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사상 첫 미·북 정상회담이 열렸다. 주요 내·외신은 일제히 싱가포르로 취재진을 급파했다. 세계 최대 뉴스 네트워크인 CNN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비행기에서 내리는 장면부터 생중계했다. 앤더슨 쿠퍼, 크리스티안 아만푸어 등 CNN의 간판급 앵커들이 총출동했고, 아시아 지역 특파원과 백악관 출입기자, 프로듀서, 사진기자 등 100여 명 규모의 매머드급 팀이 꾸려졌다.
이 팀을 총지휘한 사람은 한국 출신인 일레이나 리(Ellana Lee·51) CNN 인터내셔널 수석부사장. 지난 2006년부터 홍콩에서 CNN 아시아태평양 본부를 이끌고 있는 그는 CNN 해외본부(미국 이외 지역)에서 가장 높은 직급의 임원이다. 그는 1997년 CNN에 입사해 25년간 미·북 정상회담을 비롯한 수많은 역사적 순간들을 취재하고 보도해왔다. CNN은 전 세계 200여 국 4억4000만 가구에 방송을 송출하는데, 한국에서 보는 CNN 방송은 아태 본부에서 제작·편성한 버전이다.
한국 언론은 그가 승진하거나, 상을 받을 때 그의 소식을 전하곤 했다. 그의 이름을 포털에 치면 ‘한국 출신의 30대 여성이 세계적 뉴스 채널인 CNN 아시아태평양 본부장에 선임됐다’(2006년) 등의 기사가 나온다. ‘CNN 이끄는 한국계 파워우먼’ ‘당찬 한국계 여성’ 등 그를 바라보는 모국의 시선엔 해외 무대를 누비는 ‘한국계 여성’에 대한 놀라움과 자랑스러움이 투영돼 있다.
지난 5월 윤석열 대통령과 인터뷰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그와 연락이 닿았다. ‘CNN 인터내셔널 아시아태평양 지역 수석부사장 겸 글로벌 기획 콘텐츠 총괄본부장’이라는 긴 직함을 갖고 있는 그에게 성공의 비결이 무엇인지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학생 때 유명한 사람들이 학교에 와서 특강 같은 걸 하잖아요. 그럼 꼭 ‘성공의 비결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과 같은 얘기를 해요. 그땐 ‘할 말 없으니까 저런 말이나 하지’라고 생각했어요, 하하!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말이 맞았어요. 단지 높은 자리에 가려고 애쓴다고 해서 성공할 수 있는 건 아니었죠.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DJ부터 尹까지, 대통령 6명을 만나다
-24시간 뉴스 채널 책임자의 일과가 궁금하다.
“보통 오전 6시쯤 일어나 출근한다. 미국(본사)에서 온 메일과 간밤에 터진 뉴스를 확인하고 회의를 준비한다. 8시 45분 편집회의가 시작된다. 어떤 뉴스로 방송을 채울지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회의다. 이후 런던, 애틀랜타 본부와 콘퍼런스콜(전화 회의)을 한다. 시차 때문에 늦어지면 자정까지 일을 해야 한다. 밤 11시쯤 잘 수 있는 날은 정말 감사한 날이다.”
-최근 회의에선 어떤 것들을 다뤘나.
“북한이 7차 핵실험을 할 것인지부터 시작해서, 미·중의 패권 경쟁, 아태 지역의 코로나 상황, 호주의 새 정부 출범, 스리랑카·파키스탄의 경제 위기 등을 다뤘다. (언론인으로서의) 시간이 쌓이면서, 어떤 뉴스를 다뤄야 하는지에 대한 감각을 깨쳤다. 그런데 나는 늘 ‘무엇을 다룰 것인가’보다 ‘무엇을 다루지 않을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다루지 않는 것은 흔적 없이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CNN에서 당신의 역할은.
“두 가지다. 하나는 (아태) 지역의 역할인데, 파키스탄에서 일본, 중국에서 뉴질랜드에 이르는 아태 지역의 모든 뉴스 송출에 대한 책임이 내게 있다. 둘째는 패션, 여행 등을 다루는 전 세계 글로벌 기획(Global features)팀을 총괄하는 역할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일은 우리 기자들과 프로듀서들을 이끌고 뒷받침해주는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인터뷰 상대로 CNN을 택했는데.
