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7월 2일) 이른 아침의 일이다. 모처럼 시간을 내어 시골집 텃밭 우거진 잡초를 낫으로 대충대충 걷어내던 참이다. 갑자기 왼쪽 손등이 거듭거듭 따갑다. 순간 쥐고 있던 낫을 떨어뜨리고 오른손으로 왼손을 누르면서 살펴보니 벌건 점들이 보인다. 벌들에게 쏘였다. 한때 토종벌을 키워본 필자의 경험상 꿀벌도 땅벌도 아니다. ‘짜증스러운’ 통증을 주는 쌍살벌이다. 벌 쏘임에 이력이 난 필자이기에 제초 작업을 이어갔지만 통증은 계속된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왼쪽 손등과 팔목이 퉁퉁 부어있다.

남원 양씨 600년 집성촌인 전북 순창군 구미마을에 있는 대모정(大母井)의 현재 모습. 예전에는 마을 사람들이 넉넉히 먹을 물이 있었지만, 지금은 수량이 줄고 물이 탁해져 마실 수 없는 상태다. 김두규 교수 제공

마을에서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자식과 풀(잡초)은 못 이긴다!’ ‘풀 때문에 못살아!’ 마침 지나가던 이웃 할머니가 풀 뽑는 필자를 보고 한마디 던진다. “더운데 언제 다 뽑을랑가. 사이사이 풀약(제초제) 뿌려불소!” 쌍살벌에 대한 ‘복수심’에 순간 ‘아침 먹고 면 소재지 농약상에 가서 살충제와 제초제 사다 확 뿌려불까?’ 하는 유혹이 든다.

60년 전인 1962년 미국의 생물학자 레이철 카슨이 ‘침묵의 봄’을 출간했다. “(미국의) 시골 마을에 봄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은 왜일까?” 하는 문제의식이 시작이다. ‘원인은 바로 살충제였다. 논밭·정원·숲에 살포되는 살충제는 해충을 죽이지만 수질도 오염시킨다. 오염된 물은 동식물의 조직 안에 축적되고, 생식세포에까지 침투되어 유전자를 교란할 수 있다. 살충제의 수질오염이 지구와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다.’ 카슨의 결론이다. 환경운동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카슨의 ‘침묵의 봄’에서는 제초제는 언급이 없다. 살충제보다 더 많이 살포되는 것이 제초제이다. 종류도 다양하고, 뿌려지지 않는 곳이 없다. 논밭·논두렁·밭두렁·마을 앞산 뒷산 유실수에 뿌려지는 제초제 종류가 다르다. 그러나 땅으로 스며든 제초제 잔류물이 흘러가는 곳은 같다. 먼저 마을 샘으로 유입된다. 샘물에서 발원하여 개울물로 흘러가고 이어서 강과 바다에 다다른다.

풍수 제일 원칙이 “물 얻는 것을 으뜸으로 한다[得水爲上]”이다. 이어서 “수량·수질·수온 등이 마을의 크기와 길흉을 규정한다.”(박산편·博山篇). 필자가 사는 마을에서 고개 하나 넘으면 남원 양씨 600년 집성촌 ‘구미(龜尾)’ 마을이 있다. 종택 바로 뒤에는 ‘목마른 사슴 바위(갈록암·渴鹿岩)’가 있다. 종택 입지의 중심축이다. 목마른 사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종택 근처에 대모정(大母井)이 있다. ‘큰어머니 샘’이란 뜻이다. 마을 사람들을 넉넉히 먹여 살릴 수 있는 큰 샘이다. 수량·수질·수온도 으뜸이었다. “대모정 물 먹는 사람들은 병자(病者)가 없었으나, 다른 샘물 먹는 이웃 마을 사람은 병자가 많았다”고 종택을 지키는 종부께서 들려주신 말씀이다.

왜 마을 이름이 ‘거북꼬리[구미·龜尾]’일까? 마을 주산 무량산이 바위가 많은 화산(火山)이다. 불기운이 강하다. 물의 신 거북[龜] 석상을 마을 입구에 세워놓았다. 거북이 마을을 등지고 나쁜 기운을 막다 보니 꼬리가 마을을 향한다. ‘거북꼬리[구미·龜尾]’ 지명의 유래이다. 또 마을 앞산 정상에는 ‘능구리 방죽’을 팠다. 불기운[火氣]을 제압하기 위한 비보풍수이다(종손 양대우 선생 증언). 전 세계에 ‘생태학의 이상적 모델’로 내놓아도 손색없는 마을이다.

그러나 ‘능구리 방죽’도 잊힌 지 오래다. 더 안타까운 것은 대모정 수량·수질·물색[水色]이 변했다는 점이다. 물은 줄어들고 탁해져 마실 수 없다. 원인이 무엇일까? 굳이 답을 할 필요가 있을까! ‘침묵의 봄’의 경고가 60년이 지난 지금 우리 농촌의 현실이다. 심각하다. 농사가 주업이 아닌 필자조차 살충제·제초제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주업인 농부들을 탓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