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s Kids, No many People(아이들은 들어올 수 있지만 많은 손님은 받을 수 없습니다).”
전북 전주시 완산구에 있는 일식집 ‘백수의 찬’에는 영·유아, 어린이 손님이 입장할 수 있다는 ‘예스키즈존(Yeskids Zone)’ 안내문이 붙어있다. 최근 가게 홍보용 트위터에는 “한가할 때는 아이를 대신 안아 드립니다. 조카 손님이 많아 경험이 많으니 안심하세요”라는 안내문도 올렸다. 홍정애(37) 사장은 “가게가 작아서 일행이 5명 이상이면 받지 못하지만, 그것 말고는 별다른 제약이 없다”고 말했다.
7년 전 개업할 때부터 예스키즈존이었던 건 아니다. 홍 사장은 “노키즈존이 등장하기 전엔 그저 손님이 자녀를 데리고 오면 다 같은 손님으로 받았을 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노키즈존이 늘면서 사회적 논란이 일자 생각이 조금 달라졌단다. 그는 “친한 친구가 아기를 낳았는데 문득 ‘친구가 아이와 함께 외식을 갔는데 노키즈존을 마주하면 굉장히 섭섭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저희 가게라도 예스키즈존으로 표시를 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예스키즈존 ”노키즈존과 맞서려는 것 아냐”
최근 전국 곳곳에선 ‘예스키즈존’을 선언하는 가게가 하나둘 늘고 있다. <아무튼, 주말>이 만난 예스키즈존 가게들은 대부분 “최근이 아니라 이전부터 어린이·유아 출입을 허용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들이 근래 ‘예스키즈존’을 공개적으로 안내하고 나선 건 “노키즈존에 덴 부모가 늘었기 때문”이란다. 서울 한 카페 사장은 “예스키즈존이라고 알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가게로 ‘아이를 데려가도 괜찮냐’는 문의 전화가 점점 늘었다”며 “한번은 아이를 데리고 온 손님이 쭈뼛쭈뼛 서 있기에 물으니 ‘노키즈존인지 살피고 있었다’고 하더라. 그때 ‘예스키즈존이라는 걸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예스키즈존 가게들은 “노키즈존과 대립하거나 맞서려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노키즈존이 아이들을 부당하게 차별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은 공유하고 있었다. 홍영애 사장은 “어른 손님이 소란스럽게 굴거나 술에 취해서 주정을 부린다고 입장을 거부하진 않지 않느냐. 유독 아이들만 금지하는 건 ‘약자에 대한 차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어린이·유아 출입은 물론 이들을 적극 배려하는 예스키즈존도 적지 않다. 경기 시흥의 스페인 음식점 ‘바오스앤밥스’는 매장 내에 수유실과 놀이방이 있고, 키즈 전용 메뉴도 별도로 제공한다. 주은지(32) 점장은 “사실 유아·어린이들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거나 하는 건 당연한 거고 결국 중요한 건 어른들이라고 생각한다”며 “예스키즈존은 어린이 동반 손님만 오는 배타적인 공간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손님이 조화롭게 서로 배려하면서 이용하는 식당이 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지자체는 관내 식당 중 예스키즈존을 지정해 지원하는 사업에 나서고 있다. 부산 금정구는 지난 7월 어린이 동반 손님에게 편의를 제공하겠다는 뜻을 밝힌 음식점들을 현장 심사해 10곳을 ‘금정 예스키즈존’으로 지정했다. 금정구는 “지정된 업체에 예스키즈존 표찰과 유아용 수저·식기 세트를 제공했다”며 “저출산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돼보자는 취지”라고 밝혔다.
◇'No키즈’ 넘어 ‘No중년’ ‘No교수’까지…
예스키즈존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노키즈존이 점점 늘자 이에 대한 문제의식도 확산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아동의 신체·정신 건강에 유해하거나 시설 이용에 특별한 능력이나 주의가 요구되지 않는 한 노키즈존은 명백한 아동 차별”이라며 철회 권고를 내렸다. 일부 아이와 부모가 무례한 행동으로 문제가 있었다고 해서 모든 아이와 부모의 출입을 제한하는 건 일반화의 오류라고도 했다.
하지만 노키즈존은 아랑곳없이 느는 추세다. 노키즈존을 제재하거나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고 국민 여론이 노키즈존에 우호적인 영향도 크다. 지난해 한국리서치가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71%가 “노키즈존을 허용할 수 있다”고 답한 반면 “허용할 수 없다”는 응답은 17%에 그쳤다.
현재 전국에 노키즈존 가게는 최소 400여곳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노키즈존을 운영하는 가게들은 “가게에서 아이가 다치면 사업주가 보상 책임을 지고 심지어 형사처분까지 받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위험을 왜 감수해야 하느냐”며 이유 없는 차별이 아니라고 항변한다.
최근에는 노키즈존을 넘어 갖가지 ‘노 존(No Zone)’이 등장하고 있다. 부산의 한 카페는 중·고등학생들이 카페 주변에서 흡연하고 문제를 일으킨다며 이들의 출입을 제한하는 ‘노유스존(No Youth Zone)’을 적용해 논란이 됐다. 부산대 앞 한 술집은 ‘교수들이 갑질을 한다’며 ‘노교수존’ 안내문을 걸었다가 부산대 교수협의회의 항의를 받고 안내문을 내리는 소동이 벌어졌다. 최근 서울의 한 야영장은 ‘40대 이상은 과음과 고성방가 등으로 이용객들에게 폐를 끼친다’는 이유로 ‘노중년존’을 적용해 논란이 일었다.
◇”연령·세대 아닌 행위를 문제삼아야”
일각에선 “차별 금지법을 제정해 노키즈존을 비롯한 부당한 차별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차별 금지법이 도입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민호 변호사는 “사업주에게도 ‘영업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노키즈존이 정말로 차별에 해당하는지는 개별 사업장을 두고 법원이 일일이 따져보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가령 식당들이 뜨거운 뚝배기나 숯불 등 아이에게 위험한 요인을 들어 노키즈존을 적용한다면 법원으로선 그게 합당한 사유인지 일일이 따져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되고 이에 따른 시행령이 마련되더라도 줄줄이 위헌 논란과 법적 다툼이 벌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예스키즈존도 궁극적인 해법이 될 순 없다”며 “특정 연령층이 아니라 문제 행위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인권위도 “안전사고 방지를 위한 주의 사항, 영업에 방해가 되는 구체적 행위를 제시하고 이용 제한이나 퇴장 요구를 할 수 있음을 미리 알리는 방법이 있다”고 제시한 바 있다.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은 “법과 제도가 개입하면 도리어 갈등이 증폭되고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이 커진다”며 “먼저 사회 문화적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배준용 주말뉴스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