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던 장마가 시작되면서 가뭄에 애타던 농민과 식수 부족에 시달리던 고지대 지역 주민들의 마음도 촉촉해졌다. 이번 가뭄은 지독하고 길었다. 지난해 겨울에 시작돼 최근까지 계속되면서 한때 50개 기초 지자체에서 비상 급수까지 실시됐다. 지난 11일까지 전국의 누적 강수량은 196.2㎜. 평년의 57% 수준이다. 800m였던 소양강 강폭은 100m 가까이 줄었다. 농촌 모내기도 줄줄이 차질을 빚었고 각종 작물도 충분히 자라지 못해 농가들은 적지 않게 피해를 입었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9집 앨범을 발매하며 흥행 몰이를 하던 가수 싸이(PSY)가 여론의 비난을 받았다. 매년 여름 싸이가 객석에 물을 뿌리며 공연하는 콘서트 ‘흠뻑쇼’ 때문이다. 싸이가 지난달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코로나 사태로 멈췄던 흠뻑쇼가 재개됨을 알리며 ‘흠뻑쇼 1회당 관중에게 300t의 물을 뿌린다’고 말한 게 화근이 됐다.

최근 가뭄 문제가 부각되자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 등에서는 “가뭄이 심각한데 그렇게 많은 물을 뿌리며 노는 게 적절한 것이냐”는 의문과 비난 여론이 일었다. 이 와중에 배우 이엘이 지난 12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워터밤 콘서트 물 300t 소양강에 뿌려줬으면 좋겠다”고 ‘소신 발언’을 하면서 흠뻑쇼를 둘러싼 찬반 논란이 대차게 일었다.

정말 싸이의 흠뻑쇼는 ‘가뭄 중 민폐’일까. 가뭄에 물을 뿌리는 콘서트를 하는 건 올바르지 않은 건가.

지난 2018년 서울 잠실 종합운동장 보조 경기장에서 열린 가수 싸이의 콘서트 '흠뻑쇼'에서 객석을 향해 물을 뿌리는 퍼포먼스가 펼쳐지는 모습. 싸이는 최근 한 방송에서 "흠뻑쇼 1회에 300t의 식수를 뿌린다"고 말했다. /싸이 'Everyday' MV

◇물 3000t으로 가뭄 해소?

통상 물 1kg이 물 1ℓ라고 보면 흠뻑쇼 1회당 30만ℓ의 물이 필요하다. 대략 18평 아파트 한 채를 꽉 채우는 양이다. 전국 9~10곳에서 순회 공연을 하면 대략 270만~300만ℓ의 물이 흠뻑쇼에 사용되는 것이다.

3000t의 물을 아끼면 가뭄 해갈에 도움이 될까. 농업용수를 관리하는 한국농어촌공사에 묻자 “그 정도로는 역부족”이란 답이 돌아왔다. 공사 관계자는 “보통 농촌에 있는 중형 저수지의 저수량이 26만t 정도”라며 “큰 저수지는 100만t 이상도 들어간다”고 했다. 그는 “가뭄엔 3000t의 물도 귀하다 할 수 있지만, 전국적 가뭄을 해소하는 데 영향을 주지는 못하는 양”이라고 말했다. 참고로 소양강댐의 최대 저수량은 29억t이다.

싸이는 방송에서 “흠뻑쇼에 쓰는 물은 식수를 쓴다”고 말했다. 농어촌공사에 따르면 통상 식수로 쓰는 수원과 농업용수용 수원은 별도로 관리된다. 공사 측은 “식수와 농업용수용 수원이 같은 곳도 있지만, 대개 식수 수원은 상류 쪽에 많고 농업용수 수원은 이와 별도로 관리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더 중요한 팩트는, 2022년 싸이의 흠뻑쇼는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올해 첫 공연은 다음 달 9일 인천에서 열린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싸이도 매년 흠뻑쇼를 해왔기 때문에 봄·가을철에 가뭄이 심하다는 걸 의식해서 공연 스케줄을 짜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기본적인 사실관계 확인도 없이 비판 담론이 형성된 것은 분명 문제”라고 했다. 이번 논란을 주로 다룬 건 연예 매체들이었는데, 이 중 흠뻑쇼와 관련된 사실관계를 명확히 한 보도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처음에는 여러 매체가 콘서트가 열리는 시점을 별 생각 없이 언급하지 않는다 여겼는데, 갈수록 일부러 언급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논란을 일부러 부추기는 우리 사회의 비합리성이 드러난 사례”라고 말했다.

◇“공동체 의식과 시민 윤리의 부재”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뭄에 싸이의 흠뻑쇼를 하는 게 적절치 않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같은 공동체에 있는 구성원이 겪는 고통을 외면하고, 갈수록 심해지는 물 부족과 기후위기 문제를 둔감하게 하는 행동”이라고 싸이를 꾸짖는다. “흠뻑쇼가 문제면 그보다 더 많은 물을 쓰는 워터파크 운영도 중단시켜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박에는 “우리나라는 물 사용에 너무 관대하고 해외에서는 잔디에 물을 주는 것도 통제하는 상황”이라며 “당연히 워터파크 운영도 가뭄이 해소될 때까지 중단해야 한다”고 받아친다.

영화감독 이송희일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배우 이엘의 발언을 지지하면서 “내 돈 내고 물 좀 쓰겠다는데 왠 참견이냐며 싸이를 옹호하던 도시 사람들도 참 못났지 싶었다”며 “시시각각 다가오는 기후위기 앞에서, 역사상 최악의 가뭄과 산불 앞에서, 그 위기의 최전선에서 애면글면 발 동동 구르고 있는 농부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차리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라고 했다. 기후 위기와 도시와 농촌의 공동체성 상실이라는 문제에 대한 고민이 없는 건 시민 윤리의 부족이라는 지적이다.

◇“싸이에 대한 비난이 문제의 본질 가려”

이런 여론에 대해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싸이에 대한 비난은 흠뻑쇼와 가뭄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팩트 체크 없이 자신의 도덕적 프레임에 갇혀 ‘가뭄 상황에서 나는 농민과 농업을 걱정한다’는 식의 도덕적 우월성을 드러내려는 의도가 강하다”고 말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공동체 의식을 강조하는데, 정작 싸이의 흠뻑쇼가 문화적으로 사회에 기여한 부분은 배제되고 있지 않은가”라며 “싸이의 흠뻑쇼가 반공동체적이라고 하는 건 싸이의 흠뻑쇼가 그간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줬던 행복감은 무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싸이에 대한 비난 자체가 기후 위기와 물 부족 문제의 핵심을 도리어 은폐한다는 분석도 있다. 책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을 번역한 철학자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은 “가뭄과 기후위기 때문에 흠뻑쇼나 워터파크처럼 생활에 필수적이지 않은 물 사용을 부정한다면, 그건 환경 종말론에 근거한 극단적 환경 엄숙주의”라며 “가뭄과 기후 위기가 정말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기후 위기와 수자원 확보와 치수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하는데, 특정한 연예인을 비난하는 방식으로 담론이 흘러간 건 그런 생산적 논의를 도리어 가로막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논란이 ‘만만한 유명 연예인’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올바름을 강조하려는 ‘PC주의’의 과도한 비난에서 불거진 것이란 지적도 있다. 김헌식 평론가는 “싸이가 유명 인기 아이돌처럼 강력한 팬덤이 있다면 이런 비난을 받았을까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배준용 주말뉴스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