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어딜 가도 이만한 드라이브 길이 없어요.”
광주 시내에서 차로 20분, 울창한 숲속을 달리다 보면 그 길 끝에 ‘원효사’가 나온다.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알려진 절.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에 있는 이곳은 시민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한 곳이다.
독일에서 활동하는 작가 세오(서수경·45)는 광주 여행의 첫 장소로 이곳을 꼽았다. 신표현주의의 거장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유일한 아시아 출신 제자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독일 미하엘 슐츠 갤러리의 최연소 전속 작가이기도 하다. 베네치아 비엔날레에만 네 차례 초청받았고, 독일 최고급 호텔 브랜드 ‘아트호텔’은 쾰른점을 그의 작품으로만 꾸몄다. 그는 기독교 신자이지만, 작품에 대한 영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는 고향인 광주의 원효사로 와 명상을 즐긴다고 했다.
1일 차 13:00 원효사
차에서 내려 소나무로 우거진 길을 걷다 보니 속세를 벗어나 또 다른 세상에 온 듯하다. 절에 들어서면 원효루와 범종각이 방문객을 맞는다. 원효루에 오르니 눈앞에 산수화가 한 폭 펼쳐진다. 노송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의상봉, 그 오른쪽으로는 윤필봉, 그리고 멀리 정상의 천왕봉까지 눈에 들어온다. 무등산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명당이다.
그 옆에는 조선시대에 만든 높이 86cm의 범종이 있다.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 두 마리로 장식한 종이다. 옛 광주 사람들은 해 질 녘 들려오는 원효사의 종소리, 원효사에서 달을 바라보는 운치 등 아름다운 풍경 여덟 가지를 ‘원효 8경’이라 불렀다. 이 범종 앞에 선 세오는 휴대폰으로 사진 하나를 보여줬다. 그가 2014년 독일 코블렌츠 루트비히 미술관에서 ‘종(bell)’이라는 이름으로 열었던 전시. 조도 낮은 공간에 거대한 알루미늄 종들이 달린 작품으로 현지에서 “차가운 추상의 대표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종 모습은 원효사의 범종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공간이 주는 인간의 외로움과 대자연의 거대함을 동양의 선으로 표현했지요.”
15:00 허백련 춘설헌
무등산의 또 다른 사찰 증심사. 이번에 세오는 사찰이 아닌 그 바로 밑 개울 건너편에 있는 삼나무 숲 언덕 위 조그마한 집으로 향했다. 한국 남종화단의 대가 의재 허백련(1891~1977)이 화실이자 살롱으로 쓴 ‘춘설헌(春雪軒)’이다. 의재는 56세 이후 30년 가까이 이곳에서 살면서 서화와 다도를 즐겼다. 이곳으로 육당 최남선, 루마니아 작가 콘스탄틴 게오르규, 독일 작가 루이제 린저 등이 찾아와 교류를 나눴다.
차를 좋아한 의재는 시간이 나는 대로 차밭을 가꿨고, 손수 수확한 차를 끓여 방문한 문인과 화가, 제자들에게 따라줬다고 한다. 지금은 비록 빈집이지만, 양쪽으로 계곡이 흘러 계절의 향기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세오는 어릴 때 이곳으로 소풍이나 사생 대회를 하러 왔다. 춘설헌이 보이는 계곡 옆에 앉아 어머니가 싸준 김밥을 먹으며 의재처럼 무등산의 사계(四季)를 화폭에 담았다. 그때부터 자신의 미래를 예상했던 것일까. 조선대 미대 시절 세오의 스승은 의재의 제자인 월아 양계남. 세오는 어릴 때부터 스승의 스승인 의재의 예술혼을 느끼며 자랐다.
16:00 의재 미술관
의재의 작품이 궁금하다면 무등산 증심사길을 따라 15분만 걸어 올라가 보자. 소나무와 야생 차나무가 우거진 연초록 숲을 걷다 보면 노출 콘크리트와 반투명 유리, 목재로 마감한 건물이 나온다. 광주 동구의 ‘의재 미술관’이다. 무등산에 폭 파묻힌 듯 아름다운 미술관은 로비 사면이 유리로 돼 있어 ‘숲멍’을 즐기기에도 좋다. 지난 2001년 한국건축문화대상을 받았다.
