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5일 삼성전자 소프트웨어 교육 프로그램 ‘삼성청년SW아카데미(SSAFY·사피) 6기 수료식에서 교육 과정을 기획, 운영한 삼성전자의 강대범(왼쪽부터), 조연재, 유도형 프로가 학생들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달 22일 서울 강남구의 한 사무실 건물. 1층 로비엔 말끔하게 정장을 입고 면접 순서를 기다리는 20대 청년들로 북적였다. 삼성전자가 취업 준비생들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소프트웨어(SW) 교육 프로그램인 ‘삼성청년SW아카데미(SSAFY·사피)’ 수강생을 뽑는 시험에 응시한 사람들. 회사가 아닌 교육 학원에 들어가는 시험이지만 면접자들은 정규직 입사를 앞둔 것처럼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사피 합격이 곧 취업을 보장할 정도로 수준 높은 커리큘럼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2018년 출범한 사피는 지난달까지 교육 수료생(전체 3678명)의 75%인 2770명이 삼성전자를 비롯해 네이버·카카오·현대차·신한은행 등 700여 기업에 취업해 ‘취업사관학교’로 통한다. 특히 코딩(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한 번도 접하지 못한 문과생들, 이른바 ‘문송’(’문과라 죄송하다’는 뜻의 신조어)들도 사피를 거쳐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IT 기업에 입사하는 사례가 늘면서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취업에 성공한 사피 수료생 중 35%(965명)가 소프트웨어 개발 비전공자. 사피 출범부터 교육과정을 기획하고 운영해온 삼성전자 조연재(49)·유도형(42)·강대범(41) 프로를 만나 사피를 통해 ‘제2의 인생’을 연 취준생들 이야기를 들어봤다.

“문송도 할 수 있다”

-실제 비전공자들의 취업 성과가 좋은가.

“코알못(코딩을 알지 못함) 소리를 듣던 인문계 학생들도 1년 교육과정을 거치면 스스로 컴퓨터 프로그램을 짤 수 있는 수준의 능력을 갖출 수 있다. 2020년에 입학한 4기 학생 중 4년제 대학 경영학과 출신 남학생이 기억에 남는다. 사피 입학식에서 유독 주눅 들어 보이던 친구였다. ‘비전공자라서 내가 끼어들 곳이 없을 것 같다’고 하더라. 그런데 나중에 이 친구가 퀴즈를 푸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고용노동부 장관상을 받았다. 올 초엔 전공생도 들어가기 어렵다는 카카오에 입사했다.”

-비전공생이 어떻게 카카오에 들어가나

“1, 2학기로 나눠서 1년 과정으로 진행한다. 비전공자의 경우 바로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을 시키지 않는다. 대신 로봇 주행 프로그램, 카카오 챗봇(채팅로봇) 등 기존 프로그램을 따라 하게 시킨다. 프로그램을 이렇게 짜는구나, 나도 할 수 있구나라는 자신감을 갖게 한 다음 차근차근 지식을 늘려간다. 사피는 대학과 다르게 뒤처지는 학생을 대상으로 보충 수업을 하면서 한 명 한 명 다 챙긴다.”

-비전공 학생의 강점이 있을까.

“기획 능력이다. 컴퓨터 전공자들은 사고가 갇혀 있는 경우가 많다. 내가 할 수 있는 역량까지만 사고를 한다. 그런데 비전공자들은 이런 틀이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는지 없는지 모르기 때문에 프로그램을 만드는 기획 능력이 뛰어난 경우가 많다.”

-어떤 새로운 시도를 하나.

“최근 들어 사피 학생들이 메타버스(3차원 가상공간)를 활용한 소프트웨어 개발을 하기 시작했다. 이걸 비전공 출신 학생이 처음 시도했다. 잘 모르니까 겁 없이 덤비는 애들이 새로운 도전을 잘한다.”

-전공생과 비전공생의 교육과정이 다른가.

