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스파이 영화 좋아하세요?”

6년 전 어느 날, 배우 이정재에게 감독 한재림이 물었다. “좋아하죠! 스파이 영화 안 좋아하는 남자 배우가 어디 있겠어요?” 그러자 한 감독이 이정재에게 한 시나리오를 건넸다. 제목은 ‘남산’. 3주 연속 국내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배우 이정재의 감독 데뷔작, ‘헌트’의 원작이다.

어느덧 데뷔 30년인 이정재는 20대에는 청춘 스타로, 40대엔 글로벌스타로 등극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난달 21일 서울 강남의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파르나스 호텔에서 만난 그는 “작품이 잘될수록 책임감도 더 강해져 편하게 안주할 수가 없다”고 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누구나 인생에 기회가 세 번은 온다고 한다. 그러나 이정재(50)는 지금 인생만으로도 다섯 손가락이 부족하다. 그의 전성기는 지금인가, 싶으면 이를 뛰어넘는 또 다른 전성기가 온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국내 최초로 미국 에미상 남우 주연상 후보에 오른 가운데, 그가 감독 겸 각본, 제작, 주연을 맡은 영화 ‘헌트’도 프랑스 칸영화제에 이어, 토론토영화제, 시체스영화제 등 전 세계 유수 영화제의 초청을 받았다. 영화 평론가 이동진은 “올해 여름 대작 빅4 중 헌트가 최고”라고도 평가했다. 성공적인 감독 데뷔다.

그와 서울 강남의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호텔에서 만난 날은 지난달 21일 밤 8시 30분. 충남 천안에서 ‘헌트’ 무대 인사를 하고 올라온 그는 다음 날 아침 출국할 예정이라고 했다.

◇신인 감독 이정재

-감독으로 성공적인 데뷔를 했다. 어떻게 영화 ‘헌트’의 감독을 맡게 됐나.

“한재림 감독을 통해 원작 ‘남산’을 알게 됐다. 한 감독이 시나리오 수정 후 연락을 준다고 했는데, 연락이 없더라. 몇 개월을 기다리다 물어봤더니 한 감독이 작가에게 수정을 요구했는데, 생각하는 것과 조금 다르게 나와서 결국 포기하게 됐다고 하더라. 그런데 얼마 후 ‘남산’이라는 시나리오가 제작사를 찾는다는 말이 들려왔다. 한 감독이 말한 그 시나리오인가 싶어 읽어 보게 됐다.”

-어떻던가.

“한 감독이 왜 중간에 그만뒀는지 이유를 좀 알겠더라. 원작에 담긴 주제로는 많은 관객이 좋아하기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뭔가 조금 더 시도해보면 꽤 재미있는 영화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판권을 샀다.”

-원작 ‘남산’의 매력은 무엇이었나.

“처음엔 단순히 스파이 장르 영화가 하나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한국에는 정통 스파이 장르 영화가 많지 않다. 대부분 코믹이 가미됐다. 그래서 지금 시점에서 하나 나오면 멋있게 작업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시나리오부터 감독, 주연, 제작까지 맡게 됐다.

“감독을 찾는 것부터 난항이라, 내가 조금씩 시나리오를 고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문제가 많이 달라졌다. 굳이 내가 시나리오를 쓰는 이유, 시나리오를 고치려는 이유부터 찾아야 했다.”

-그 이유를 찾았나?

“‘잘못된 이념’이라는 주제다. (2017년)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고 있었다. 선거를 치르는 후보자들, 그들을 지지하는 국민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대립. 너무도 극렬하게 자신의 후보를, 그들의 공약과 정치색, 이념을 지지하며 거의 반으로 분열되는 모습을 봤다. 그리고 쏟아져 나오는 정보와 뉴스들. 분명히 옳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겠지만, ‘과연 저 이야기는 사실일까?’ 의문이 드는 것도 있었다. 이런 것을 신념에 차 믿고 있는 사람들,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유튜버들. 과연 저 사람들이 믿는 신념은 어디에서 왔을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치·세계관·신념은 옳은 것일까. 이런 것에 대해 질문이 생겼고, 이걸 주제로 잡으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영화에 나오는 가장 중요한 두 인물, 박평호(이정재)와 김정도(정우성)를 각자 다른 신념과 이념의 두 남자로 만들면 재미있겠다 싶었다.”