미술관에 들어서면 마치 수묵화 한 폭 속으로 시간 여행을 온 듯하다. 의재의 작품은 선이 부드럽고 색이 은은하다. 그의 사군자와 서예엔 그만의 개성과 깊이, 운치가 있다. 세오 역시 이런 의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는 “전통적 동양화를 그리면서도 자신만의 것을 완성해 나가는 작가의 색채가 있어야 한다는 의재의 정신을 계승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17:00 명지원
과거 의재와 게오르규처럼 차를 마시며 담소를 즐기고 싶다면? 세오가 소개한 곳은 ‘명지원’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전남 담양군 고서면이지만, 무등산 자락에 걸쳐 있어 광주 시민들이 교외 나들이로 자주 찾는 곳이다. 무등산이 보이는 고즈넉한 한옥 카페, 문을 열면 드넓은 정원이 펼쳐진다. 한옥 대청마루에 앉아 향긋한 차와 시원한 빙수를 먹다 보면 몸속 깊은 곳까지 푸르러지는 기분이다. 종종 전시도 열린다.
18:00 소쇄원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소쇄원(瀟灑園)으로 갔다. 소쇄원은 계곡을 사이에 두고 꾸민 조선 중기의 대표적 민간 원림(園林·집터에 딸린 숲)이다. 조선 중종 때 선비 양산보(1503~1557)가 스승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사사(賜死)당하는 모습을 보며 현세의 꿈을 접고 은둔하는 삶을 살고자 조성한 곳이다. 소쇄(瀟灑)란 맑고 깨끗하다는 뜻. 한국 전통 정원 중에서도 손꼽히는 곳이다.
하늘까지 닿을 듯 높이 뻗은 대나무 숲길이 아름답다. 이 대나무 숲은 세오의 작품 세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쭉쭉 뻗은 대나무는 이곳에서 영감 받았다.
그러나 소쇄원의 진가는 이 대나무 숲길이 끝나는 곳에서 느낄 수 있다. 대숲의 향기가 사라질 때쯤 나타나는 작은 계곡과 바위, 고목, 정자로 어우러진 이곳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에 대한 경외와 순응이 느껴진다. 안빈낙도(安貧樂道)하고자 했던 조선 선비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온다.
19:00 백년미가
미식의 도시 광주에 왔으니 첫날 저녁은 한정식이다. 세오가 추천한 곳은 광주 서구 유촌동의 ‘백년미가’. 광주를 방문하는 역대 대통령과 국무총리들이 꼭 찾던 한정식 집이다. 중정에는 연못이 있고, 대부분 룸으로 돼 있다. 코로나 전에는 가야금 연주도 했다. 삼합, 낙지호롱, 간장게장 등 광주 별미를 한 번에 맛볼 수 있다. 모든 음식이 부족함이 없다. 이렇게 광주의 첫날 일정이 끝난다.
2일차 10:00 전남도립미술관
광주 둘째 날 아침, 세오는 일어나자마자 전남도립미술관으로 향했다. 지난해 3월 옛 광양역사 부지에 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로 건립한 현대미술 공간이다. 세오는 첫 개관 특별전 ‘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보다’에 의재 허백련, 직헌 허달재의 작품과 함께 초청받았지만, 코로나 기간이라 방문하지 못했다. 당시 세오의 작품 다섯 점이 걸렸고, 미술관은 그중 세 점을 구입했다. 입양 보낸 자기 자식을 처음 보러 가는 길이다.
역사의 느낌을 그대로 살린 전남도립미술관은 시원한 공간감이 인상적이다. 미술관에서 소장한 세오의 작품명은 ‘낯선 집에서의 나’. 소쇄원에서 영감을 받은 대나무 숲 아래 연못에서 백조가 노닐고 있다. 뭔가 친근하면서도 낯설다.
“대학을 졸업한 후 바로 독일 베를린으로 갔으니 제 안에는 두 문화가 공존해요. 어떨 때는 독일인도 한국인도 아닌 것 같지만, 이런 이방인의 감정조차 제 것이지요. 낯선 곳에 떠 있는 듯한 백조가 저를 상징해요.”
12:00 매실 한우 광양불고기
미술관 내 전시작들을 보다 보니 금방 점심때가 됐다. 이지호 전남도립미술관장은 세오에게 “광양까지 왔으니 불고기나 먹고 가라”며 단골집으로 이끌었다. 이 관장이 소개한 곳은 전남 광양시 광양읍의 ‘매실 한우 광양불고기’. 얇게 잘 손질한 한우 불고기를 숯불에 빠르게 구워 내는 곳이다. 숯불 향이 확 올라오고 간이 딱 맞는 정석의 맛. 이 불고기 한 점을 냉면에 얹어 먹으니, 한여름 더위가 가신다.
14:00 조선대 미대와 예술의 거리
세오의 전공은 한국화였다. 그러나 그는 대학 시절 독일에서 유학한 김유섭 교수에게서 신표현주의 작품을 접하면서 무작정 베를린으로 떠났다. 그의 목표는 신표현주의의 거장 바젤리츠. 그러나 그는 제자를 안 받기로 유명했다. 특히 아시아 출신 제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는 두 번 거절 후 세 번째, 자신의 그림 30kg 분량을 수퍼 카트에 싣고 가 보여준 끝에 합격증을 받았다.