“우리는 늘 누가 한국의 대통령이 되는지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당선인 시절부터 꾸준히 접촉했다. 윤 대통령은 취임 2주 만에 우리와 인터뷰했는데, 몹시 이례적인 일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 덕분인 것 같기도 하다. 인터뷰 때 취재진을 편하게 해줘서 놀랐다. 과거엔 대통령을 만날 때 격식과 의전이 매우 중요했다. 그런데 윤 대통령과는 인사도 캐주얼하게 하고, 가벼운 이야기도 많이 나눴다. 본인이 소탈하게 행동하니 주위 분들도 편안해 보였다.”
-가벼운 이야기라면?
“앞으로 강아지 산책을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더니, 경호 문제 때문에 본인도 고민 중이라고 하더라. 얼마 전 김건희 여사의 친구가 고양이를 맡아달라고 해서 (반려동물) 가족이 여덟 마리로 늘어 걱정이란 얘기도 하셨다. 대통령이 되기 전의 일상을 대통령이 된 뒤에도 이어가려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대통령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분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김대중 대통령부터 윤 대통령까지 6명의 한국 대통령을 만났다.
“노무현 대통령은 집무실로 (취재진을) 초청해 주셨다. 당시 청와대가 ‘문서 없는 회의(paperless meeting)’를 도입할 무렵이었는데, 그것을 우리에게 직접 보여주셨다. 책상에 컴퓨터만 있고 진짜 아무것도 없었다. 당시엔 정말 새로운 것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다보스에서 뵀는데, 사업가적 면모가 느껴졌다. 역대 대통령들 모두 각각의 고유한 캐릭터가 있었다. 그런데 이들에게서 한 가지 공통점을 봤다. 모두 한국의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많이 품고 있었다는 것이다.”
-한국을 취재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첫 출장지가 한국이었다. 1997년 외환 위기에 빠진 한국을 취재하기 위해 서울에 왔다. 사람들의 절망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동시에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는데, 바로 금 모으기 운동이었다. 사람들이 집에 있는 금을 자발적으로 갖고 나와 기부하는 장면을 보고서, 우리 팀 모두 충격을 받았다. 당시엔 많은 세계인들이 한국이 어디 있는 나라인지도 모를 때였다. 회사엔 당연히 한국 사람은 나밖에 없었고. 한국에서 태어난 것이 자랑스러운 순간이었다.”
그는 스포츠, 영화, 음악 등 소프트파워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자신을 비롯한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인사들이 더 나은 대우를 받게 됐다고 했다. 그는 윤 대통령 인터뷰 이후 해야 할 제일 큰 과제로 손흥민 선수 인터뷰를 꼽았다.
언론 영향력 막대…선하게 써야
일레이나 리는 한국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조지타운대(국제관계·역사학)와 뉴욕대 저널리즘스쿨을 졸업하고 1997년 CNN 뉴욕지부에 PD로 입사했다.
-왜 언론인의 길을 택했나.
“조지타운대를 나오면 대개 법조계나 정치권으로 가는데, 나는 언론계가 좀 더 다이내믹해 보였다. (한국 아닌) 미국 언론사에 들어간 이유는 청소년 시절 목격한 한국 언론의 모습 때문이었다. 1980년대 당시 언론은 사회에 긍정적인 역할도 했지만, 사실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고 보도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CNN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CNN은 한국에 있을 때 내가 알던 유일한 서구권 매체였다. 대학 4학년 때 CNN에서 인턴십을 했다. 저널리즘에 대해 더 배우고 싶어져서, 뉴욕대 저널리즘스쿨에 들어갔다. 뉴욕대에서도 마지막 학기에 CNN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복사나 테이프 로깅(기록) 같은 일들을 했다. ‘작은 일도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열심히 했더니, 끝날 때쯤 입사 제안을 받았다.”
-입사하고 9년 만에 본부장이 됐다.
“처음 9년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빨리 지나갔다. 뉴욕에서 홍콩으로 옮길 때 여행 가방 하나로 이사했다. 홍콩에 도착하자마자, 새벽 1시부터 일을 시작해 오전 6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4년 동안 그랬다. 이걸 견딜 수 있었던 건 좋은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매일 야근하는 것을 잊지 않는 선배들을 만난 것도 행운이었다. 혼자 돋보이려고 하기보단, 항상 팀워크를 중시하며 일했다. 그게 (초고속 승진의) 이유가 아니었을까.”
-직접 만든 프로그램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것은.