“기본적으로는 같다. 이론을 가르치는 1학기는 조금 다르지만 실제 프로그램을 만드는 과제 실습 위주인 2학기에는 전공생과 비전공생이 함께 조를 이뤄 활동한다. 각자의 강점을 발휘하면서 좋은 프로그래머로 성장하도록 교육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한 번 실패한 사람들의 2라운드 도전

삼성 사피는 1년 전 과정 학비가 무료다. 무상 교육과 별개로 모든 교육생에게 월 100만원씩, 연간 총 1200만원의 교육 지원금도 지급한다. 이 때문에 해마다 수천 명의 지원자가 몰리지만 만 29세 이하 미취업 청년 중 4년제 대학 졸업자 혹은 졸업 예정자만 지원할 수 있다. 대신 전공과 대학은 따지지 않는다.

-어떤 학생들이 사피에 지원하나.

“공대생부터 국문학과, 디자인, 경영, 일본어 등 다양한 학교, 다양한 전공 출신이 지원한다. 음대, 미대 학생도 있었다. 요즘은 이른바 전화기(전자·화공·기계)를 제외한 전공은 취업을 장담하기 어려운 시대다. 이런 전공이 아닌 학생들은 사피를 통해 2라운드를 시작한다. 기존 본인 전공으로 목표했던 분야에서 취업에 실패한 사람들이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새 도전을 하는 것이다.”

-명문대생들도 지원한다던데.

“서울대 졸업생도 오고 미국 등 해외 대학 출신도 온다. 대학을 졸업했는데 한국에 들어와서 취업이 안 되는 사람들이다.”

-프로그래머가 되기 위해 필요한 자질이 있을까.

“소프트웨어 개발도 분명 재능이 있어야 한다. 일상적으로 쓰는 사람의 말을 배우는 게 아니라 컴퓨터의 언어를 다루기 때문에 수학적인 사고, 논리적 사고에 능해야 한다.”

-수학 성적이 뛰어나야 하나.

“논리적 사고라는 게 단순히 학교에서 수학 문제를 잘 푸는 것과 다르다. 수식을 푸는 건 중학교 수준이면 된다. 논리적 사고는 전공과 관련이 없다. 최소한의 논리적 사고 역량을 갖고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논리적 사고는 얼마든지 훈련이 가능하고, 수포자도 얼마든지 프로그래머의 꿈을 이룰 수 있다.”

새 분야 도전하려는 자세가 중요

-사피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현재 서울을 비롯해 대전, 구미, 광주, 부울경 5곳에서 사피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2018년에 시작할 땐 기업에서 소프트웨어 교육을 한 사례가 없어 막막했다. 컴퓨터 학원처럼 컴퓨터만 많이 갖다놓는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강의 장소 선정부터 커리큘럼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컴퓨터 사양까지 모두 제로(0)에서 시작했다. 비전공생을 위한 사피 시험도 따로 개발했다.”

-어느 정도 수준을 목표로 가르치나.

“기업에 들어가서 현업에서 요구하는 수준의 앱, 프로그램을 바로 개발할 수 있는 수준이 목표다. 결코 인공지능(AI) 개발과 같은 상위 1%의 IT 개발자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

-어떤 어려움이 있었나.

“처음 사피를 시작할 땐 삼성전자 직원을 뽑기 위해서 만든 것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이 때문에 비전공자 학생들이 초기에 지원하기 꺼려 했다. 코딩 경험이 없는 학생을 가르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전공생은 기초 소양이 있고 부족한 부분만 메워주면 되는데 아예 이런 게 없을 경우 대학생에게 수학 정석을 가르치듯 처음부터 새로 알려줘야 한다.”

-취준생들에게 사피의 인기가 높다.

“사피 시험을 가르쳐주는 학원도 있고, 사피를 재수하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사피 출신 취업자들이 늘면서 기업에서도 ‘사피 출신은 믿을 만하다’는 피드백을 받는다. 실제로 사피 경력을 입사 전형에서 우대하는 기업이 110개로 늘었다.”

-향후 어떻게 발전시키고 싶나.

“사피는 1년 과정 도중 취업을 하면 바로 회사에 입사한다. 사피에 참가한 교육생들이 우수한 역량을 쌓아서 조기 취업에 성공해 마지막 날 텅 빈 수료식을 진행하는 게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