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도 몬 앉고, 섰다가도 잘 못 앉고, 벌벌벌 떨리고, 걸음도 잘 못 걷겠고, 변소 댕기는 게 일이다, 일.”
56년째 부산 매축지 마을에 사는 이호덕(80)씨는 비 내리는 날 화장실 가는 게 두렵다. 그가 사는 쪽방엔 화장실이 없기 때문이다. 마을 양 끝에 설치된 공용화장실까지 가는 거리는 50여m. 다리가 불편한 이씨는 매번 보행보조장치에 의지해 화장실 ‘원정’을 나서야 한다. 장마철엔 한 손에 우산까지 들어야 해서 더욱 곤욕이다. “우야겠노. 이렇게 언제까지 살랑가 모르겄다.”
부산 동구청에 따르면 매축지 마을 쪽방촌 일대엔 337세대, 489명이 산다. 40도를 넘보는 폭염과 폭우가 교차하는 한여름이면 이 마을은 지옥이 된다. 인간의 기본 욕구인 배변조차 고통이다. 마을 양 끝에 붙은 여자 변소 10칸, 남자 변소 10칸이 이들이 공동으로 사용해야 하는 화장실. 몸이 불편한 노인들은 그래서 방에 요강을 둔다. 지난 11~12일 이틀에 걸쳐 <아무튼, 주말>이 그곳에 다녀왔다.
이 마을엔 ‘장미호텔’이 있다
소나기가 오락가락하는 어두컴컴한 날씨. 쪽방촌 곳곳엔 작은 물웅덩이들이 고여 있었다. 비좁은 골목엔 온갖 생활 냄새와 고인 물이 풍기는 악취가 축축한 습기와 뒤섞여 행인들 얼굴을 찡그리게 했다. 담벼락 앞에는 세탁기, 싱크대, 의자, 연탄통 등 집 안에 들일 수 없는 세간살이들이 즐비하다. 처마 끝 빗물이 쏟아지는 곳엔 드럼통과 세숫대야, 페트병들이 늘어서 있었다. 고추, 가지, 토마토를 심은 화분들도 보였다.
원래 바다였던 마을이다. 마을 이름 매축(埋築)의 뜻대로 일제강점기때 바다를 메워 마구간을 세웠던 곳이다. 6·25 전쟁 당시 피란민들이 몰려와 기존의 마구간을 칸칸이 나눠 방으로 쓰면서 판자촌 형태의 주거지를 이뤘다. 그로부터 70여 년이 지났지만, 현재의 매축지 마을은 과거 모습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집집에 화장실도 없지만, 수도 시설조차 없는 집도 있다. 목욕을 하려면 끌어온 수돗물을 데워서 씻거나, 받아둔 빗물로 해결한다. ‘최신탕’이라는 이름의 공중목욕탕이 있지만 7월과 8월은 토·일·월 3일만 운영한다. 원래 4개 있었던 목욕탕들이 코로나를 이기지 못하고 폐업했다.
용변은 마을 입구와 끝, 120m쯤 거리를 두고 떨어진 두 곳의 공중화장실에서 해결해야 한다. 여자 화장실과 남자 화장실이 가벽 하나를 두고 맞붙어 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재래식이었다. 칸과 칸 사이 칸막이도 없고 문도 따로 없었다. 지금의 화장실엔 ‘장미 호텔’이란 별칭이 붙었다. 입구에 꽃 벽화가 그려져 있어서다. 한 마을 주민이 “장미 호텔이라카몬 쫌 운치 있고, 안 멋져 보이나”라며 웃었다.
빵 조각과 컵라면 옆에 소변통
이모(77) 할머니는 처음 시집와 살 때만 해도 화장실 가는 게 쑥스러웠다고 했다. “사람들 다 잘 때나 새벽에 몰래 갔는데 오래 살다 보니까 이젠 그냥 가버리는 기라(웃음).” 51년을 그렇게 사니 화장실 없는 집도 어느덧 익숙해졌다. 방 안엔 요강도 두었다. “할 수 없는 기라. 노인들 구루마 끌고 다니제, 지팡이 들고 댕기제, 그러니까 저까제 못 간다. 큰 거는 할 수 없이 가도, 빨리빨리 못 가니까. 꼭 (요강을) 두제.” 2015년 김해에서 용역 일을 하다가 덤프트럭에 치여 생사의 기로에 섰던 이모(78)씨 역시 “화장실이 없어서 제일 골치”라며 “급하면 거기 눠야 돼”라고 했다.
주민들은 비가 그치면, 인근 하수구에 모아뒀던 소변을 버린다. 골목길에 지린내가 퍼지는 원인이다. 마을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이경은(69)씨는 “거동이 불편하신 노인들은 혼자 용변을 보고 처리하지 못해 방 안에서 냄새가 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화장실 문제로 질병을 앓는 주민도 많다. 부산 일대 쪽방촌에서 8년간 봉사해온 한 활동가는 “방광염과 전립선 쪽 질환을 앓는 주민들이 많다”고 했다. 그는 “2.5평 남짓한 방에 선풍기, 사계절 옷가지, 약품 통, 밥솥에다 빵과 컵라면, 소변 통이한곳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장마까지 겹치면 고통은 배가된다. 장대비라도 쏟아지면 40㎝가량 되는 문지방을 넘어 비가 들이닥치고 집 앞에 놓인 연탄 보관통이 넘어진다. 서모(74)씨는 “집중호우 때는 집안에 물이 꽉 차서 한번은 119 대원이 날 업고 남의 아파트로 피신시켰다”고 했다. 습기도 쪽방촌 주민들에게 치명적이다. 집안 벽지와 바닥엔 온통 곰팡이가 슬고, 빨래도 말릴 수 없다. 비가 잠시 멈추면 주민들은 ‘눈치 싸움’을 한다. 비가 들이치지 않는 처마를 찾아 빨래를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2년 뒤 철거... “여기서 살다 죽으면 성공이제”
한때는 아이들 목소리가 골목골목 왁자하게 울려퍼지던 마을이었지만,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돼 2024년 철거될 예정이다. 이곳에서 남은 삶을 무탈하게 지내는 것이 이들의 작은 ‘소망’이다.
김남이(87) 할머니는 몸 하나 겨우 누일 수 있는 방에서 반려견 깜순이와 산다. 2.5평 남짓한 방에 월세 8000원을 내고 살다가, 120만원을 주고 이 집을 샀다. 무료 급식 행사 때 나눠주는 장아찌와 반찬들로 냉장고를 단단히 채울 때 행복하다. 맑은 날엔 골목에 앉아 깜순이가 노는 걸 보는 게 낙이다. “이 쪼매난 집에만 앉아 있을 수가 없어 밖으로 델꼬 나오면 좋아서 왔다갔다 하제. 내보다 깜순이가 먼저 죽어야 할낀데….”
마을 곳곳엔 떠난 이들의 흔적이 가득하다. 요양원에 갔다가 끝내 돌아오지 못한 주민이 살던 집, 새로 찾는 이 없어 방치된 폐가들엔 망가진 집기들이 쌓여 있다. 동구청에 따르면 마을에 있는 폐가만 154개다. 경로당에 매일 출석해 적적함을 이긴다는 조문기(84)씨는 벽에 걸린 노인들 사진을 보며 “저기 있는 할배들은 나 빼고 다 죽었제”라며 추억에 잠겼다. 마을 통장 김민배(68)씨는 “더우면 더우리, 추우면 추우리 하고 사는기지”라며 “여기서 살다 죽으면 성공이제” 하고 웃음을 지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