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6일 서울 광장에서 성 소수자들의 퍼레이드인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예정되면서 찬반 논란이 커지고 있다. 서울시가 광장 사용을 단 하루만 허용한 것에 대해 퀴어 축제를 주관하는 측은 “명백한 차별 행정”이란 입장이다. 보수 기독교 단체들은 여느 때처럼 퀴어 축제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퀴어 축제가 동성애를 조장하고 건강한 가정과 사회에 악영향을 준다”며 대규모 반대 집회를 예고한 상태다.
그런데 퀴어 축제마다 반복된 이번 논란은 여느 때와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원숭이두창(Monkeypox)’ 때문이다. 얼마 전 국내에서도 첫 확진자가 나오면서 불안감이 커진 가운데, 퀴어 축제에 반대하는 측에서는 “동성애자들 때문에 원숭이두창이 확산하고 있는데 동성애 축제를 허용하는 게 맞느냐”며 비난하고 있다. 일부 보수 단체들도 “퀴어 축제가 열리면 외국의 동성애자들이 입국해 원숭이두창을 유입·확산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감염병 전문가들은 “원숭이두창에 대한 오해와 성 소수자에 대한 혐오 정서가 도리어 원숭이두창을 대중적으로 확산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왜 그럴까.
◇원숭이두창은 동성애자만 걸린다?
원숭이두창은 천연두와 비슷한 바이러스 전염병이다. 감염되면 최대 21일의 잠복기를 거쳐 감기 몸살 증세로 시작해 발진이 나타나고 물집에 이은 딱지가 생긴다. 주로 입 주위나 사타구니 주변의 발진과 물집에 바이러스가 몰려있다. 원숭이두창 환자와 밀접하게 접촉하거나 원숭이두창에 걸린 야생동물을 만져도 걸릴 수 있다. 코로나처럼 호흡기나 공기 감염될 위험은 적다. 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밀접한 접촉(Close Contact)일 때 감염되고, 일상적인 접촉(Casual Contact)으로는 감염되지 않는 것으로 보고된다”고 말했다.
그런데 “원숭이두창은 동성애자들만 걸리는 질환”이라는 말이 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현재 세계적으로 원숭이두창에 걸린 환자의 대부분이 동성애자이다 보니 오해가 생기기 쉬운 상황”이라고 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지난달 15일까지 42국에서 2103명이 원숭이두창에 감염됐는데, 이 중 468명을 분석해 보니 99%가 남성이고 대부분 남성과 성관계를 맺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영국 보건안전청(UKHSA)이 지난달 10일 발표한 원숭이두창 환자 대상 설문조사에서도 152명 중 151명이 동성애자라고 답했고,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도 원숭이두창의 지역사회 내 전파가 주로 남성 간 성적 접촉을 통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인과관계를 혼동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동성애자 집단에서 먼저 퍼지다 보니 동성애자만 걸리는 것처럼 착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WHO에서는 스페인과 벨기에에서 열린 ‘레이브 파티(Rave Party)’에 모여든 사람 간에 밀접 접촉과 성적 접촉이 발생하면서 동성애자 집단 위주로 확산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 이 파티에 동성애자 집단이 참석했고, 이들의 밀접 접촉을 통해 동성애자 위주로 전파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김우주 교수는 “현재 감염된 사람을 보면 소수이지만 여성도 있고, 아프리카에서 보호 장구 없이 환자를 보살피다 걸린 의료진도 있다. 환자의 가족이 밀접 접촉으로 감염된 경우도 보고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곤혹스럽다는 입장이다. 정재훈 가천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전문가로서 대중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게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현재로선 세계적으로 동성애자 집단이 원숭이두창에 고위험 집단인 것은 맞는다. 동성애자 커뮤니티는 규모가 작고 밀접하게 접촉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한번 원숭이두창 확진자가 나오면 감염·전파 위험이 높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국내에는 아직 유입·확산이 본격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국내 동성애자 집단을 고위험 집단으로는 볼 수 없는 상황”이라며 “원숭이두창은 밀접 접촉으로 감염되기 때문에 배우자, 가족 등 밀접한 집단 내에서는 얼마든지 전파될 수 있다”고 말했다.
◇“2020년 이태원 유행 반복해선 안돼”
‘원숭이두창은 동성애 질환’이라는 낙인찍기가 이어질 경우 되레 원숭이두창이 더 확산될 위험이 높아진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우주 교수는 “에이즈나 결핵, 코로나 등 감염병 위기가 올 때마다 소수 집단에 대한 혐오와 낙인찍기가 반복돼 온 게 인류의 역사”라며 “마녀사냥식 혐오가 그들을 더 숨어들게 만들어 감염병 통제가 더 어려워졌다는 것도 역사적으로 반복된 현실”이라고 했다.
불과 2년 전에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2020년 5월, 코로나 확진자가 나온 서울 이태원 클럽들이 ‘동성애자 클럽’이라는 사실이 부각되고, 일부 확진자들이 성 소수자에 대한 낙인을 우려해 조사에 제대로 응하지 않으면서 초기 전파 차단에 차질을 빚었다. 정재훈 교수는 “원숭이두창 확진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감염자 발견을 늦추거나 진단 자체를 어렵게 해서 사회를 더 크게 위협할 수 있다”며 “사회 안전을 보장하면서도 개인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대응 체계를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야외 집회에서 원숭이두창이 대규모 전파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 예상이다. 현재로선 공기 감염 가능성이 극히 낮은 데다, 야외에서는 비말 감염 위험이 크게 낮아진다. 김우주 교수는 “원숭이두창은 키스나 포옹 등 성적 접촉이나 밀접한 접촉만 이뤄지지 않는다면 감염 위험은 크지 않다”며 “만약 감염자가 있어도 증상이 나타나기 전이라면 전파력이 없다”고 말했다.
[배준용 주말뉴스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