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남에서 마약 조직을 운영했던 한국인 조봉행의 범죄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수리남(연출 윤종빈)’이 전 세계적 흥행을 이어가는 가운데 돌연 외교적 논란에 휩싸였다. ‘수리남’이 전 세계 톱10 드라마 4~5위권에 들며 화제가 되자 수리남 정부가 드라마가 자국 이미지를 훼손했다며 문제 삼고 나선 것이다.
수리남 정부는 “표현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한계도 있다. 수리남은 드라마에서 나타나는 이미지가 더는 없고 그런 행위(마약 거래)에 참여하지도 않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찮다. “수리남이 마약 거래로 유명하고,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인데 무슨 잘못이냐”는 주장이다. 심지어 수리남 국민 중 일부도 “마약을 통제하지 못하는 정부의 무능함을 먼저 돌아봐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드라마 ‘수리남’은 정말 수리남의 이미지를 실추시킨 걸까. 드라마에서 그려진 수리남은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아무튼, 주말>이 문답 형식으로 정리해 봤다.
Q: 수리남은 어떤 나라인가?
A: 남미 대륙 북동쪽에 위치한 소국이다. 국토 면적은 남한보다 1.5~1.6배 정도 크지만 인구는 54만여 명에 불과하고 국토의 약 80~90%가 열대우림 지역이다. 국민 대부분이 해안가에 있는 수도 파라마리보와 인근에 모여 산다. 수리남이라는 국명은 유럽인들이 처음 수리남에 도착했을 때 살던 원주민들이 ‘수리넨(Surinen)’으로 불린 것에서 유래했다는 게 정설이다. 17세기 식민지로 개척돼 1975년 독립하기 전까지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았다. 독립 전에는 ‘네덜란드령 기아나’로 불렸다. 한때 영국이 수리남을 차지했지만 2차 영란전쟁의 결과로 네덜란드가 수리남을, 영국이 네덜란드가 지배하던 ‘뉴암스테르담’을 갖기로 했다. 뉴암스테르담이 바로 오늘의 뉴욕이다.
Q: 인구 절반이 마약에 연루됐다는데.
A: 드라마에 “인구의 4분의 3이 마약 산업과 직·간접적 관련이 있다”는 대사가 나오지만 현지 교민들은 “과장된 부분이 크다”고 말했다. 수리남은 남미 국가 중 치안이 안정되고 국민성도 온순한 편이라는 것. 하지만 외신과 국제연구기관들은 “수리남은 정치·정부 등 공공 부문이 광범위하게 마약과 연루돼 있고, 국민 상당수가 마약 산업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다”고 지적한다. 가장 큰 요인은 사법체계가 부실해 마약 밀매로 나온 불법 자금이 수리남에서 ‘세탁’되기 때문이다. 한 외신은 “수리남의 카지노와 환전소, 부동산, 식당, 중고차 판매 등이 마약 밀매에 관여된 자금 세탁에 이용되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Q: 드라마 속 수리남에선 홍어가 많이 난다던데.
A: 주인공 강인구(하정우)는 ‘수리남에서 홍어가 많이 나는데 다 갖다버린다’는 친구 박응수(현봉식)의 얘기를 듣고 수리남산 홍어를 한국에 수출하기 위해 수리남으로 간다. 국립수산과학원 측은 “실제로 남대서양에 홍어가 많이 살고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남미 국가에서 홍어가 많이 잡힌다”며 “수리남 연안에도 홍어가 많이 서식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관세청에 따르면 한국에 수리남산 홍어가 수입된 적은 없다. 일각에선 “돈을 벌기 위해 수리남산 홍어를 구하러 간 설정은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한다. 드라마 배경이 된 2008~2010년에는 이미 국내에 아르헨티나, 칠레, 미국 등 아메리카산 홍어가 수입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조봉행 체포 작전에 협조했던 ‘협력자 K씨’도 홍어 사업이 아니라 수리남에 선박용 특수용접봉을 파는 사업을 하러 수리남에 갔었다.
Q: 수리남 내 중국계 영향력이 실제로 막강한가?
