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산시성 푸핑현에 있는 시진핑 주석의 아버지 시중쉰의 묘에 3m 높이의 시중쉰 조각상이 서있다. 시 주석은 지난 2005년 베이징에 있던 부친의 묘를 푸핑현에 있는 길지에 이장했다./김두규 교수

친구는 유명 국립대 철학과 교수다. 필자와 같은 시기에 유학 갔다. 친구는 독일 철학을, 필자는 독일 문학을 공부하고 거의 같은 시기에 학위를 따고 귀국하였다. 유학 가기 전에는 훗날 목사가 된 신학생과 셋이서 ‘헤겔의 노동 개념’ 독어 원전을 강독했다. 귀국해서 교수가 된 우리는 재미 삼아 사주 공부를 함께하였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아 이제는 과에서 고참 교수가 되었다. 철학과에 입학했으나 진로 때문에 방황하는 학생들에게 사적으로 사주 상담을 가끔 해준다고 하였다. “아예, 철학과에 사주 강좌를 개설하면 어때?”라고 하였다. “큰일 날 소리!”라며 정색한다. “사주는 미신!”이라는 학계의 반발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흔히 사주와 풍수를 “미신!”이라고 한다. 관용적인 분들은 사주를 “통계”라고 조금 숨통을 틔워 준다. 풍수·사주설은 2000년 전 중국에서 태동하여 수많은 왕조를 거치면서 변신을 거듭하였다. 현재 사회주의 중국에서 풍수·사주에 대한 공식적 입장은 무엇일까? 사주·풍수가 혹독한 시련을 겪은 때는 문화대혁명(1966~1976) 기간이다. 이후 1980년대 풍수는 ‘신흥 환경지리학’으로 복권되면서 기존 풍수 서적들의 영인·해제 작업이 시작됐다. 1990년대에 중국 당국은 양택(주택) 풍수는 건축에 필요한 ‘과학’으로, 음택(묘지) 풍수는 개인의 ‘신앙’으로 정리한다. 2000년대 들어와서 중국은 자국이 자랑할만한 ‘세계 문화’로 평가한다. 2005년 5월 당시 저장성 당서기이던 시진핑이 아버지 시중쉰 묘를 베이징에서 산시성 푸핑현의 길지로 이장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중국 정부의 풍수관 변화 덕분이었다.

중국 드라마 ‘용령미굴’ 포스터 /텐센트 비디오

2012년 12월 9일, 중국은 전설적인 풍수 대가 원천강·이순풍의 고향이자 무덤이 있는 쓰촨성 랑중에서 ‘세계 풍수 문화의 날’ 선포식을 거행했다. 필자도 문화재청 파견으로 ‘참관인’ 자격으로 선포식을 지켜보았다. 풍수는 그들의 소중한 문화가 되었다. 2020년 4월 중국에 ‘용령미굴(龍岭迷窟)’이란 18부작 드라마가 방영되었다. 동시간대 방영 드라마 가운데 높은 시청률로 인기를 누렸고,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방영 중이다.

주인공의 종족에게 내린 저주를 풀 비결이 부장된 이순풍 무덤을 찾아 발굴(실은 도굴)하는 내용이다. 무덤을 찾기 위해서 당시 터를 잡았을 때 활용된 ‘심룡경(尋龍經)’과 ‘분금정혈술(分金定穴術)’이 동원된다. 무덤 위치를 찾았다고 끝난 것이 아니다. 관(棺)으로 진입하는 과정에 도굴 방지용 수많은 ‘장치(기관)’를 해제해야 한다. 주역 팔괘가 응용된다. 드라마 대사 곳곳에서 중국 문화와 과학의 우수성이 강조된다. 풍수를 이용한 문화 상품 창출에 성공하였다. 이제 풍수는 중국에서 미신도 신앙도 아닌 자랑스러운 문화다.

사주는 어떠한가? 21세기 중국이 배출한 석학 가운데 홍비모(洪丕謨: 1940~2005) 교수(상하이 화둥대)가 있다. 시·서·화·의술·법률 고문헌에 능통하여 책 100여 권을 남긴 인문학자다. 그는 1991년 ‘중국고대산명술(中國古代算命术)’이란 사주 학술서를 출간한다. 6개월 만에 44만부가 팔렸다. 홍비모 교수의 사주 결론이다.

“사주술 자체만 놓고 보면 이론적 허구가 많다. 그러나 미신으로 부정할 수 없다. 문화 사상의 하나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그것을 통해 인민들은 가치관을 정립해왔고 그에 맞는 행동 양식을 보여 왔다. 사주술에 담긴 잠언(箴言)이 윤리적이고 도덕적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사주·풍수를 소중한 문화로 재평가하고 있다. 한반도에 사주·풍수가 유입되어 ‘한국적 사주·풍수’로 변용된 지 1500년이 넘는다. 한국 문화의 일부로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