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로고가 눈에 띄는 헐렁한 티셔츠, 통이 큰 운동복 바지, 스포티한 디자인의 샌들, 참고서 여러 권이 들어가고도 남을 커다란 배낭….
12일 오후 서울 성동구 한양대 앞에선 이 같은 차림의 10대, 20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근처 한 스터디카페에서 만난 김모(17)양은 검정 야구 모자도 썼다. “공부할 때 꽉 끼는 옷 입으면 불편하잖아요. 요새 다 이렇게 입어요. 예뻐 보이는 것보다 편한 게 좋으니까!”
이름하여 ‘독서실 룩(look)’이 유행이다. ‘스카(스터디카페)룩’ ‘도서관룩’ ‘학원룩’이라고도 불리는 이 패션은 요즘 Z세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패션 트렌드. 공부할 때도, 친구 만나러 외출할 때도 입을 수 있는 편하고 자연스러운 스타일을 의미한다. Z세대 패션·뷰티 커뮤니티인 스타일쉐어는 올해 상반기 Z세대 고객들의 구매 패턴을 분석한 결과 ‘독서실룩’이 인기 키워드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리(Lee) 브랜드 로고가 크게 박힌 티셔츠, 아디다스와 나이키의 반바지, 지프와 러디칙스가 합작해 출시한 야구 모자 등 독서실룩에 포함되는 아이템들이 많이 팔렸고, ‘독서실룩’ 해시태그가 달린 구매 후기도 3000건 이상 게재됐다고 스타일쉐어는 전했다. 일부 온라인 의류 쇼핑몰은 독서실룩을 테마로 한 기획전도 열었다.
‘독서실룩 마니아’라는 대학생 이모(24)씨는 최근 스포츠 캐주얼 브랜드인 챔피온 옷을 종류별로 구매했다. 오래된 브랜드지만 최근 Z세대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이 브랜드 옷은 멀리서도 식별이 가능한 로고가 박혀 있는 게 특징. “챔피언 반소매 티에 반바지, 흰 양말이 제 이번 여름 ‘교복(매일 입는다는 의미)’이에요. 도서관이나 카페에서 에어컨 바람이 너무 셀 때 어깨에 걸치는 용도로 후드 집업도 색깔별로 샀어요.” 이씨는 독서실룩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로 ‘편안함’을 꼽았다. 이씨는 “코로나가 심각했을 때 주로 집에 있으면서 편안한 옷에 익숙해진 것 같다”며 “몸에 딱 붙는 옷이나 노출이 있는 옷은 거의 입지 않는다. 그런 옷을 입는 친구들도 거의 없고, (그런 옷 입는 사람들은) 올드해 보인다”고 했다.
대학생 최모(23)씨는 최근 남자 친구와 미국 명문 사립대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를 커플룩으로 장만했다. 최씨는 ‘나 오늘 독서실룩이야’란 말의 의미가 예전과는 달라졌다고 했다. “원래는 ‘오늘 전혀 안 꾸며서 좀 추레하다’란 의미가 강했어요. 그런데 아이돌 가수들도 사복 패션이나 공항 패션으로 후드티, 트레이닝복 같은 옷을 입으니까 일종의 트렌드가 된 것 같아요.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듯)’와 힙(hip), 편안함과 실용성 등을 모두 갖춘 패션이기도 하고요.” 고등학생 딸을 둔 주부 이진영(52)씨는 “딸아이가 자기가 원래 입던 사이즈보다 훨씬 더 큰 옷을 사달라고 해서 처음엔 의아했다”며 “부모 입장에서는 (딸이) 학생다우면서도 편안한 옷을 입어서 흡족하다”고 말했다.
독서실룩이 Z세대 사이에 인기를 끌다 보니,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에는 ‘독서실룩’이란 해시태그(#)를 붙인 ‘OOTD(Outfit Of The Day·오늘의 옷차림)’ 인증샷이 매일같이 올라온다. 패션크리에이터인 쥬니뚜뗄라가 지난달 유튜브에 올린 ‘독서실 패션’ 영상의 조회 수는 50만회가 넘는다. 운영자 이지은씨는 영상에서 남색 후드티와 회색 트레이닝복 바지, 캐주얼한 티셔츠와 청반바지 등을 독서실룩으로 추천했다.
독서실룩은 편하고 실용적인 것을 추구하는 Z세대의 특성이 반영된 트렌드. 무신사 관계자는 “실용적이고 편안한 패션을 추구하는 ‘원마일 웨어(실내와 집 근처 반경 1.6km 이내에서 입을 수 있는 옷)’ 스타일이 Z세대 라이프스타일과 만나 ‘독서실룩’이 탄생했다”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Z세대가 코로나 유행 시기 집에서 즐겨 입었던 편안한 옷차림이 독서실룩으로 진화한 것으로 보인다”며 “마치 안 꾸민 것 같은 느낌을 주면서도 나름의 멋을 추구하고 이를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로 공유하는 게 특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