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소셜 뉴스 웹사이트에서 한 부모가 아이가 치아 요정에게 쓴 편지를 공개해 화제가 되었습니다. 애디(Addy)라는 소녀가 플라스틱 백에 자신의 유치(젖니)와 치아 요정에게 원하는 걸 편지로 써서 동봉한 것인데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치아 요정씨, 이번에 놓고 가는 돈은 25불이 넘기를 바라요. 지난번보다 적게 놓고 간다면 아주 화가 날 줄 알아요.’ 이 잔망스러운 협박(?) 편지를 본 부모님이 인터넷에 올렸고, 이를 본 네티즌들은 ‘치아 요정이 새 이 대신 상담을 요청할 것 같다’ ‘맞는 말이다. 언제까지 동전만 놓고 갈 것인가. 인플레이션을 감안해보라’ 같은 반응을 보였지요.
치아 요정은 영미권에서 아이들의 빠진 젖니를 가져간다고 알려진 요정입니다. 아이들이 빠진 이를 베개 밑에 넣고 자면 다음 날 아침 그 이는 사라지고 치아 요정이 놓고 간 동전을 발견합니다. 이를 뽑아 지붕 위로 던지면 새 이를 가져오는 한국의 까치 이야기와 비슷한데, 헌 이를 가져가는 대신 현금을 두고 간다는 것이 큰 차이로, 가지고 싶은 것 많아지는 아이들에게 산타클로스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요정입니다. 원하는 장난감을 선물하는 산타, 초콜릿을 마음껏 먹게 해주는 부활절 토끼와 더불어 아이들의 ‘아이돌 3대장’이지요.
이 전통은 13세기 유럽에서 시작된 것으로 시카고트리뷴을 통해 미국에 소개돼 1920년 대중화됐습니다. 현재에 와서는 영미권 아이들뿐 아니라 전 세계 많은 어린이가 이와 관련한 추억을 만들고 있지요. 8월 22일이 세계 이빨 요정의 날로 지정되기도 했답니다.
아이들 입장에선 굳건하게 자리하던 이가 갑자기 흔들리고 빠지는 경험은 분명 두려움입니다. 신체 일부가 점점 불안정해지고 완전히 빠져나올 수도 있다는 경험은 충격으로 다가오지요. 페어런츠 플러스(Parents Plus Charity)의 설립자이자 더블린대학교(UCD) 심리학과 겸임교수인 존 섀리는 아이의 관점에서 치아를 잃는 것은 실제로 외상성 사건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흔들리는 치아의 불편함을 겪은 뒤 이를 완전히 잃는 것은 그 자체로 공포스러운 사건이라고 말이지요.
동시에 아주 설레는 경험이기도 합니다. 자랑스럽게 “나 이 빠졌다, 이거 봐라” 하면서 이 빠진 자리에 혓바닥 끝을 밀어 넣는 친구가 부쩍 커 보이면서 부러웠던 경험 없으셨나요? 만 5세부터 시작되는 치아의 탈락은 아이들이 제대로 성장하고 있으며, 각각의 단계에서 기대되는 과업을 알맞게 달성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치아가 흔들리기 시작하고, 빠져서 틈이 남고, 그 틈새가 새로 나는 이로 채워지는 통과의례는 아마도 아이들이 의식할 수 있는 최초의 생물학적 변화일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정을 겪어내며 아이들은 한층 자라고 마침내 엄마와 같은 ‘어른 이’를 가지게 되지요. <엄마가 죽었다는 말을 들었니>의 저자 세아마스 오라일리는 자신의 아이에게 이렇게 이야기해 줍니다. “엄마가 배꼽 안에 아이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너는 너의 안에 어른을 가지고 있단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부터 쏟아져 나오기 시작할 거야.”
최근에는 치아가 빠지는 과정에서 아이들에게 미치는 정서적 영향에 주목한 연구들이 나왔습니다. 취리히대학교(UZH) 발달심리학 교수인 모리츠 다움은 “아이들은 치아에 관한 경험을 의도적으로 처리하고 정서적 발달에 통합시킵니다. 그렇기 때문에 치아의 손실에 수반되는 전환 의식은 아이의 성장에 중요하다는 것을 부모는 알아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불안과 기대를 한꺼번에 경험하는 아이들에게 치아 요정은 손실의 의미를 긍정적인 경험으로 바꾸어주는 역할을 하는 셈이지요. 어린이 치과 위생사이자 구강 건강에 대한 책을 쓰는 켈리 행콕은 이렇게 적었지요. “치아 요정은 아이에게 큰 기쁨을 선물할 뿐 아니라 변화를 받아들이는 동기부여로 작용합니다. 많은 경우에 치아 요정의 방문은 보상 시스템으로 작용하지요. 이 마법적인 믿음으로 아이들은 두려움에 맞섭니다.”
그러고 보면 이 치아 요정의 방문이 정말로 필요한 건 어른들인지도 모릅니다. 새로운 변화를 앞두고 걱정하며 내내 그 일에 골몰해 매달리는 제 모습이, 겁먹은 얼굴로 흔들리는 앞니를 붙잡고 있는 제 아이 모습이랑 아주 똑같거든요. 2008년 카네기멜런 대학교의 신시아 크라이더 교수 팀은 ‘우울한 사람은 구두쇠가 아니다’라는 이론으로 사람들이 상실감과 우울감을 느낄 때 정신적 결핍을 채우겠다는 목표가 발동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이 때문에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소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요. 마법을 사용하는 신비한 가정교사 이야기를 다룬 <메리 포핀스>에서 메리는 “한 술의 설탕(spoonful of sugar)이라면 쓴 약을 삼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지”라고 노래했지요. 쓰디씀을 잊게 해 줄 한 술의 설탕, 상실을 경험한 우리를 위로할 치아 요정이 우리의 베개에 들렀다 간다면! 상실과 극복을 통한 성숙이 조금 더 달콤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이빨 요정을 과연 아이들이 언제까지 믿어줄까요. 이웃에 사는 열 살 아이가 흔들리는 이를 붙잡고 이빨 요정의 방문을 고대하는 동생에게 말하더군요. “사실 이빨 요정 같은 건 없어.” 아이가 벌써 동심을 잃기 시작했다는 생각에 깜짝 놀란 엄마가 “정말 그렇게 생각하니? 그럼 네 베개 밑에 이를 가져가고 동전을 두고 간 건 누군데?”라고 묻자, 눈동자를 좌로 우로 굴리던 아이가 답합니다. “음… 그건 산타 할아버지가 그런 거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