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얼건 국물에 고소한 밥알, 육즙이 가득한 고기와 달큰한 대파가 입안 가득 씹힌다.
속 깊은 곳에서 뜨끈함이 올라와 얼굴에 땀이 송송 맺힐 때쯤 부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 이 땀이 살짝 식을 때 느끼는 시원함은 차가운 음식을 먹었을 때 느끼는 냉기와 비교할 수 없다. 여기에 언제나 함께하는 투명한 소주 한 모금. 이곳이 낙원이다.
무슨 아저씨 같은 소리냐고? 섭씨 30도를 웃도는 더위, 유명 국밥집마다 줄을 서 한 그릇 먹으려는 젊은 층들로 문전성시다. 등이 파인 원피스, 유명 브랜드 무지티 등 의상만 보면 국밥집이 아닌 어느 휴양지 클럽 같다. MZ세대가 주도하는 ‘신(新) 국밥시대’다.
대표적인 곳이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육개옥’이다. 피양옥, 청류벽, 상해루 등을 운영하는 김호찬 대표가 올 초 새로 문을 연 곳이다. 대표 메뉴는 한우 육개장, 토란대와 고사리, 대파, 한우를 넣고 서울 스타일로 묵직하게 끓였다. 해장하러 갔다가 ‘이건 술안주야!’라며 소주를 시키게 되고, 그러다 보면 수제동그랑땡을 반주로 더 마시게 돼, 두 발로 걸어갔다가 네발로 기어 나온다는 소문이 있는 곳이다.
가오픈때부터 소셜미디어 입소문으로 손님이 많던 이곳을 더 유명하게 만든 건 유튜브 ‘먹을 텐데’로 제2의 전성기를 누리는 가수 성시경의 추천 덕분이다. 서울 시내 국밥 맛집들을 추천해 MZ세대에게 ‘국밥부장관’이라는 별명을 얻은 그는 이곳을 “부모님과 (개그맨) 신동엽씨를 데리고 왔을 때도 만족했던 집”이라며 “좋은 고기를 써 1만원이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국밥을 먹을 때 과거 아재들처럼 소주를 맥주잔에 따라 마시는데, 요즘 20대들은 그를 따라 소주를 맥주잔에 따라 마시는 게 유행이라고 한다. 소주를 주문할 때도 그가 하는 말 “가장 많이 남은 것 주세요!”가 유행어가 되었다.
지금 가장 핫한 동네, 서울 성동구 성수동 연무장길에서 가장 긴 줄을 자랑하는 식당도 ‘소문난 성수감자탕’이다. 1983년 오픈해 올해로 약 40년째인 동네 노포 터줏대감이지만, 동네가 뜨면서 이곳 역시 핫플레이스가 됐다. 땀이 뻘뻘 나는 한여름에도 줄을 서 기다려야 하는 곳으로 코로나가 극성인 시기에도 배달을 하지 않던 콧대 높은 맛집이기도 하다. 상호명은 감자탕집이지만, 인기 메뉴는 ‘우거지 감자국’. 산처럼 쌓인 우거지와 그릇 위로 튀어나오도록 담긴 등뼈가 푸짐하다. 성인 남성이 먹어도 배가 터질 정도로 든든한 양으로 가격도 1만원이다. 이렇게 국밥들은 가격 대비 큰 만족도를 선사하다 보니,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는 비싼 가격의 음식을 보고 “이 가격이면 국밥 몇 그릇 먹지”라고 말하는 것이 일종의 밈(인터넷 유행어)이 되기도 했다. 국밥은 돈가스, 제육볶음과 함께 20~30대 남성들의 ‘3대 소울 푸드’로도 불린다.
‘국밥 열풍’을 이끄는 건 젊은 남성들과 함께 젊은 여성들. 트렌디한 신상 국밥집이 많이 생겨나서다.
이 열풍의 진원지가 서울 서초구 ‘혜장국’이다. 서울 합정에서 대구식 생고기 뭉티기를 팔아 유명하던 ‘무판’의 정연곤 대표가 유명 노포들이 즐비한 국밥 시장에 2020년 말 ‘대구식 육개장’으로 도전장을 던졌다. 한우 투뿔을 듬뿍 써서 내는 육수와 무와 파가 들어간 얼큰한 경상도식 국밥이다. 한우 특유의 구수한 국물에 대파와 무의 시원하고 달큰한 맛은 코로나 기간에도 사람들을 줄 서게 만들며 1년 만에 별관까지 열게 만들었다.
정 대표는 삼각지 우대 갈비 열풍을 불러온 조준모 몽탄 대표와 이 기세를 이어 작년 말 ‘달래 해장’이라는 국밥 체인점도 만들었다. 신사동 본점을 중심으로 성수, 압구정로데오, 명동, 북창동 등 벌써 가맹계약완료된 곳만 30호점. 지난달 전 매장 월평균 매출이 1억7000만원에 달한다고 한다. 대표메뉴는 경상도 소고기국밥을 기본으로 선지와 소고기가 들어간 ‘달래해장국’. 다른 곳들과 달리 미국산 소를 사용해 가격은 9000원으로 낮췄다. 국밥 속 고기 뿐만 아니라 부들부들한 선지가 잡내 없이 깔끔하기로 유명하다. 점심때 할인 판매하는 수육 가격이 200g 1만8000원으로 저렴한 까닭에, 낮술을 즐기려는 주당들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