 증발했다. 1시간 분량의 ‘찐 방탄회식’ 영상이 공개되자, 국내는 물론 영국 일간지 더타임스도 3개 면에 걸쳐 기사를 실었다. 전 세계적인 동요에 리더 RM과 멤버 정국, 뷔뿐만 아니라 박지원 하이브 대표까지 “해체가 아니다”라며 해명할 정도였다.
이들은 왜 9주년 페스타에서 이 영상을 공개했을까. RM은 왜 울었을까. 그 속사정을 분석했다.
1. 왜 하필 지금인가?
원래 방탄소년단의 시즌 1 활동은 2020년 2월에 발매된 정규 4집 ‘맵 오브 더 소울 7′까지였다. 이 앨범은 멤버 7명이 데뷔 7주년을 기념하는 앨범으로, 타이틀곡 ‘온(ON)’을 통해 전 세계 스타디움 투어를 돌며 한 막을 장식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면서 계획이 어긋났다. 전 세계 스타디움 투어가 취소됐고, 예정된 앨범 활동을 거의 하지 못했다. 모든 게 중단된 채 시간이 흐르다, 그해 8월 코로나로 지친 전 세계 팬들을 위로하려고 낸 디지털 싱글 ‘다이너마이트’가 국내외 차트를 휩쓸며 빌보드 핫100 1위에 올랐다. 그해 연말 그래미 어워드 후보에도 올랐지만, 수상엔 실패하자 이들은 다음 그래미를 목표로 1년 더 단체 활동을 하기로 한다. 그해 12월 국방부도 병역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공포해 맏형인 진의 군대 입영을 1년 연기했다. 2022년까지 완전체 활동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러나 올해 그래미 수상도 불발되면서 멤버들은 생각이 많아졌다. RM은 최근 하이브 자회사인 위버스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올해 그래미에서 레이디 가가나 H.E.R을 보며 ‘우리가 낼 수 있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새롭게 고민해야 할 때인 것 같다”며 ‘현상 유지로는 1등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는 올해 4월 미국 라스베이거스 콘서트에서 더욱 굳어졌다. 그는 “호텔에 있는 동안 생각할 시간을 가졌다. 뭘 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지금 내가 잡고 있는 실마리를 잡아서 끌어내야 할 것 같았다”고 했다.
2. RM은 왜 울었나?
그런데 회식 영상에서 RM은 왜 유난히 취했고, 울었던 것일까.
아이돌 그룹 활동이 4~5년이 넘어가면 소속사가 하라는 대로 따르는 시기는 끝난다. 각자 추구하는 음악적 색깔과 개별 활동 욕심이 있는 멤버들이 단체 활동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숙소 생활은 물론, 개인 스케줄도 제한된다. RM이 “K팝 시스템은 개인을 성숙하게 놔두지 않는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회사와 멤버들의 요구를 조율하며 중재자 역할로 그룹을 끌고 간 리더가 RM이었다. 하이브 안팎에서 “RM이 멈추면 방탄소년단은 멈춘다”는 말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RM은 여기에 해외 활동 대변인으로서의 역할에 대해서도 어깨가 무거웠다고 한다. RM은 “내가 영어를 한다는 이유로 각종 인터뷰에서 팀에 대한 입장을 말하는데, 이게 내 생각이지, 팀의 생각인가라는 고민도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그룹 활동을 쉬지 않고 9년간 끌고 온다는 것은 전 세계 보이 그룹 역사에서도 드물다. 방탄 멤버들이 개인 인스타그램을 시작한 것도 불과 작년부터. 아직 멤버들은 개인 유튜브 채널도 없다. 맏형 진은 위버스 매거진 인터뷰에서 “팀으로서의 욕심은 굉장히 많은데, 개인적인 욕심은 팀이 우선이라 믿고 접어주는 부분들도 있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싶은데, 모두 팀을 먼저 생각하니까. 조율을 잘해준 남준이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3. 후폭풍 예상 못 했나
지난 10일 발표된 ‘프루프’ 앨범은 앤솔로지, 일명 스페셜 앨범이다. 신곡과 과거 히트곡들을 담았다. 쉬면서 개별 활동을 늘려도 되지만, 이런 속마음을 팬인 ‘아미’에게는 말하고 싶었고, 페스타 영상을 통해 실행했다. 그러나 영상이 기사화되면서 멤버들이 입 밖으로도 꺼내지 않은 ‘해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RM은 위버스 게시판에 “아미들과 특별하게 교감하기 위해 올린 영상에서 1을 1이라고 말했는데, 2로 받아들여지는 불필요한 오해가 생겼다”고 말했다.