“하나는 2017년 방송한 다큐멘터리 ‘비밀국가: 인사이드 노스 코리아(Secret State: Inside North Korea)’다. 북한에는 전화도, 팩스도, 이메일도 할 수 없다. 취재 승인을 얻기 위해 10번 이상 찾아갔다. 평양 외 지역에서 주민들을 만났고, 백두산에도 오를 수 있었다. 다른 하나는 2019년 다큐멘터리 ‘테드 터너: 캡틴 플래닛(Ted Turner: Captain Planet)’이다. (CNN 창립자인) 테드는 뉴스뿐만 아니라 환경보호에 대해서도 열정을 보였는데, 우리는 그 점에 주목했다. CNN은 아무도 환경에 대해 얘기하지 않던 1980년대 환경에 대한 방송을 내보냈다. 나는 테드처럼, 언론이 가진 영향력을 선하게 써야 한다고 항상 생각한다.”
일레이나 리는 2019년 글로벌 환경보호 캠페인 ‘콜 투 어스(Call to Earth)’도 제안했다. 이 캠페인에는 전 세계 160국 500곳 이상의 학교가 참여하고 있다. 학생들은 쓰레기 줍기, 나무 심기 등에 참여하고, CNN 특파원들은 세계 각지의 환경보호 활동에 대해 보도한다. 일레이나 리는 “많은 매체가 문제점에 대해 말하지만, 해결책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문제가 아닌 해결책을 다룰 때 관심을 갖는다”며 “콜 투 어스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나는 CNN이 이 캠페인 방송에 수시간씩 할애하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CNN이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신뢰성. 언론이 신뢰받기 위해선 정확한 보도를 해야 한다. 우리도 물론 가장 먼저, (다른 언론사보다) 빠르게 보도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틀린 것을 가장 먼저 보도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우리는 매일 모든 뉴스에 대해 엄격한 검증 과정을 거친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예로 들자면, 현장에 투입된 (CNN) 인력이 300명이고, 이들을 지원하는 인력이 또 그만큼 있다. 전쟁 관련 사진을 하나 입수하면, 우리는 진위를 가리기 위해 사진의 메타 데이터를 분석하고 다양한 전문가들의 검증을 받는다. CNN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정확한 뉴스를 보도한다는 자부심이 있다.”
-미디어의 위기라는 말이 수년째 나오고 있다.
“2016년 미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됐을 때 언론이 모두 놀랐다. 아무도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 우리는 미 중남부에 사는 평범한 미국인들의 생각을 들여다보지 못했다. 현장을 발로 뛰어야 하는 언론이 멀찍이 떨어져서 취재하니 현실과 동떨어진 기사가 나온 것이다. 그 이후 우리는 더 많은 기자들을 고용했고 더 많은 현장에 내보냈다.”
워킹맘 어머니의 가르침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일레이나 리는 도영심 유엔세계관광기구 산하 스텝재단 이사장의 딸이다. 도 이사장은 1966년 이화여고를 졸업한 뒤 미 위스콘신대에서 학사, 오클라호마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유학파 1세대로 13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금수저’가 아닌지.
“자라는 동안 특권 누린 것을 부인하진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어머니의 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그녀의 사고방식과 삶의 태도에서 나온 것이었다. 내 친구 어머니들은 모두 전업 주부였는데, 우리 어머니만 워킹맘이었다. 어머니는 항상 일과 가사로 저글링을 했지만, 다른 어머니들보다 훨씬 더 엄하셨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면 오후 4시 반 정도 됐는데, 그때 항상 전화가 울렸다. 일하면서도 딸이 집에 잘 왔는지 늘 확인한 거다. 어머니가 일을 한다고 해서 공부를 소홀히 하거나 딴짓을 할 수는 없었다. 어머니를 보고 자라면서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것을 가장 큰 재산이라고 생각한다. 어머니가 그 당시 한국에서 여성으로서 일하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지 종종 생각한다. 그녀는 정말 개척자(trailblazer)였다.”
-‘나는 아시안처럼 느끼고, 미국인처럼 생각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어렸을 때 한국에서 자랐으니 (1차적으로) 느끼는 방식은 한국인 같고, 미국에서 공부하고 일을 했으니 (2차적으로) 생각하는 방식은 미국인 같다. 20대 때 정체성의 위기를 겪었다. ‘나는 미국인일까, 한국인일까’와 같은. 나이가 들면서 두 정체성의 장점을 잘 섞어 살 수 있게 됐다. 미국인의 장점은 적극적이고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 한국인의 장점은 신중함과 공감 능력이라고 본다.”
-바깥에서 본 한국의 문제는 뭐라고 생각하나.
