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어디서든 국민이 자신을 알아볼 수 있도록 화려한 색의 옷과 모자를 세트로 갖춰 입었다. / AFP 연합뉴스

엘리자베스 2세가 영국 여왕으로서 가진 마지막 공무는 리즈 트러스 신임 총리 알현이었다. 지난 6일 그는 스코틀랜드 밸모럴성에서 보리스 존슨 총리의 퇴임을 승인하고, 트러스 총리를 정식 임명했다. 당시 여왕은 체크무늬 치마에 미색 셔츠와 카디건을 입어 편안한 느낌을 연출했다. 진주 목걸이를 착용했지만, 셔츠 안으로 살짝 묻히게 했다. 손녀뻘인 영국 역사상 세 번째 여성 총리를 따스하게 맞아주고 지지해주고 싶은 ‘할머니(granny)’의 모습이었다.

지난 6일 스코틀랜드 밸모럴성에서 여왕이 신임 총리 리즈 트러스와 악수하는 모습. / 로이터 연합뉴스

3년 전 존슨 총리를 임명할 때는 달랐다. 파란색 꽃무늬 원피스에 브로치와 귀걸이, 두 겹의 목걸이로 화려한 패션을 선보였다. 별명이 ‘영국인 트럼프’일 정도로 괴짜에 불같은 그를 위엄과 카리스마로 다스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AFP 연합뉴스 2019년 엘리자베스 2세가 보리스 존슨 총리를 알현하는 모습

영국을 70년간 통치한 엘리자베스 2세는 패션의 정치적 역할을 잘 알았던 군주였다. 영국 왕실은 정치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 여왕은 중립적인 표정을 유지하는 것으로도 유명했지만 정치적으로 표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 땐 늘 패션으로 말했다.

◇왕가 존속을 위한 클래식한 패션

여왕은 격식을 중시했다. 왕가의 전통에 따라 공식 행사에서는 늘 치마 정장을 입었고, 외출 시 모자와 장갑을 착용했으며, 중간 굽의 신발과 고풍스러운 스타일의 핸드백도 빼놓지 않았다. 이는 아버지 조지 6세가 왕가의 존속과 권위를 위해 규율에 맞는 클래식한 의상을 입도록 한 가르침 때문이다.

영국 왕가(王家)인 윈저 가문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윈저’라는 이름은 그의 할아버지인 조지 5세가 개명한 것으로, 이전 성은 독일의 공작 가문인 ‘작센코부르크고타’였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영국 내 반(反) 독일 정서가 심해지고, 사촌인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와 독일 황제 빌헬름 2세가 비참하게 삶을 마무리하자 생존을 위해 가장 영국적인 성인 ‘윈저’로 바꾼 것이다. 차남이었던 여왕의 아버지 조지 6세가 왕위를 물려받은 것도 큰아버지인 에드워드 8세가 미국인 이혼녀 월리스 심프슨과 결혼하겠다며 왕위를 내팽개친 탓이다. 조지 6세는 제2차 대전으로 흔들리던 대영제국 속 국가와 왕가의 존속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다 일찍 세상을 떠났다.

이런 상황에서 스물다섯 나이에 왕위를 물려받은 엘리자베스의 역할은 영국의 재건과 윈저 가문의 부활이었다. 그는 영국 왕조의 힘과 권위, 풍요로움을 보여주는 수단으로 ‘패션’을 이용했다.

/EPA 연합뉴스

그가 대관식에서 입은 가운에는 영국의 장미, 캐나다의 메이플잎, 인도의 연꽃 등 영연방 국가들의 상징이 모두 수놓여 있다. 가운 위에 자주색 바탕의 금빛으로 수놓은 로브는 런던에서 가장 오래된 재단사인 ‘이드 앤드 라벤스크로프트’가 제작한 것이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윈저 이야기’는 “이 의상들은 전쟁 후 궁핍함과는 선을 그으며, 윈저 가문은 강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분석했다.

할아버지 조지 5세는 처음으로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 현장 대면 활동에 나선 국왕. 왕가의 의상 규율도 이에 적합하도록 만들어졌다. 일례로 여왕의 치마는 무릎 위로 올라가지 않는다. 허리를 숙일 때 허벅지가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돌풍이 몰아쳐도 치마가 들리지 않도록 밑단에도 신경을 썼다. CNN은 “옷을 만든 뒤 선풍기를 돌려 바람에 휘날리지 않는지 테스트했다는 소문도 있다”고 했다. 겨드랑이 부분에는 땀 자국이 나지 않도록 탈부착이 가능한 패드까지 착용했다고 한다.

신발 굽은 6㎝를 넘지 않는다. 발이 편한 걸 가장 중시하는 엘리자베스는 100년 역사의 영국 회사 ‘아넬로 다비드’의 검정 가죽 구두를 가장 선호했다. 장인들이 제작한 이 신발 가격은 1000파운드(약 143만원) 정도. 미국 허핑턴포스트는 “영국 왕실은 여왕 대신 새 신발을 신어 편안하게 만드는 ‘구두 상궁’을 고용하고 있다”며 “그의 임무는 면 재질의 발목까지 오는 양말을 신고 궁전 카펫 위를 걸으면서 불편한 곳이 사라질 때까지 길들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왕실이 구두 상궁을 고용하는 기준은 영국 사이즈 4(한국 사이즈 235~240) 여성이라고 한다.

