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 사건’처럼 심각한 사건에만 집중하면 아동 학대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지난 13일은 양어머니로부터 학대받아 처참하게 숨진 ‘정인이 사건’ 2주기였다. 정인이처럼 충격적인 아동 학대 사건이 반복될 때마다 정부는 “아동 학대 근절”을 외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017년 확인된 아동 학대 건수는 2만2367건에서 지난해 3만7605건으로 53.8%가 증가했다. 그중 76%는 친부모에 의한 학대였다.
대체 왜 이럴까. 학대당한 어린이·청소년과 장애인 등을 12년간 무료 변론해온 김예원(40) 변호사는 “아동 학대 대응 시스템이 여전히 허술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아동 학대와 관련된 경찰·지자체·아동보호전문기관·학교 등 관련 기관 사이에 역할과 권한이 정확히 구분돼 있지 않고, 정보조차 공유되지 않는 실정”이라고 했다.
김 변호사는 한 쪽 눈이 의안(義眼)인 시각장애인이다. 춘천여고, 강원대 법대를 나와 2009년 제51회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변호사가 된 이후 대형 로펌 공익재단과 서울시 장애인 인권센터에서 일하다 2017년 장애인권법센터를 열고 학대나 범죄 피해를 받은 사회적 소수자를 무료로 변론한다. 12년간 1000여 건을 맡았다. 김 변호사는 “이웃들에게 성 착취를 당하거나 노동 착취를 당한 발달 장애인들, 친부에게 성폭행당한 장애인, 부모에게 가혹한 학대를 당한 아이들을 위해 싸웠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현재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듀크대에서 범죄 피해자 지원 제도를 연구 주제로 방문학자 과정을 밟고 있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 그의 사무실이 있는 광주광역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학대’만 바라보면 ‘아동’을 놓친다
-어떻게 시각장애를 갖게 됐나.
“태어날 때 의료사고로 한쪽 눈을 잃었다. 병원 측 실수로 발생한 사고였지만, 당시엔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는지 몰랐었단다. 학창 시절 친구들에게 ‘개눈깔’이라는 놀림도 당했고, 소위 ‘일진’들로부터 따돌림받기도 했다. 하지만 변호사로 활동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의료사고가 변호사가 된 계기가 된 건가.
“의료사고로 눈을 잃었다는 걸 중학생 때 알게 됐는데, 그때는 이미 공소시효가 지나 법적으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계속 원망만 하고 살 것인가’ 생각하다 법으로 억울한 사람들을 도와야겠다고 다짐했다.”
-아동 학대 처벌이 강화됐는데도 왜 근절되지 않을까.
“정치권과 국민이 ‘학대’에만 집중하기 때문이다. 아동 학대가 발생하면 가해자를 피해자와 분리한 뒤 어떻게 엄벌할지만 고민한다. 정작 피해 아동의 의사에는 무관심하다.”
-무슨 뜻인가?
“부모가 천인공노할 짓을 저질렀다면 아이와 분리하고 중형에 처하는 게 맞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동 학대는 언론과 정치권이 주목하는 그런 극단적인 수준이 아니다. 얼마 전 내복만 입고 길에서 돌아다니다 발견된 아이가 화제가 된 적 있지 않나. 법적으로는 부모는 방임에 의한 아동복지법 위반으로 처벌받아야 한다. 그런데 속사정을 보면 ‘싱글맘’인 엄마가 공공 근로로 간신히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고, 아이가 방치되어 근로 시간을 줄이려 했더니 급여도 깎인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장시간 근로를 했다. 이런 사례를 사법적으로 접근해 ‘당신은 엄마 자격이 없으니 아이를 키울 수 없고 벌을 받으라’고 하고 아이는 시설로 보내는 게 정말 아이를 위한 것일까.”
-무조건 아이와 부모를 분리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뜻인가.
“내가 맡았던 케이스 중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다. 학대당한 아이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시설로 보내져야 했다. 그 아이는 집에 대한 그리움을 참지 못해 시설을 탈출한 뒤 원래 살던 집 옥상에 올라가 투신했다. 다행히 사망하진 않았지만, 그 상황을 듣고 너무 많이 울었다. 이런 일이 적지 않다. 보호를 이유로 시설로 간 아이들이 ‘다시 집에 가고 싶다’며 지우개를 삼키고, 병원에 갔다가 시설로 돌아가기 싫어서 도망간다. 이런 건 보도되지 않는다. 현 제도에선 피해 아동이 시설로 가고 싶은지, 집에 남고 싶은지 등 본인 의사는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그래서 폭력적이고 위헌적이다.”
-아이의 의사를 우선해야 한다는 건가.