이정재와 정우성은 친구이자, 동료이고, 동업자다. 1999년 영화 ‘태양은 없다’ 이후 23년 만에 ‘헌트’에서 만난 두 사람은 “그때나 지금이나 말하지 않고 눈빛만 봐도 통하는 사이”라고 했다.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영화 ‘헌트’의 배경은 1983년이다. 영화에는 광주 민주화 운동부터, 장영자 사기 사건, 이웅평 미그기 귀순 사건, 아웅산 테러 사건 등이 변형돼 등장한다. 너무 가까운 현대사라 부담스럽지는 않았나.

“1980년대라는 배경에서 두 남자의 가치관과 신념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관객들이 두 남자가 가지고 있는 생각에만 집중하도록 연출한다면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각본을 쓰기가 힘들었나, 감독을 하기가 더 힘들었나.

“둘 다 장단점이 있다. 시나리오를 쓰는 건 진짜 창작을 해야 하는 거라 재미와 즐거움도 있지만,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땐 지옥이 따로 없다. 아이디어가 나올 때까지 온종일 책상에만 앉아 있기도 했고, 수많은 자료를 뒤지기도 했다. 봉준호 감독처럼 카페에 앉아 써보기도 하고, 여행을 가 인적 없는 곳에서 써보기도 했다. 그렇게 4년이 걸렸다.”

-‘언젠가는 감독을 해야지’라고 생각한 적이 있나?

“없다. 한국에서 연출을 한다는 건 시나리오를 직접 쓴다는 것이다. 제작사와 투자사, 배우, 스태프라는 수많은 관문을 통과할 정도로 완성도 높은 시나리오를 써야만 연출을 할 수가 있다. 그래서 사실 엄두도 못 냈다.”

-그래도 결국 감독까지 하게 됐다.

“제작을 맡은 사나이픽처스 한재덕 대표가 완성된 시나리오를 본 후 감독까지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했다.”

-롤모델로 여기는 감독은?

“없다.”

-그럼 자신이 재미있을 때 ‘오케이’를 하나?

“그건 굉장히 위험한 생각이다. 영화 ‘헌트’는 상업 영화다. 내가 아니라 관객들이 재미있어야 한다.”

-관객들이 어떤 걸 좋아할 것이란 확신이 있나.

“확신을 갖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부러워했겠지. 그래도 내가 동시대 한국을 살고 있기 때문에, 관객들이 무엇을 고민하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에 대해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영화를 만들 때 가장 고민한 것은?

“이 주제가 과연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을까, 이야기 흐름이 이런 식으로 전개되는 걸 흥미 있어할까. 두 시간 내내 진지하면 안 되니까 ‘코미디를 넣을까?’ ‘액션을 넣을까?’ 고민하다 액션을 더 많이 넣었다. 그 후엔 어떻게 하면 액션을 더 멋있고, 시원하고, 박력 있게 표현할까. 혹시 관객들이 어디서 본 것 같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어떻게 하면 새로운 액션 장면을 연출할까. 이렇게 철저하게 관객들 눈높이에서 새로운 걸 보여주려고 했다.”

-영화 제작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내가 쓴 시나리오를 스태프, 배우, 투자자들에게 보여드리는 순간! 난 그분들을 1차 관객이라고 생각한다. 이분들이 시나리오를 보고 ‘재미있네’라고 생각해야 그다음 과정이 진행된다.”

-코로나 중 촬영이 진행됐다.

