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윔블던 테니스 챔피언십이 막을 내렸습니다. 올해 신설된 14세 이하 경기에서 한국의 조세현 선수가 최초 우승자가 되었고, 카자흐스탄의 엘레나 리바키나가 여자 단식 우승을 차지한 데 이어 마지막 날 열린 남자 단식에서 노바크 조코비치가 우승을 차지하며 초록의 잔디 코트는 다시 긴 휴식에 들어갔습니다.
조코비치는 이로써 윔블던 남자 단식에서 7차례 우승을 기록하게 되었는데요. 미국의 백신 접종 의무화 방침으로 US오픈에는 출전할 수 없게 된 조코비치에게 윔블던은 사실상 올해의 마지막 메이저 대회였습니다. 그 때문에 US오픈과 프랑스오픈을 라이벌 나달에게 넘겨준 조코비치가 마지막 메이저 대회 우승 기회에 대한 압박을 이겨낼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였지요. 경기가 끝나고 그는 윔블던 코트의 잔디를 뜯어 먹는 특유의 퍼포먼스를 선보여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인터뷰를 통해 그동안의 힘들고 감정적인 압박에서 마침내 벗어난 것에 안도했다고 말했습니다.
6월 초 윔블던 챔피언십을 앞두고 영국인들의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선수는 단연 에마 라두카누였습니다. 19세 나이로 2021년 윔블던 16강에 진출하며 이름을 알렸고, US오픈에서 예선부터 시작해 우승한 최초의 이력을 가진 신예 수퍼스타지요. 44년 만에 처음으로 나온 영국 국적 테니스 스타의 우승에 영국민들은 열광했습니다. 테니스 종주국의 자존심을 살려준 그녀의 우승 소식에 보리스 존슨 총리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축하 인사를 전했고, 왕실에 초대받아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빈과 테니스도 쳤습니다. 에마의 US오픈 우승 이후 영국에서 테니스를 취미로 삼는 인구가 10만 명이 늘었다 하니 신드롬이라고 불릴 만하지요.
그런데 이번 여름 에마 라두카누의 성적은 다소 실망스러운 모양으로, 2라운드에서 캐럴라인 가르시아에게 6-3, 6-3으로 패해 일찌감치 SW19(윔블던)를 떠났습니다. 기대에 차 있던 팬과 언론은 실망한 감상을 쏟아냈지요. 사실 에마가 저조한 성적을 보일 것이라는 예상은 만연했습니다. 그녀가 최근 여섯 경기 중 단 한 경기에서만 승리를 거두었고 지난해 9월 US오픈 트로피를 들어 올린 이후 세 번의 승리를 거둔 것이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익스프레스 스포츠 독자 2만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반 이상이 그녀가 압박을 이기지 못할 것이며 다시는 그랜드슬램의 우승을 달성하지 못할 것이라 예견했습니다. 대회 이후 디올 뷰티, 티파니, 포르셰의 모델이 되고 샤넬을 입고 패션 행사인 멧갈라에 참석하는 등 테니스와는 관계없는 활동들이 방해가 되고 있으며 그것은 에마가 ‘원 히트 원더(One Hit Wonder)’가 되게 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에 대해 에마는 매일 6-7시간 연습을 지키고 있다며, 광고에 쏟는 시간은 아주 잠깐일 뿐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사실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선수에 대해 막대한 관심과 그에 비례하는 비난이 쏟아지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스포츠 스타가 안고 가야 할 숙명처럼 여겨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공한 스포츠 스타가 된다는 것은 상대 선수와 실력을 겨루는 일뿐 아니라 대중과 언론, 팬들의 반응 등 모든 것이 주는 ‘압박’ 에 얼마나 잘 대처하는지가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때로 그 압박은 개인이 감당하지 못할 만큼 가혹해 선수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도 하지요.
2018년과 2020년에 뉴욕 타이틀을 획득한 23세 테니스 선수 오사카나오미는 아서 애시 스타디움에서 릴라 페르난데스에게 패한 후 회견을 열어 “나는 잠시 동안 휴식을 취할 것입니다. 솔직히 다음 테니스 경기를 언제 할지 모릅니다. 죄송합니다”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이기든 지든 행복하지 않다고 밝힌 그녀의 발언은 젊은 선수들이 직면하고 있는 심리적 압박과 정신건강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지요. 가디언의 스포츠 수석기자인 바니 로나이는 “오늘날 스포츠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금전적 이득과 대중의 관심을 대가로, 압박에 대한 극단적으로 적대적인 사회적 실험을 당하는 것 같다”고 썼습니다.
스포츠를 지켜보는 대중은 선수들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더욱 커다란 희생을 감수해 크나큰 압박감을 보란 듯이 이겨내 스포츠 이벤트를 완벽한 리얼리티쇼로 만들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완벽주의 연구에 대한 메타 분석 결과, 운동선수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높은 개인적 기준을 갖는 것은 전혀 이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요크 세인트 존 대학의 앤드루 힐 박사는 “어떤 경우에는 열심히 헌신하고, 부지런히 일하며 완벽을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도 있지만 개인에게 있어서는 비현실적인 표준에 자신을 맞추려는 노력으로, 정신건강을 위협하는, 해결해야 할 중대한 과제입니다.”
15세에 세계 기록을 깬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는 첫 금메달을 딴 2004년에 처음으로 우울증을 경험했다고 회고합니다. “나는 항상 배고팠고 더 많은 것을 원했습니다. 내 최대치가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 스스로를 밀어붙이고 싶었지요.” 그는 현재 자신의 재단에서 스트레스 관리에 대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미국 소년, 소녀들의 클럽과 연계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고 느낍니다. 금메달을 땄을 때보다 훨씬 홀가분하죠. 그때 목숨을 끊지 않고 살아남아 제게 현재가 있음에 감사해요.”
웨스트버지니아 대학에서 인간의 발달과 완벽주의에 대해 연구한 라스무센 교수는 “우리는 소중한 사람을 잃지 않기 위해 그들의 성취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그들이 기울인 노력을 자랑스러워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불완전한 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 그의 노력을 축하하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말입니다. 스포츠 경기를 지켜보고 응원하고 또는 비난을 불사하는 우리는, 선수들 역시 스포츠인이기 전에 지금 가장 빛나는 시기를 살고 있는 소중한 젊은이임을 잊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에마 라두카누는 윔블던에서 탈락한 후 가진 인터뷰에서 말했습니다. “압박 같은 건 다 농담 같은 얘기죠. 저는 아직 도전을 좋아하는 열아홉 살이라고요!” 어쩌면 이 젊은 스타의 MZ 세대다운 답변이, 그녀에게 쏟아지는 우려와 비판에 대한 가장 알맞은 대답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