A: 드라마에선 첸진(장첸)이 이끄는 중국계 갱단의 존재감이 크고, 대통령 델라노가 “선거에서 이기려면 중국인 표를 관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과장된 각색이다. 수리남은 ‘다인종 다문화’ 국가이지만, 식민지 시대 강제 이주당한 아프리카 흑인계 주민이 37.4%로 가장 많다. 두 번째로 동인도계(27.4%)가 많고 이어 동남아, 중동 순이다. 수리남 내 중국계 주민은 약 7% 정도. 다만 박응수가 말한 “수리남에 중국인 총리도 있었다더라”라는 대사는 사실이다. 1980~1982년 대통령 겸 수상을 지낸 헨드릭 루돌프 친 아 센(중국명 천야셴)이다. 하지만 그는 1980년 군부 쿠데타 이후 군부가 세운 꼭두각시 수상이자 대통령이었다.
Q: 드라마 속 부패한 대통령 델라노 알바레즈가 실존 인물이라던데?
A: 실제 모델은 쿠데타를 일으켜 천야셴을 꼭두각시 수상으로 앞세운 뒤 잔혹한 군사 독재를 했던 데시 바우터스다. 반체제 인사를 살해하고 좌파 독재정권을 세운 그는 1992년 권좌에서 물러났다가 2010년 대통령으로 선출돼 2020년까지 집권했다. 데시 바우터스는 실제로 조봉행과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봉행은 체포된 후 조사 과정에서 ‘수리남 군인이자 마약 밀매를 하던 데시 바우터스와 알게 됐고, 그가 소유한 선박이 고장 난 것을 자신이 수리해주면서 친해졌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조봉행이 한창 마약 밀매를 벌이던 때 바우터스는 대통령이 아니었다. 조봉행은 2009년 체포됐고 바우터스가 대통령이 된 건 2010년이다.
Q: 수리남 정부는 “정부가 마약 거래에 관여하지 않고 있다”고 했는데
A: 현 수리남 대통령인 찬 산톡히는 경찰청장 출신이자 법무부 장관으로 마약·부패 범죄에 맞서면서 인기 몰이를 했고, 그 결과 2020년 데시 바우터스를 밀어내고 대통령까지 올랐다. 이후에도 마약 밀매 소탕을 위한 단속을 강화하고 있었다. 그런데 드라마 ‘수리남’이 방영되면서 자신들이 공들인 국가 이미지 쇄신과 범죄 소탕 프로젝트의 성과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 강경하게 반응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그럼에도 수리남이 마약 거래에서 해방된 나라라고 보긴 어렵다. 당장 현 정부 실세인 부통령 로니 브룬스바이크는 과거 데시 바우터스에게 맞서 반군을 이끄는 과정에서 전비 마련을 위해 코카인 밀매에 관여한 것으로 드러나 유죄 판결을 받았다. 마약 밀매가 소탕되기 어려운 건 관료를 비롯한 공공 부문 전반에 부패가 뿌리 깊게 박혀 있기 때문이다. 한 수리남 세관 직원은 외신 인터뷰에서 “모든 세관 직원을 해고하는 것만이 세관을 깨끗하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Q: 수리남과 한국의 인연은?
A: 6·25 전쟁 당시 수리남 출신 군인 115명이 UN군으로 참전했다. 다만 당시에는 네덜란드 식민지였기 때문에 이들은 네덜란드군 소속으로 참전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는 수리남 수영 국가대표인 앤서니 네스티가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딴 흑인 수영 선수가 되는 진기한 인연이 있다. 네스티는 당시 배영 100m에서 미국의 수영 스타 맷 비욘디를 0.01초 차로 제치고 금메달을 차지해 세계 수영 역사상 최대 이변을 연출했다.
세계적인 네덜란드 축구 선수 중 상당수도 수리남 이중국적자이거나 수리남 이주민의 후손인 경우가 적지 않다. 1975년 수리남이 독립할 당시 정치·사회적 혼란을 우려한 수리남 국민 수만명이 네덜란드로 대거 이주했는데, 이들의 후손이 네덜란드 국적으로 세계 축구사에 족적을 남긴 것이다.
당장 세리에A에서 맹활약 중인 김민재와 곧잘 비교되는 현 네덜란드 축구 대표팀 선수 버질 판데이크(리버풀)가 수리남 이중국적자인 동시에 어머니가 중국계 수리남인으로 알려져 있다. 1980~1990년대 네덜란드 축구를 세계 최정상급으로 이끌었던 루드 굴리트, 프랑크 레이카르트와 ‘고글맨’ 에드가 다비즈, 스트라이커 패트릭 클루이베르트 등도 수리남 이중국적자이자 수리남계 이주민 자녀다.
[배준용 주말뉴스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