“영화 ‘헌트’에는 총 세 번 해외 장면이 나온다. 미국, 일본, 태국. 원래 미국은 해외 로케이션을 가려고 했는데, 코로나 기간이라 비자가 잘 안 나와 결국 세 곳 다 한국에서 촬영했다. 미국 워싱턴 장면은 여의도에서 촬영했다.”

-개봉하고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박스 오피스 1위 했을 때! 나와 관객들의 코드가 딱 맞았다는 말이 되니깐. 소셜미디어나 각종 사이트에 후기가 올라오는 것도 좋았다. ‘이렇게 관심이 많구나’ 싶어서.”

-가장 좋았던 댓글은?

“너무 많다. ‘첫 연출인데 잘 만들었네’라든지, ‘배우들과 호흡이 잘 맞네’ 등. 모든 글이 좋았다.”

-아픈 글은 없었나.

“악플이라기보다 아무래도 이야기 속도가 너무 빠르고, 그 안에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보니깐 ‘전 그 부분 놓쳤어요’라는 글이 아쉬웠다. 대사 하나하나에도 많은 것을 심어놨는데, 너무 속도가 빠르다 보니. ‘현대사를 조금 더 친절하게 설명해줬으면 좋았겠다’고 하는 말이 기억에 남았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으로 한국 배우 최초로 에미상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이정재. /넷플릭스

◇30년차 배우 이정재

/SBS 이정재의 데뷔작 SBS 드라마 공룡선생

“사정이 있어서, 중학교 때 좀 쉬었습니다.”

1993년 SBS 드라마 ‘공룡선생’으로 데뷔한 배우 이정재의 첫 대사다. 사연 있어 보이는 눈빛과 세련된 외모는 그를 영화 ‘젊은 남자’와 드라마 ‘모래시계’에 캐스팅하게 만들었고, 이 두 작품으로 당대의 청춘 스타가 됐다.

-1990년대 ‘모래시계’ 재희의 인기는 정말 어마어마했다. 그 시대를 살던 사람들은 배우 이정재의 지금 이 순간이 오리란 걸 모르는 채, 당시가 절정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람이 살면서 ‘나의 모든 복이 20대에 다 끝났구나’라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절망적이겠는가. 어느 나이대든 항상 도전하고, 그 도전 속에서 크고 작은 성공을 하고, 내가 꿈꿨던 것들을 이루고, 거기에서 또 성취욕을 느낀다면 언제나 또 다른 내일을 기대할 수 있다. 기회가 왔을 때 책임감 있게 일하고, 하루하루를 열심히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SBS 이정재를 벼락 스타로 만들어준 SBS 드라마 모래시계

-2013년 모 예능 프로그램에서 배우 한혜진이 ‘이정재의 절정은 ‘모래시계’ 아닌가요?’라고 묻자, 이정재가 “앞으로 그 순간을 뛰어넘는 전성기가 한번 더 올 거다”라고 말하는 영상이 유튜브에서 화제다.

“내가 그랬나? 하하! ‘모래시계’와 같은 영광이 다시 와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 시기가 최고였다고 평가받는다면 조금 서운하다.”

-그래서 지금 ‘모래시계’를 뛰어넘는 순간이 온 것 아닌가? 지금은 글로벌 스타인데.

“지금과 ‘모래시계’ 중 어느 것이 더 성공이냐를 논할 수는 없다. 개인적으로 ‘모래시계’의 갑작스러운 성공은 대한민국 시청자들이 갑작스럽게 나를 알게 된 것이고, 그래서 또 다른 일을 할 수 있었던 성공이었다. 그래서 지금 ‘모래시계의 성공을 가질래?’ 아니면 ‘지금의 성공을 가질래?’ 하고 묻는다면 많이 주저할 것 같다. 사실 인생에 무엇이 더 중요하고, 값지고, 소중한지를 고르라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20대 전성기와 40대 전성기를 대하는 태도의 차이는 있나?

