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20년 3월 중학생 8명이 서울에서 렌터카를 훔쳐 대전까지 질주하다 사람을 치어 숨지게 했다. 하지만 이들은 반성하기는커녕 “죽이고 싶어서 죽였냐”며 적반하장 태도를 보였다. 소셜미디어에는 ‘구미경찰서 제낄 준비’ ‘분노의 질주 200 찍었다’며 낄낄대는 글들이 가득했다. 당시 나이 만 13세. 살인을 해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만 14세 미만 촉법소년(觸法少年)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2. 지난 2월 울산에선 심야시간대 무인점포 결제기를 노려 절도 행각을 벌인 A군(13세)이 경찰에 붙잡혔다. A군은 20여 차례 상습적으로 절도를 해왔고, 피해 금액은 700만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두 차례 붙잡혔으나 풀려나면 다시 범행을 저질렀다. 경찰서에서 그는 당당하게 “난 촉법소년인데 처벌할 수 있겠냐”며 큰소리를 쳤다.
◇촉법소년 강력범죄의 62.7%가 만 13세
법무부가 촉법소년의 기준 연령을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관련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8일 주례 간담회에서 “촉법소년 연령 기준 논의를 속도감 있게 추진해달라”고 언급했고, 14일 법무부는 ‘촉법소년 연령기준 현실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촉법소년 연령 하향’은 윤석열 정부의 국정 과제이기도 하다. 윤 대통령은 대선 때 촉법소년 연령 기준을 만 14세 미만에서 만 12세 미만으로 낮추겠다고 공약했었다.
촉법소년이란 범죄를 저지른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형사 미성년자’를 뜻한다. 형법 9조에 ‘14세가 되지 아니한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범법 행위를 저질렀으나 형사 책임 능력이 없기 때문에 처벌받지 않는다. 대신 소년법에 따라 사회봉사, 보호관찰, 소년원 송치 등 보호처분을 받는다. 전과(前科) 기록도 남지 않는다. 육체적·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청소년에게 형벌보다는 교정·교화의 기회를 부여하자는 취지다.
촉법소년 연령을 낮추는 데 찬성하는 전문가들은 “현행 촉법소년 연령 기준은 1953년 제정됐다. 6·25전쟁이 끝난 직후, 당시 발육 정도나 정신적인 성숙도, 선진국의 선례를 봤을 때 14세 정도가 적당하다고 본 것”이라며 “지금은 청소년이 과거에 비해 성숙해진 데다 범죄의 심각성, 사회적 인식도 달라진 만큼 기준 연령을 낮춰야 한다”고 말한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살인·강도·강간·절도 등 강력범죄를 저질러 소년부에 송치된 촉법소년은 3만5390명. 2017년 6282명에서 2018년 6014명으로 소폭 줄었다가 2019년 7081명, 2020년 7535명, 지난해 8474명으로 점차 증가했다. 특히 만 13세의 강력범죄 비중이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최근 5년간 강력범죄를 저지른 촉법소년의 62.7%(2만2202명)가 만 13세였다.
◇“난 촉법소년이니까 괜찮아”가 문제
점점 잔혹해지는 촉법소년 범죄도 연령을 낮추자는 여론을 확산시키고 있다. 2019년 경기도 수원시 한 노래방에서 여중생 B양(13세) 등 가해자 7명이 초등학생 C양(12세)을 집단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들은 피해 학생의 얼굴이 피로 뒤덮일 때까지 때린 뒤 이를 촬영해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작년 8월엔 13세 청소년이 모친이 꾸중했다는 이유로 부엌칼로 살해했고, 촉법소년에게 성폭행당한 여학생이 극단 선택을 하는 사건도 벌어졌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제일 큰 문제는 죄를 지어도 형사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해 범죄를 저지르는 일부 청소년들”이라고 했다. 촉법소년 연령을 낮추는 것이 실제 ‘처벌’의 목적보다는, 평생 낙인이 되는 형사처벌에 대한 두려움을 줘서 범죄를 억제하는 위화 효과를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촉법소년 연령 하향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서혜진 더라이트하우스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아이들이 신체적으로 성숙해진 건 맞지만 정신적 판단력이나 형사 책임을 질 수 있는 연령인가에 대해선 치밀한 연구가 필요하다”며 “지금의 논의는 극악무도한 일부 범죄 사례에 초점을 맞춘 것 같다. 촉법소년 연령을 낮춘다고 해서 소년 범죄를 극적으로 줄일 수 있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소년범의 아버지’라 불리는 천종호 대구지법 부장판사는 소셜미디어에 “연령 하향은 필수적으로 소년범에 대한 처벌 강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전 세계적으로 볼 때 엄벌주의를 펼친 국가에서 범죄율이 현격히 낮아졌다는 보고가 없는 것을 보면, 처벌 강화가 일반 예방(비행 방지) 또는 특별 예방(재비행 방지)에 얼마나 효과적일지는 장담할 수 없다”는 글을 올렸다.
◇ 형사사법시스템 함께 바꿔야
재반론도 나온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촉법소년 나이를 낮춘다고 해서 모두 형벌을 받고 전과자가 되는 게 아니다. 연령을 낮춰도 여전히 보호처분은 가능하다”며 “보호처분으로 도저히 교화가 어려운 1%의 흉악범죄를 범한 소년에게 형벌을 부과해 교정의 실효성을 높이자는 것”이라고 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도 “촉법소년 연령 하향에 반대하는 분들이 가장 오해하고 있는 게 바로 이 부분”이라며 “우리 몸에 암이 생겨서 방사능 치료를 결정했다고 치자. 이때 치료란 온몸에 다 방사능을 쏘자는 게 아니라 해당되는 암 부위에만 방사능 치료를 하자는 것”이라며 “촉법소년 연령을 낮춰도 잔혹한 흉악범죄, 촉법소년임을 악용하는 상습범죄 등 일부에만 해당되는 것”이라고 했다. 한동훈 장관도 “강간이나 강도 등 흉포 범죄 위주로 처벌이 이뤄질 것”이라며 “어릴 때 실수로 인해서 전과자가 양산될 것이라는 우려가 없도록 정교하게 준비하겠다. 경미한 범죄에 대해선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연령 하향만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고, 형사사법시스템의 변화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서혜진 변호사는 “소년범들이 다른 범죄로 재발할 가능성을 차단하고 다시 사회로 돌아올 수 있도록 교화하는 시스템을 강화하는 게 우선”이라고 했다. 이수정 교수는 “통합가정법원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현재는 소년범죄의 형사절차(일반법원)와 보호절차(가정법원)의 담당 관할이 이원화돼 있어 촉법소년 수사 자료가 없는 검찰이 과거 보호처분을 받은 소년을 초범으로 분류해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사례가 있다는 것. 이 교수는 “소년범들은 처음 처벌받을 때 경각심이 가장 높기 때문에 어린 나이일수록 빨리 개입해야 하지만 지금의 형사사법 절차로는 조기 개입이 어렵다”며 “통합가정법원을 도입해 오류를 줄이고 소년범들이 다시 사회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