신표현주의 작품은 격정적이고 화려하다. 그 밑에서 배우는 세오 역시 그런 풍이 묻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에 바젤리츠는 세오에게 “네가 어디서 왔는지를 잊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때 세오는 조선대 졸업 작품을 떠올렸다.
당시 세오는 한지 위에 사군자(四君子)를 그리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마음에 안 들면 찢고 다시 그리기를 반복하던 중, 연습실 바닥에 찢어진 한지가 수북이 쌓였다. 세오는 갑자기 찢어진 한지를 콜라주처럼 캔버스에 붙이기 시작했다. 이 작품으로 그는 수석 졸업의 영광을 얻었다.
바젤리츠에게 조언을 들은 세오가 다시 찾은 것도 광주의 한지였다. 광주에서 어머니가 보내준 한지를 독일 베를린예술대학 작업실에서 찢어 붙였다. 작품들은 바젤리츠의 제자들이 참여한 첫 전시부터 완판됐다. 뉴욕현대미술관(MoMA·모마)은 세오의 작품을 12점 구입하며 ‘신낭만주의 작가’라는 호칭을 붙였다.
3년 만에 방문한 광주 예술의 거리 ‘덕성한지필방’ 사장은 그를 보자 딸처럼 반겼다. 세오는 여기서 색색의 한지와 붓펜을 가득 샀다. 그는 “바젤리츠가 한국의 붓펜을 정말 좋아한다”고 말했다.
16:00 광주 펭귄마을
광주 예술의 거리 옆에는 최근 가장 인기 있는 곳으로 떠오른 ‘펭귄마을’이 있다. 원래는 어르신이 많이 살아 천천히 걷는 모습이 펭귄 같다고 해 붙은 이름. 그러나 최근에는 공예 거리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하얀 차양막 아래 팔고 있는 색색의 공예용품, 해외 야시장 같은 분위기다.
세오가 사는 독일 베를린에는 이런 좁은 골목이 거의 없다. 그래서 그는 한국에 올 때마다 오래된 골목을 찾아다닌다. “한국만의 손때 묻은 공간이 주는 감성이라는 것이 있어요. 저는 한 눈은 유럽에, 한 눈은 한국에 뜨고, 양쪽을 다 보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양쪽의 균형을 찾는 데 오래된 골목길은 좋은 영감을 주죠.”
17:00 연화식당
세오는 대학 시절부터 보리 굴비를 즐겨 먹었다. 자주 가던 곳이 홍아네와 대광식당, 그리고 연화식당이다. 특히 연화식당은 그의 가족이 추천했다.
짧은 광주 일정 중 보리 굴비와 육전을 모두 맛볼 수 있는 곳. 눈앞에서 구워주는 육전도 맛있지만, 그의 어머니 추천은 낙지전이다. 종종 썰어 계란에 뜨겁게 부쳐 내는 낙지전은 입에서 톡톡 터지면서 재밌는 식감을 자랑한다. 타지인들은 잘 몰라 안 시키는 메뉴다. 여기에 간이 딱 맞는 보리 굴비 한 점을 떠서 물에 만 밥을 한입 먹고 나면 배가 든든해진다. 이렇게 속을 채운 후 세오와 광주의 마지막 장소로 향했다.
19:00 5·18 기념공원
광주에서 나고 자란 그에게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잊히지 않는 기억이다. 당시엔 너무 어려서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대학 때까지도 광주에서는 크고 작은 민주화 시위가 끊이지 않았다고 했다. 그의 집으로 한 대학생이 “살려달라”며 들어온 적도 있었다.
그는 2010년 광주시립미술관과 중국 베이징 금일미술관에서 ‘21세기의 전쟁과 평화’라는 이름으로 동시 전시를 열었다. 광주 민주화 운동 30주년 기념 전시이기도 했다. 그는 여기에서 전쟁으로 고통받는 아이들 모습을 그렸다. 대표적 작품이 탱크를 향해 돌을 던지는 아이들을 그린 ‘섀도우 파이트’. 유럽에서도 “전쟁의 단상을 잘 표현했다”는 평을 받았다.
그와 광주 서구에 있는 ‘5·18 기념 공원’을 찾았다. 울창하게 우거진 숲 가운데 시민군 조각상이 있다. 그 아래에는 희생당한 사람들의 명패를 간직한 ‘추모승화공간’이 있다. 이런 곳을 여행 장소로 추천해도 될까?
“독일 베를린에는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이 있어요. 홀로코스트로 희생된 유대인들을 위한 추모비를 전시한 곳이에요. 관광객들은 이곳을 걷기도 하고 사진도 찍으며 시간을 보내요. ‘일상 속의 추모’ 공간이지요. 전 ‘5·18 기념 공원’도 그런 공간이 됐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