“둘 다 너무 큰 복이다. 연기자는 캐스팅 제안을 받아야 작품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소중한 작품과 의미 있는 캐릭터를 제안받았다는 것부터가 행운이다.”

-아무래도 ‘한번 겪어본 전성기라, 조금 더 여유 있게 지금을 즐길 수 있다’는 식의 답변이 나오지 않을까 했다.

“프로 정신이라는 게 그런 것 같다. 여기에 안주하면서 즐긴다는 것 자체가 안 되는. 아마 배우뿐만 아니라 각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의 근성은 다 같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주연, 조연, 특별 출연 가리지 않고 다양한 배역을 맡았던 건가.

“제안받는 것 자체가 고마운 일이고, 결코 쉽게 제안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그 소중함을 잘 안다. 그래서 선택에 더 신중했고, 선택을 한 후 책임감을 갖고 모든 것을 쏟아넣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성공을 즐길 시간이 없었고.”

-누구나 열심히 하지만 결과가 다 좋지는 않다. 특히, 연기는 오래 했다고 반드시 느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정재의 연기는 꾸준히 진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실 영화 ‘젊은 남자’로 대종상 신인 남우상을 받고, 드라마 ‘모래시계’로 백상예술대상 신인 연기상을, 영화 ‘태양은 없다’로 청룡영화상 남우 주연상을 받았지만, 연기를 제대로 배워보지 못하고 데뷔했기 때문에 갈망은 항상 있었다. 그래서 데뷔 6년 뒤 동국대 연극영상학과에 입학했고, 석사 학위까지 받았다. 그러다 2003년 영화 ‘오, 브라더스’를 촬영할 때, 갑자기 내가 ‘옛날 연기를 하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 연기 패턴, 연기를 하는 자세라고 할까. ‘이런 것들을 빨리 바꾸지 않으면 매너리즘에 빠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양대 최형인 교수를 찾아갔다. 그때 최 교수가 그러더라. ‘유명 바이올리니스트도, 유명 골퍼도 항상 레슨을 받는데, 연기자도 건강검진 받듯이 레슨을 계속 받아야 하는 게 아니냐’고. 그때부터 최 교수에게 개인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연기에 인생 경험이 포함되나?

“보통 연기자들이 자기 어렸을 때나 과거에 경험했던 것, 다른 사람에게 간접적으로 들었던 것을 연기에 녹인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렇지는 않다. 시나리오에 나와 있는 상황과 캐릭터를 철저하게 연구해 연기한다. 연기자들은 오로지 이 작가가 왜 이 상황을 썼을까, 이건 어떤 의미가 있고, 이 상황에서 이 캐릭터는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이렇게 연구하며 펼쳐 나가는 방식을 쓴다.”

-배역을 선택하는 기준은?

“계속 다른 배역을 하려고 한다. 비슷한 모습만 보여주면 관객들이 흥미를 못 느낄 테니, 드라마 ‘보좌관’에서 정의롭고 대한민국을 올바르게 바꿔 보려는 캐릭터를 연기한 후,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레이를 연기했고, 여기서 확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성기훈을 택하게 됐다.”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처럼, 이정재는 악인 캐릭터일 때 더욱 빛난다는 말도 있다.

“‘오징어 게임’ 이후로도 그 말은 아직 유효한 것인가? 하하! 그리고 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레이가 악인이라는 생각은 안 한다. 내 형을 죽인 사람에게 복수하는 것인데, 그게 어떻게 악인인가.”

◇형 같은 대표 이정재

배우, 감독, 각색가, 제작자, 이정재에게는 이 외에도 직책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소속사인 아티스트 컴퍼니 대표다. 2016년 그가 직접 설립한 회사. 공동 대표는 오랜 친구이자 동료인 정우성이다.

/우노필름 영화 '태양은 없다'

-배우 정우성과는 영화 ‘태양은 없다’ 이후 23년 만에 두 번째 만남이다. 촬영장 분위기가 조금 바뀌었나?