◇정치적 의사 표현도 패션으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대화 중인 엘리자베스 2세. 티아라를 착용해 위엄을 강조했다. / AFP연합뉴스

영국 왕실은 정치적 의사 표현이 사실상 금지돼 있지만 여왕은 자신의 의견을 전하고 싶을 때 패션을 활용했다.

2019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버킹엄궁을 방문해 국빈 만찬을 가졌을 때, 여왕은 미얀마에서 선물 받은 루비가 96개 박힌 티아라(왕관)를 착용했다. 미얀마에서 루비는 ‘미움과 악을 막아주는 것’이다. 여왕은 앞서 트럼프를 만났을 때는 파란색 재킷과 모자, 브로치를 착용했는데, 이 브로치는 트럼프 전임 대통령이었던 버락 오바마 부부가 선물한 것이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트럼프에 대한 반감을 표시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AFP 연합뉴스 2019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만난 엘리자베스 2세. 오바마 부부에게 선물받은 브로치를 착용하고 있다.

엘리자베스는 파란색 정장을 70세 금혼식에서 입을 정도로 좋아한다. 그러나 2017년 그가 파란색 정장과 모자를 쓰고 의회 개원 연설 단상에 섰을 때는 평소와 다르게 주목받았다. 파란 바탕 속 모자 장식이 유럽연합 깃발을 연상케 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여왕이 브렉시트 반대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여왕은 디자인은 고전적이지만 색은 다채로운 옷과 모자를 즐겼다. 옷과 모자, 액세서리의 통일성을 가장 중시했다고 한다. 키 163㎝로 영국 기준으로는 그리 크지 않은 여왕이 수많은 인파가 몰리는 행사장에서 눈에 잘 띌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산도 투명한 소재로 만들었다. 여왕의 우산은 새장 모양 돔형 우산으로 끝단과 손잡이에만 색이 들어가 있다. 영국 우산 브랜드 펄튼이 여왕을 위해 맞춤 제작한 것으로, 여왕은 이 브랜드의 우산만 약 100개 갖고 있다고 한다. 미국 인터넷 언론 퍼레이드는 “우산은 국민들이 그를 볼 수 있도록 투명한 소재로 만들고, 옷과 모자와 같은 색깔로 끝단을 통일한다”고 보도했다.

엘리자베스는 그러나 사치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선을 지켰다. 그는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의 왕이었다. 남편 필립공의 주도로 왕가 다큐멘터리를 통해 처음으로 사생활이 공개된 왕이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그가 가장 중시한 것은 옷의 재질. 왕실 의상 디자이너들은 옷을 제작하기 전에 직물을 먼저 테스트했다고 한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선 안 되고, 주름도 최대한 적게 생겨야 했다.

패션의 완성은 ‘모자’였다. 유럽의 기독교 여성들은 머리 덮개를 쓰는 것이 관례였고, 1950년대까지 왕실 가족들은 공공장소에서 머리를 보여주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여왕은 야외에서는 늘 모자를 쓰거나, ‘패시네이터(머리 장식)’, 또는 스카프를 둘렀다. 그가 사랑한 모자 디자이너는 프레데릭 폭스와 레이철 트레버 모건이었다.

외출 시 장갑도 즐겨 착용했다. 격식 때문이기도 했지만, 대중과 악수할 때 감기에 걸리는 걸 피하기 위해서였다. 손톱은 항상 짧게, 색깔 있는 네일 케어도 하지 않았다. 2001년부터 영국 여왕의 옷을 디자인한 스튜어트 파빈은 “여왕의 의상은 어디서 누굴 만났는지에 따라서 완벽하게 분류돼 있다”며 “만약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만날 예정이라면 한번 입었던 드레스를 또 입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여왕을 만나는 사람들은 여왕이 매번 다른 옷을 입는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패션을 외교 도구로

여왕은 패션을 외교 도구로도 잘 활용했다. 1957년 캐나다 오타와를 방문했을 때는 녹색과 흰색 단풍잎 무늬 드레스를 입었고, 2010년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의 모스크를 방문할 땐 황금색 이슬람풍의 모자와 의상을 착용했다. 30년간 여왕의 복장 고문으로 일한 앤절라 켈리는 “모자 하나를 디자인하기 위해 해당국의 일기 예보와 지역 관습까지 조사했다”며 “국익을 위해 여왕의 패션은 전략적이고 현명해야 했다”고 말했다.

여왕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지속 가능한 미래 패션에도 관심을 보였다. 모피를 좋아했지만, 2019년부터는 모피 착용을 완전히 중단했고, 의류와 천을 재활용했다.

여왕은 1년에 300번에 가까운 행사에 참석했다. 그중에는 장례식도 있었다. 1997년 며느리였던 다이애나빈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때, 영국 국민의 분노는 왕실을 향했다. 왕실 존속을 위협할 정도였다. 여왕은 당시 심플한 디자인의 검정 드레스와 모자로 엄마를 잃은 손자들의 할머니 모습을 연출했다. 관을 향해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이 모습으로 그는 국민의 분노를 잠재울 수 있었다. CNN은 “엘리자베스 2세가 남긴 많은 유산 가운데 하나는 ‘어떻게 옷이 국가를 결집할 수 있는가’를 잘 보여줬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