“맞다. 미국에서도 한때 우리처럼 문제 가정에서 아이를 분리해 위탁 가정에 맡겼다. 그러다 보니 위탁 가정에서 ‘이 아이는 못 키우겠다’고 계속 내보냈고, 아이들이 여러 위탁 가정을 떠돌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들이 성인이 돼서 주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잘못된 제도 탓에 당신들이 내 인생을 초토화시켰다’고. 도대체 우리 사회는 이런 문제를 어떻게 감당하려고 함부로 아동 학대 제도를 다루는지 우려스럽다.”
-아동 학대 범죄자에 대한 법정형을 올리는 것이 위험하다고 지적했던데.
“판사 입장에서는 법정형이 높은 사건에서는 유무죄 판단을 더 엄격히 한다. 명확한 증거가 없으면 유죄를 선고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더 강해진다. 자연히 검찰이 기소 단계에서부터 ‘증거가 확실하지 않다’는 이유로 불기소하는 사건들이 늘어난다. 도리어 가해자가 유리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장애인 성폭력 사건도 영화 ‘도가니’로 여론이 들끓어서 법정형을 2배 높였더니 기소가 이전보다 절반으로 줄었다. 정치인들은 이런 법안 만들고 손뼉 치고 성과를 낸 것처럼 말하지만, 이런 법안들은 도리어 가해자 처벌을 어렵게 만든다. 저는 반대로 선고할 때 양형단계에서 처벌을 가중해야 한다고 계속 주장했고, 다행히 대법원이 올해부터 아동학대사건 가중양형요소를 대거 추가해 시행하고 있다.”
-결국 아동 학대는 가족을 중심으로 풀 수밖에 없는 건가.
“문제 있던 가족들이 다시 똘똘 뭉쳐서 살아야 한다는 게 아니다. 문제 가족들을 관찰하고 피해 아동을 지원하고 부모들이 재범하지 않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하다.”
-아동 학대는 저소득, 저학력층에서 쉽게 발생할까.
“내가 맡은 사건 중에선 가해자 부모가 잘살거나 잘 배운 경우도 적지 않았다. 잘사는 집에서도 애가 죽고 많이 배운 집에서도 애가 죽는다. 학대는 어디서든 일어나고 심지어 아주 지능적으로 일어난다. 학대가 의심되면 무조건 신고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1종 면허 장애인 차별에 7년간 입법 투쟁
태어난 직후 장애인이 된 김 변호사는 필연적으로 장애인과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제도적 혐오와 맞서 싸울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김 변호사는 시각장애인은 1종 면허를 받을 수 없게 한 도로교통법에 맞서 7년간 투쟁 끝에 시각장애인도 1종 면허를 발급받을 수 있게 법률 개정을 이뤄내기도 했다.
-시각장애인의 1종 면허 갱신은 어떻게 이뤄냈나.
“헌법재판소에서 시보로 일할 때였다. 2종 수동 면허가 있었는데 도로교통공단에서 안내문이 왔다. 7년 무사고이니 1종 면허로 갱신하러 오라더라. 경찰서에 갔더니 담당 직원이 시력 검사를 하다가 내가 보는 앞에서 갱신 신청 서류를 죽죽 찢었다. 화가 나서 이유를 물으니 “아무리 무사고라도 한쪽 눈이 보이지 않으면 법률상 1종 면허로 갱신할 수 없다”는 거다. 찾아보니 당시 시행령에 1종 면허 자격에 대해 ‘두 눈을 동시에 뜨고 측정한 시력이 0.8 이상, 두 눈의 시력이 각각 0.5 이상’이라고 돼 있더라.”
-차별이라고 본 건가?
“명백한 차별이다. 적지 않은 사람이 ‘한쪽 눈이 안 보이면 시야가 좁아지니 대형차를 몰기 부적합하지 않으냐’고 하는데, 편견이다. 한쪽 눈만 보여도 고개를 돌리면 충분히 시야를 확보할 수 있고, 두 눈이 잘 보여도 운전 중에는 고개를 돌려 시야를 확보해야 한다. 알아보니 운송업, 택배업 하시다 한쪽 시력을 잃었다는 이유로 면허가 갱신되지 않아 생업이 끊기는 일이 적지 않았다. 그런 사례들을 모아 입법 운동을 한 끝에 2016년부터 법이 개정돼 한쪽 시력이 없어도 1종 면허에 응시할 자격이 부여됐다.”
-아동·장애인 등을 무료로 변론하는 이유는?
“내가 장애인이라거나 대단히 희생적이어서가 아니다. 그저 변호사로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주도적으로 하면서 살고 싶었을 뿐이다. 서울시 장애인 인권센터에서도 일했지만, 어디 매여 있고 후원을 받고 그러면 내가 하고 싶은 만큼 사건 지원을 할 수 없더라.”