“그때도 워낙 호흡이 잘 맞았기 때문에 큰 차이를 못 느꼈다. 둘이 애드립(즉흥 대사) 하는 게 너무 재미있다 보니 스태프들도 끊지 않고 계속 찍었다. 굉장히 즐거운 작업이었다. 그러고 나서 ‘우리 빨리 또 합시다’ 했고, 같이 할 만한 작품을 계속 찾았는데 결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러다 23년 만에 다시 같이하게 됐는데, 역시 촬영 현장에서 서로 말을 많이 안 해도 너무 잘 아는 거지. 여기에서 어느 정도까지 긴장감을 뿜어내면서 해야 할지, 아니면 긴장감 없이 조금 더 서늘하게 해야 할지.”

-시나리오 작업 때부터 김정도 역할로 정우성을 염두에 뒀지만, 정작 정우성은 네 번 거절했다고 들었다. 대안은 있었나?

“글쎄, 하하! 그건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라.”

-황정민, 이성민, 유재명, 박성웅, 김남길, 주지훈 등 영화에 등장한 카메오 군단도 대단했다.

“나 때문에만 나온 건 100% 아니고, 정우성씨 친분, 사나이 픽처스 한재덕 대표의 친분이 워낙 두터웠다. 그리고 우리 둘이 스크린에서 한번 더 나온다는 것이 선배 동료 배우들도 꼭 한번 보고 싶었던 장면이었던 것 같다. 다들 ‘작은 역할 있으면 하나 줘봐. 내가 도와줄게’라고 말했다. 너무 감사했다.”

-어떻게 아티스트 컴퍼니를 창업하게 됐나.

“우성씨나 나나 경력이 오래된 배우가 동료 후배들과 함께할 때 도움이 많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작은 놀이방 같은 거 하나 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아티스트 컴퍼니에서 배우를 내 식구로 받아들일 때 기준은?

“일단은 착해야 한다. 그리고 어디에 있어도 잘 섞일 수 있는 사람. 잘 섞인다는 것은 그 자리를 잘 이해하려고 굉장히 노력하는 거고, 관찰력도 좋아야 한다. 되게 쉬워 보이지만 되게 어려운 거다. 마냥 재미있고, 웃기려고 하는 그런 거 말고, 그냥 가만히 있어도 편하네, 이런 선함을 표현할 수 있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강력한 에미상 수상자로 거론된다.

“에미상은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영광이다. 후보자가 되면 상패 비슷한 것이 온다. 후보가 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박수 받을 만하다는 의미다.”

-데뷔 30년 차다. 원래 꿈이 배우였나?

“아니다. 원래는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해 미대를 가고 싶었다. 미대 진학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취직을 먼저 해야 하겠다 싶어 인테리어 회사를 알아봤고, 인테리어 공부 학원비를 벌기 위해 압구정동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모델로 먼저 발탁됐다.”

-요즘 연예인 출신 화가 ‘아트테이너’도 화제인데, 다시 그림을 그릴 생각은 없나?

“전혀 없다(웃음).”

-30년 동안 변하지 않는 외모도 화제다. 비법이 있다면?

“건강을 제일 먼저 생각한다. 운동도 틈만 나면 하려고 노력하고, 식단 조절은 언제나 늘 하는 것이고. 조금 덜 피곤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특히 자는 시간을 중시한다. 일이 늦게 끝나는 거라면 어쩔 수 없지만, 혼자 개인 일 하면서 밤 새우고 이런 것은 줄이려고 한다.”

-모든 것을 다 이룬 것 같은데, 앞으로 목표는?

“그냥 앞으로도 연기 열심히 하고, 제작도 하고, 시나리오도 쓸 수도 있고. 그렇게 (지금처럼) 지내지 않겠나.”

아무튼 주말_ 이정재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