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공이 말하였다. “여기 아름다운 옥이 있으면, 궤에다 넣어 감추어두어야 합니까? 좋은 가격(혹은 좋은 상인)을 찾아 팔아야 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팔아야지! 팔아야지! 나는 좋은 가격을 기다리고 있다.”(子貢曰, 有美玉於斯, 韞匵而藏諸. 求善賈而沽諸. 子曰, 沽之哉. 沽之哉. 我待賈者也) -‘논어’ 자한편
지성사를 공부하던 학생 시절 에피소드다. 당시 선생님은, 글이 사회에서 유통되며 비로소 갖게 되는 의미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나는 물었다. “선생님, 어떤 책이 전혀 유통되지 않은 채로 오랜 세월이 지나 산속에서 발견되었다고 상상해보죠. 그런데 그 책이 하필 정말 창의적이고 체계적이고 놀라운 내용을 담고 있었어요. 그래도 별 가치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요?” 당시 선생님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당대에 가졌을 수도 있었을 사회적, 역사적 의미는 없다.”
글은 일단 자기 자신을 위해서 쓰는 것이고, 그것만으로 충분할 때가 많다. 그러나 폭넓은 사회적, 역사적 의미를 얻고자 하는 사람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자기 글을 출판하려 든다. 생각의 유통망에 글을 던져 넣고, 독자들의 선택을 기다린다. 그 글은 독자들의 마음속에서 더 풍부한 의미를 얻기도 하지만, 상처 입고 왜곡되기도 한다. 그래도 어느 날 그는 결심한다. 자기 마음의 궤 속에 꼭꼭 숨겨 놓았던 글을 세상에 꺼내놓기로, 어두운 궤 속에서는 찾을 수 없는 사회적 의미를 얻기로, 상처와 왜곡의 가능성을 감수하기로.
공자도 마찬가지다. “여기 아름다운 옥이 있으면, 궤에다 넣어 감추어두어야 합니까? 좋은 가격을 찾아 팔아야 합니까?”라는 제자의 물음에 단호하게 대답한다. “팔아야지! 팔아야지!” 이 “판다”는 표현이 인간을 상품화하고 있다는 식의 비판은 부적절하다. 평소 상업에 관심이 많았던 자공이기에 상업에 관련된 비유를 사용했을 뿐이다.
제자인 자공이 굳이 저런 질문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심장하다. 공자가 평소에 자신을 팔기 위해 늘 전전긍긍하고 있었다면, 자공이 새삼 저런 질문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기에 저런 질문이 제기된 것이다. 선생님은 도대체 자신을 팔 생각이나 있는 것일까? 저렇게 세상의 주변이나 떠돌다가 인생을 끝마치려 하는 것일까? 혹시 자신을 판다는 행위 자체를 나쁘게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었기에 굳이 저런 질문을 제기한 것이다.
“팔아야지! 팔아야지!” 그런데 무엇을 파는가? 공자가 팔고자 했던 것은 두 가지다. 자신의 정치적 역량과 자신의 생각. 공자의 정치적 역량을 사 줄 사람은 권력자들이다. 시민 사회라고 할 만한 것이 발달하지 않았던 그 시절, 정치적 열망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치판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실로 공자는 자신의 정치적 역량을 사 줄 권력자를 찾아 이 나라 저 나라를 애타게 헤매었다. 그 과정에서 이런저런 관직을 얻기도 했지만, 공자의 정치적 기획은 결국 실패하고 만다.
공자의 생각을 사 줄 사람은 제자들이다. 출판계라고 할 만한 것이 발달하지 않았던 그 시절, 자기 생각을 전파하기 위해서는 기꺼이 그 생각을 배우고자 하는 후학을 직접 만날 필요가 있다. 그래서일까, 공자는 “최소한의 예를 갖춘 사람이라면, 가르치지 않은 적이 없다”(自行束脩以上, 吾未嘗無誨焉·논어 술이)고 말했다. 실제로 공자 제자들 대다수는 귀족이 아닌 보통 사람들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공자가 이토록 자신을 팔고자 하는 데 열성이었지만, 무조건 팔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善賈’(선가 혹은 선고)라는 표현이 바로 그 판매의 조건을 나타낸다. 善賈에는 크게 보아 두 가지 해석이 있다. 많은 주석가들이 ‘善賈’를 좋은 가격 혹은 제 가격이라는 뜻으로 풀이한다. 노골적으로 가격을 운위하는 풀이가 너무 천박하다고 여기는 오규 소라이(荻生徂徠) 같은 주석가는 善賈를 좋은 상인이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어쨌거나, 아무 가격 혹은 아무 상인에게나 팔지는 않겠다는 취지다.
좋은 가격 혹은 제 가격이라는 것이 꼭 높은 가격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善賈라고 했지 高價(고가)라고 하지 않았음에 주목하라. 좋은 가격, 혹은 제 가격이란 턱없이 높지도 턱없이 낮지도 않은 적절한 가격이다. 자신의 가치에 맞는 적절한 가격이 존재할 경우, 기꺼이 시장으로 나아가되,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머물러야 한다. 세상이라는 유통 시장에 나아가 기꺼이 상품이 되겠으되, 어떤 경우에든 팔리고야 말겠다는 것이 아니라 제 가격에 팔리겠다는 것이다.
제 가격 혹은 제 상대를 만나는 것이 어디 정치만의 일이겠는가. 직장을 구할 때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역량에 걸맞은 곳을 만나야 한다. 높은 연봉은 매력적이겠지만, 연봉이 높다고 그곳이 곧 자기에게 맞는 직장이라는 법은 없다. 연봉을 미끼로 해서 과로사의 위기에 몰리거나, 보람을 느낄 수 없는 일에 내몰리면 그 삶은 결국 피폐해지고 말 것이다. 고용주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해당 직무를 처리할 능력이 없는 이를 뽑을 수는 없다. 동시에, 해당 직무 역량을 훌쩍 뛰어넘는 초능력자도 반갑지 않다. 그런 초능력자는 조만간 그 직장을 떠나 버릴 것이기에. 떠나버리면, 사원을 찾아야 하는 수고를 다시 해야 한다. 제 가격 혹은 제 상대를 만나는 일이 중요하기로 연애만 한 게 또 있을까.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잘생긴 외모와 재력은 매력적이겠지만 미모의 재력가라고 해서 자기에게 적절한 상대라는 법은 없다. 제 상대를 만나지 못한 연애는 조만간 파국으로 치닫는다.
자신을 제 가격에 팔기 위해서는, 시장을 잘 아는 일만큼이나 자신을 잘 아는 일이 중요하다. 자신을 알아야 그에 맞는 상대를 찾지 않겠는가. 자기가 자기를 잘 안다는 법은 없다. 자신을 ‘사 줄’ 상대를 찾는 과정에서 몰랐던 자신을 좀 더 잘 알게 되기도 한다. 그렇게 새로 발견한 자신은 종종 시장 속의 자신이다. 자신의 상대적 가치는 해당 시장의 현황에 따라 달라진다. 쉽게 대체 가능한 인력일수록 시장에서 가격은 낮고, 아예 유일무이한 사람은 시장 가격을 설정하기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