-승소했던 사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교통사고로 한쪽 다리에 의족을 착용하고 근무하던 경비원이 눈을 치우다 넘어졌는데, 의족은 신체가 아니라는 이유로 산업재해 신청이 거절된 사건이었다. 단순히 의족이 탈부착 가능하다는 이유로 신체의 일부가 아니라고 보는 것은 헌법상 평등의 원칙과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위반한 해석이고, 오히려 의족이 있기 때문에 근로가 가능하다는 사회적 의미를 고려해서 법의 취지를 해석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을 받아 승소했다. 덕분에 고용노동부의 관련 지침이 개선됐고 의족이나 의수를 착용하고 근무하는 지체장애인의 인권 신장에 큰 도움이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본다.”
-장애인뿐 아니라 노인, 아동, 여성 등 사회 각계에 혐오 정서가 커지고 있다.
“차별과 혐오가 커지면 누구나 다 ‘나답게’ 사는 게 어려워진다. 장애가 생기는 것, 나이가 든다는 것, 어리다는 것, 내 성별이 여성이라는 건 전부 선택의 결과도 아니고 노력해서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다 자신만의 소수성을 갖고 있다. 소수성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
◇”검수완박은 피해자 변호할 길 없앤 것”
김 변호사는 지난 봄 더불어민주당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추진하자 이를 강력하게 비판해 화제가 됐다. 그는 페이스북에 “범죄자만 살 맛 나는 세상” “서민들 피눈물 나게 할 법안” “잘못됐고, 잘못됐으며, 잘못됐다”고 거침없이 질타했다.
-검수완박을 밀어붙인 이들에 대해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전 정부의 검경 수사권 조정과 ‘검수완박’으로 피해자를 변호할 길이 사라졌다. 강간 피해를 당한 고등학생이 얼마 전 고소를 다 취하해달라고 하더라. 너무 오래 걸리니까, 힘들어서 못 버티겠다고 하더라. 수사권 조정 전까지는 검찰이나 경찰 아무 데나 고소장을 낼 수 있었다. 검찰에 고소하면 수사 지휘서가 내려가고 그럼 기한 내에 경찰이 수사를 해야 하고, 경찰이 빨리빨리 송치해야 하기 때문에 수사 지연도 크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검찰엔 고소를 못 한다. 경찰은 일이 많다며 고소장을 안 받으려 한다. 고소장 단계부터 피해자들이 무너져내린다. ‘내 인생이 이렇지 뭐’ 하며 법적 구제를 포기한다. 이게 국가가 할 일인가?”
-결국 서민과 장애인·아동 등 약자들에게 피해가 갈 거라고 했는데.
“피의자를 변호하는 쪽은 검수완박으로 바뀐 제도를 좋다고 할 것이다. 피해자 쪽이 알아서 나가떨어지니까. 제도가 복잡해졌으니 수임료를 더 비싸게 부를 수도 있게 됐다. 내가 지원하는 사람들은 변호사 사무실 문턱에도 못 가보는 사람들이다. 수사권조정과 검수완박처럼 하면 그 사람들은 다 알아서 죽으라는 얘기다. 검수완박 체제로는 내가 아무리 피해자와 공감대를 형성해 사건 내용을 잘 파악하고 의견서를 잘 써내도 사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다. 받아들여져도 6개월 동안 조사 한 번 안 할 수도 있고, 조사했어도 어떻게 처리됐는지도 알 수가 없고. 이게 과도기적 현상이라 좋아질 기대라도 있으면 그렇게 강하게 비판하지 않았을 거다. 애초부터 설계가 잘못됐다.”
-제일 큰 문제가 뭔가?
“바뀐 제도가 너무 복잡하다는 것! 10년 차 변호사들도 어려워한다. 수사종결권도 경찰이 갖고 있으니 경찰에 사건이 계속 남아 있는 탓에 피해자들은 기다리다 지쳐 대응을 포기한다. 경찰도 업무가 폭증하니 인력이 마구 이탈한다.”
-법률가로서 처참한 심정인가.
“신체 건강했던 지적장애아동이 장애인 시설에 들어간 지 1년 좀 넘은 상태에서 온몸이 멍투성이 시체가 되어 돌아온 사건을 잊을 수 없다. 그 사건이 더 가슴 아팠던 건 목격자나 CCTV가 없다는 이유로 입건조차 되지 못한 채 내사종결됐기 때문이다. 수사권 조정 이전에는 내사종결된 사건도 한번 더 다툴 기회가 있었다. 이제는 내사종결이 완전한 사건 종결이라 유족의 피눈물을 그대로 볼 수밖에 없다.”
-결국 국회가 나서야 할까.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복원하고 경찰의 수사 종결권을 없애는 것 말고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다. 검찰이 수사의 책임자가 되도록 무거운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 원래 민주당이 내놓은 원안도 수사지휘권을 없애는 방안은 없었다.”
[광주광역시=배준용 주말뉴스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