“내가 한국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교만한 일 같다. 다만, 바람이 있다면 여성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나갔으면 좋겠다. 나는 CNN에 있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내 한국 (여성) 친구들을 보면 몇 명 빼고는 커리어가 없다. 내가 한국에서 계속 살았다면 이렇게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잘 모르겠다.”
일레이나 리는 아시안 여성으로서 겪은 어려움은 없었느냐는 질문에 “(회사로부터) 워낙 많은 지원을 받아와서,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했다. 이어 “다만 이런 것은 있었다”며 말을 보탰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외국에 가서 사람들과 미팅을 하면, 열에 아홉은 내가 통역사인 줄 알더라. 나와 같이 간 부하직원이 백인 남성이거나, 아시안 남성이면 그 사람을 보고 얘기를 했다. 젊은 아시안 여성이 대표라고는 상상을 못하는 거지. 처음엔 나도 당황했다. 그런데 (내가 대표라는 점을 알게 되면서) 상대방이 당황하는 것을 즐기기로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 앞에 앉는 남자들의 생각도 바뀌더라. 이젠 날 통역사로 보는 사람은 없다, 하하!”
-일을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없나.
“딱 한 번. 일을 시작하고 4년 정도 지났을 땐데, 번아웃이 왔다. 주 7일 일했다. 꿈에서도 일을 했다. 휴가를 내고 한국에 왔는데, 뉴욕에 돌아가고 싶지 않아 사직서를 냈다. 그런데 상사가 이를 반려하면서, 홍콩에 가서 2년만 일해보라고 권했다. 홍콩에 와보니 일이 너무 재미있고 다이내믹했다. 내겐 천사 같은 상사였다.”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나.
“적막에 싸이는 것. 매일 수많은 사람들의 말을 듣고, 활자와 영상 매체에 둘러싸여 있다 보니, 고요한 시간이 정말 소중하다.”
리더는 어떤 상황에서도 동료 입장 이해해야
25년간 한 직장에 다니는 것이 지겹지 않으냐고 묻자, 그는 “CNN에서 일하는 것은 여전히 즐겁다”고 했다. CNN에는 자신의 가치관과 잘 맞는 철학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 무엇보다 존경스러운 동료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당신은 어떤 리더인가.
“따뜻한 리더가 되고 싶다. 나는 직원들에게 언제나 열려 있다. 직원들의 얘기를 듣는 것, 그들에게 공감하는 것은 내 중요 업무 중 하나다. 홍콩 정부가 코로나 격리 때문에 부모와 아이를 떨어뜨리는 경우가 더러 있었는데, 그런 직원은 다른 나라에 가서 근무할 수 있게끔 했다. 리더는 어떤 상황에서도 동료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글로벌 무대를 꿈꾸는 이들에게 조언한다면.
“CNN은 다양한 인종, 국적, 정체성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미니 유엔’ 같은 곳이다. 이런 곳에서 일하려면, 먼저 글로벌한 사람이 돼야 한다. 단순히 다른 언어를 할 줄 알라는 말이 아니다. 다른 관점, 다른 문화를 이해할 줄 알아야 한다.”
-같이 일할 사람을 뽑는 기준이 있나.
“긍정적인 태도, 함께 일할 수 있는 자세다. 우리는 전쟁터에도, 지진 현장에도 간다. 우리는 개인이 아닌 팀으로 일하기 때문에, 설령 팀에서 가장 똑똑하더라도 함께 일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은 CNN에서 오래 남기 힘들다.”
-CNN에서 얻게 될 다음 직함은 뭐가 될까.
“생각 안 해봤다. 지금껏 자리를 보고 일한 적 없다. 나는 이제까지 ‘진짜 뉴스’가 벌어지고 있는 곳을 향했고, 아태 지역이 그런 곳이라고 생각한다. ‘산은 높고 황제는 멀리 있다(山高皇帝遠)’는 중국 말이 있다. 땅이 넓어 지방의 관리도 위세를 누린다는 말이다. 본사와 멀리 있는 게 편한 것 같다, 하하!”
-꿈은 무엇인가.
“나는 지금 이 순간, 이 상황이 주는 기회를 잡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언젠가 CNN에서 은퇴하는 날이 오겠지만, 내 삶에서 일을 그만두고 싶지는 않다. 계속 뭔가를 하고 싶다. 그게 뭔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일레이나 리에게 “제약 없이 인터뷰가 가능하다면 누구를 인터뷰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그가 눈을 반짝였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뭘 물어볼지는, 생각해보겠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