이는 소속사에서 영상으로 인한 후폭풍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현재 하이브의 임원진에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오래 종사한 사람이 거의 없다. 최고경영자인 박지원 대표는 게임회사 넥슨 출신, 김태호 최고운영책임자(COO)도 네이버와 카카오 전신인 NHN과 다음에서 오래 일했다. 커뮤니케이션을 총괄하는 이진형 최고커뮤니케이션책임자(CCO)도 위메프 출신이다. 엔터업계가 가진 특유의 문화와 감성에 대한 이해 없이 IT 기업 방식으로 경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 사건이 라스베이거스에서의 병역 관련 발언이다. 아이돌 그룹의 병역 문제는 굉장히 민감하게 접근해야 하는 부분임에도 이진형 CCO의 발언은 병역법을 마치 기업의 발전을 저해하는 규제처럼 접근하다 보니, 그 법을 통해 군 복무를 하는 남성들과 가족들의 반발이 일어났다. 한 업계 관계자는 “엔터 그룹에서 가장 보호받아야 할 것은 기업이 아닌 가수다. 그러나 현재 하이브의 경영에서는 가수보다 기업이 더 중시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팬을 소비자로만 보기 때문에 나오는 패착”이라고 지적했다.
4. 첫 솔로, 왜 제이홉부터인가
지난 24일 정국은 미국 싱어송라이터 찰리 푸스와 협업곡 ‘레프트 앤드 라이트(Left and Right)’를 발표했다. 그러나 첫 공식 솔로 앨범은 제이홉부터다. 제이홉은 다음 달 31일(현지 시각) 미국 롤라 팔루자 페스티벌에 참가해 1시간 동안 단독 공연을 할 예정이다. 이 시기쯤 솔로 앨범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제이홉의 별명은 ‘남미의 왕자’. 브라질·콜롬비아 등에서 개인 팬덤이 막강하기 때문이다. 2018년 발표한 ‘호프 월드’는 브라질 등 중남미 국가 16국에서 아이튠즈 1위에 올랐다. 제이홉의 밝고 건강한 이미지가 남미 팬들에게 더욱 인기를 얻는 요인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이번 솔로 앨범은 분위기가 많이 바뀔 예정이다. 제이홉은 이를 ‘흑화’라고 말하며 “이번 앨범은 굉장히 어둡기도 하고 날것의 느낌을 많이 주고 싶었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는 기대도 있다”고 말했다. 앨범의 메시지도 자신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내가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고, 내 이면엔 어떤 감정이 있는지, 이야기하다 보니 마냥 밝지만은 못하겠더라”고 했다.
5. 방탄은 계속 달릴까
방탄소년단은 2024년까지 하이브와 계약돼 있다. 지난해 진과 제이홉, RM 등이 방시혁 하이브 의장으로부터 증여받은 주식 일부를 매도하긴 했지만, 아직도 하이브 주주다. 멤버들은 개별 활동을 강화하면서 틈틈이 그룹 활동도 이어갈 예정이다. 지난 16일에는 2030 부산엑스포 홍보대사 참여를 공식화했다. 멤버 7명은 숫자 7을 문신으로 새기고도 있다.
RM의 솔로 앨범은 특별한 장르가 없고, 뷔 앨범은 평소 좋아한 재즈 색채가 많이 묻어날 것으로 보인다. 지민은 “다양한 음악을 시도하고 싶다”고 했다. 맏형 진의 솔로 앨범이 가장 마지막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 상황에 따라 다시 완전체 활동도 시작할 예정이다. 이는 각자가 원할 때, 병역 문제도 해결된 후에 진행될 예정이다. 어떤 형식이 될지는 멤버들 의지에 달렸다. 현재 막내 정국은 군대를 2027년까지 연기할 수 있다. 대신 개인 활동을 하더라도 방탄소년단 자체 예능인 ‘달려라 방탄’을 통해 함께하는 모습은 계속 보여줄 예정이다.
앨범 ‘프루프’의 신곡 중에는 제목이 ‘달려라 방탄’이 있다. 여기서 멤버들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감사함을 표한다. 빌보드 싱글차트 73위에 올랐다. 타이틀곡 ‘옛 투 컴(yet to come)’은 아미들에게 하는 말이다. 한글 곡으로 미국 내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지만 빌보드 핫 100 13위에 올랐다.
“아직도 배울 게 많고 나의 인생 채울 게 많아/ 모두가 숨죽인 밤, 우린 발을 멈추지 않아/ 그날을 향해 더 우리답게/ 너와 나, 아직 최고의 순간은 오지 않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