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이야기는 군대 이야기, 축구 이야기, 그중 제일은 군대에서 축구 시합 했던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보다 더 지루한 시간이 있었으니 중년 여성이 군대에 보낸 아들 이야기할 때.

일러스트=김영석

막걸리 집에서 만나기로 한 윤희 누나는 앉자마자 둘째 아들 군대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첫째 군대에 보낼 때는 한창 코로나 시국이라 신병 훈련소 입소식도 취소됐는데 둘째는 그걸 했단다. 빡빡머리를 한 채 연병장에 차렷 자세로 서 있는 아들을 보고 펑펑 운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남편이었다나. “우리 남편은 눈물이 없는 사람인 줄 알았어. 둘째까지 군대에 보내니 뭔가 울컥했는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러더라. 은근 로맨티시스트라니까.”

누나는 주절주절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훈련소에서 아들이 보낸 소포 상자를 받았을 때는 자신도 엉엉 울 수밖에 없었다며 휴대폰에 담긴 사진을 보여줬다. “첫째 때 이미 겪은 일인데도 아들 군대 보내고 이거 받을 때가 제일 북받쳐.” 상자 안에는 개킨 셔츠와 바지, 운동화가 가지런히 담겨 있었다. 저기요, 어머님. 저도 30년쯤 전에 그것을 집에 보내본 사람이랍니다. 우리 때는 밋밋한 누런 상자였는데 요즘 소포 상자는 육해공군 캐릭터가 경례하는 모습이 귀엽게 그려져 있군요. 많이 좋아졌네요, 뭐.

첫째는 강원도 고성, 둘째는 양구에 있단다. 아들 둘이 동시에 나라를 지킨다. 둘째가 이번에 최전방 GOP 부대에 배치됐다. “GOP 생활, 힘들지 않을까?” ‘어머님, 저는 전투경찰이었답니다’라는 말을 숨긴 채 “힘들지 않은 군대가 어딨나요” 하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누나는 전방 철책 부대 생활에 대해 또 한참 말했다. 혹한기가 어떻고 유격 훈련이 어떻고, 위수 지역이 어떻고 동부 전선이 어떻고…. 다 알고 있는 걸, 왜 물었던가. 막걸리 몇 잔 들이켜며 그 모든 수다와 푸념을 지겹게 들었다. 이젠 그만했으면 하는 바람에 다른 화제를 꺼내면, 이야기는 돌고 돌아 ‘아들 군대’로 돌아왔다.

발그레한 얼굴로 술잔을 탁탁 두드리며 누나는 말했다. 산악과 해안 경계를 모두 담당하다 보니 우리나라에서 경계하는 범위가 가장 넓다는 큰아들 부대를 걱정했다가, 백두산에 태극기를 꽂으라고 이승만 대통령이 이름 지어준 작은아들 부대의 전통에 대해 자랑했다가 종횡무진했다. 저런 정보는 다 어디서 얻는 걸까. 전방 부대 대대장 정도 시켜줘도 충분히 작전을 수행할 수 있을 만한 수준이다. 양구가 한반도 정중앙에 있어 ‘배꼽’이라 한다는 사실도 누나에게 처음 들었다. 그래서 백두산 부대 장병들을 응원하는 모임 이름이 ‘배꼽 봉사단’이라나. 거기서 양구 특산물인 시래기와 오미자청 등을 샀다며, 사실 예전엔 양구가 어디 붙었는지도 몰랐는데 이젠 고향처럼 정겹고 반갑다고 말한다. 며칠 전엔 생전 처음으로 국군의 날 행사를 TV로 ‘본방 사수’ 했단다. 군인들이 행진하는 모습만 봐도 가슴이 뭉클하더라, 그걸 끝까지 지켜보는 나 자신이 신기했다고 말하며 누나는 깔깔 웃었다. 뭔가 집요하고 훌륭하다, 이 누나.

잠시 화장실에 갔다 왔더니 이번엔 휴대폰을 골똘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뭘 그렇게 심각하게 봐요? “우리 아들 오늘 저녁엔 뭘 먹었나 하고….” ‘더캠프’라는 애플리케이션 화면엔 밥, 소고기 해장국, 땅콩 조림, 닭 순살 야채 조림, 배추김치… 백두산 부대 박모 일병께서 오늘 저녁 드셨다는 메뉴가 상세히 소개되어 있었다. 요즘 군대는 이런 것까지 어머니들에게 알려주는구나. 심지어 열량 756.82Kcal까지 알려주는군. “우리 아들, 땅콩 별로 안 좋아하는데” 하면서 윤희 누나는 해물 파전 안주를 오물거렸다. 휴대폰 화면에는 둘째 아들 군 생활이 앞으로 467일 남았다고 알려줬고, 첫째는 104일 남았다고 표시되어 있었다. 참 애틋하다, 이 누나. 이쯤에선 나도 장단을 맞춰줘야겠다 싶어 “내가 아는 다른 누나는 카톡 프로필 사진이 아예 아들이 군복 입고 있는 사진이던데?” 했더니 윤희 누나가 당연하다는 듯 시큰둥 말했다. “나도 그래.” 어절씨구.

뒹구는 막걸리 병을 뒤로 하고 술집을 나섰다. 시월의 밤공기는 제법 쌀쌀했다. “에휴, 우리 아들 오늘 야간 경계 근무는 잘 서고 있는지….” 2호선 지하철 역까지 걸어가는 도중에도 누나는 계속 아들 이야기, 정확히 말하자면 ‘군대에 간 아들 이야기’뿐이었다. 이러다 주먹 흔들고 목청 높이며 “높은 산 깊은 골 적막한 산하…” 군가라도 부르지 않을까 싶었다. 왕년에 이 누나가 대학 합창단 리더였는데 말이지.

그렇게 엄마가 되었다. 아들을 군대에 보낸 엄마가 되었다. 딸이었으면 했는데 아들이 나왔다고 뾰로통하더니, 그 아들이 벌써 자라 목소리 굵어지고 까끌한 수염이 돋고, 번쩍이는 전투화 신고 집으로 달려와 “충성! 휴가를 명받았습니다”를 외친다. 두툼한 전공 서적 껴안고 강의실로 종종걸음 치던 내 마음속 첫사랑 누나도, 최루탄 뒹구는 도로를 질주하던 왕년의 투사 누나도, 그렇게 다 ‘군인의 엄마’가 되었다. 대학로 거리는 불금을 맞이한 아들 또래 청춘들의 웃음으로 넘쳐나고 있었고, 윤희 누나의 마음은 저 멀리 고성으로 양구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 시각 철원, 포천, 동두천, 의정부, 혹은 논산, 대구, 광주, 진해, 부산, 춘천으로, 저 멀리 해안 초소, 공군 레이더 기지, 초계함 갑판 위, 군복 입은 청년이 있는 대한민국 어디든 엄마의 마음은 달려가고 있었을 것이다. 아들은 나라를 지키고, 엄마는 애틋한 마음으로 아들을 지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