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좋아하던 골뱅이무침을 못 먹게 됐다. 올갱이해장국은 물론 요즘 제철 맞은 생굴이나 조개구이도 앞으로는 먹을 수 없을 것만 같다. 껍데기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동물을 음식으로 먹는 일이 꺼려진다. 상상만 해도 느낌이 이상하다. 제기랄! 내 반려동물 때문이다.

일러스트=김영석

달팽이를 키우게 된 건 아들 녀석 때문이었다. 하루는 어린이집 하원 시간에 아이를 데리러 갔더니 원장 선생님이 투명한 플라스틱 컵 하나를 건네주지 않는가. 고맙게도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주시는가 했더니 검은 흙이 담겼다. “오늘 민우가 현장 학습 다녀왔잖아요. 그 안에 달팽이가 들었어요, 호호호!” 원장님의 미소와 함께, 우리 집에 ‘셋째’가 생기는 순간이었다.

처음엔 이 녀석을 키울 생각이 아니었다. 식탁 모퉁이에 방치하다시피 잊고 있었는데, 사나흘 지나서였나, 삼겹살 먹다 문득 떠올라 상추 한 조각을 컵 안에 넣어주었다. 꾸물꾸물 손톱만 한 녀석이 기어 올라와 허겁지겁 상추 잎을 갉았다. 저 조그만 것에도 생명이 있는데…. 쌈 채소에 고기를 한 점 싸서 목으로 넘기는 느낌이 어째 칼칼했다. 밀폐 용기 하나를 가져와 녀석의 보금자리를 옮겼다.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달팽이 먹이’를 검색했다. 아파트 화단에서 풀 몇 포기를 뜯어 넣어주었다. 골뱅이무침을 못 먹게 되는 운명의 시작이었다.

처음엔 이 녀석이 어떤 녀석인지 몰랐다. 그냥 어렸을 때부터 보던 그런 달팽이인 줄 알았다. 보름쯤 지났나, 밀폐 용기 뚜껑을 열었더니 손가락 두 마디쯤 되는 녀석이 느릿느릿 기어 올라와 ‘안녕하세요’ 하는 눈빛으로 더듬이 두 개를 쭈욱 내밀었다. 헉, 우량아로구나 싶었는데 이 녀석 정체가 ‘아프리카 왕달팽이’임을 알게 되었다. 성장하면 패각 길이만 20cm에 달하고 몸을 펼치면 40cm가 훌쩍 넘기도 한단다. 내가 뭔가 역사적 실수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고 당황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인터넷에서 ‘달팽이 사육 통’을 검색했다. 특대로 주문했다. 주문창 아래 친절하게도 달팽이 전용 사료가 ‘추천 상품’으로 뜨길래 그것까지 장바구니에 담았다.

게으른 눈썰미를 한탄하며 그때부터 폭풍 검색을 시작했다. 유튜브에서 ‘달팽이 키우는 법’을 빠짐없이 학습했다. 인터넷 카페 가운데 달팽이 집사 모임이 있다는 것을 알고 거기에도 가입했다. 사육 통에는 아무 흙이나 깔아주면 안 되고 코코넛 열매 껍질로 만든 ‘코코피트’라는 특수한 흙을 깔아줘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코코피트 한 박스를 주문하는 한편으로 사육 통에 들어있던 깻잎과 무 조각을 얼른 꺼냈다. 달팽이님들은 맵거나 독특한 향이 있는 것을 싫어하신단다. 어쩐지 안 먹더라니…. 까다로우신 분.

식구가 됐으니 번듯한 호칭 하나는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이름을 짓기로 했다. 우리 집 첫째는 민우, 둘째는 민하니 셋째인 달팽이는 ‘민달’이라 부르기로 했다. 암컷인지 수컷인지 몰라 중성적 이름으로 지었다. 달팽이는 성별이 없다는 사실도 달팽이를 키우고야 알았다. 이름을 출력해 사육 통에 ‘봉, 민, 달’이라고 문패를 붙였더니 지켜보던 아내가 한마디 던진다. “아이고, 눈물겹다.”

여름 지나고 가을이 왔다. 민달이는 손바닥 크기만큼 자랐다. 낮엔 코코피트 안에 몸을 파묻어 숙면하고, 저녁이 되면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내가 정성껏 준비한 유기농 식단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달팽이마다 식성이 있는데 우리 집 민달이는 엷게 썬 애호박을 가장 좋아하고 계란 껍데기를 곱게 갈아 넣어주면 게 눈 감추듯 먹는다. 고(高)물가 시대에 온갖 채소 공양하느라 허리가 휜다. 양배추 줄기 부분과 과일 껍질, 두부는 잘 먹지 않는데, 건강을 생각하면 골고루 먹었으면 좋겠다는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집에서 계란 프라이를 해 먹고 껍데기만 따로 모아두었더니 아내가 또 한마디 날린다. “저놈의 달팽이, 언젠가는 잡아먹고 말 테다.” 아내를 동물 학대죄 같은 것으로 고발할 방법은 없는지, 몰래 휴대폰을 꺼내 법률 검토를 시작한다.

어릴 적 시골 할머니 댁에 개가 한 마리 있었다. 흰둥이라는 흔한 이름이었는데 이듬해 방학 때 갔더니 없었다. 어른들 배 속으로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고 얼마나 울었던지. 양희은의 ‘백구’라는 노래를 들을 때마다 녀석의 길쭉한 주둥이와 까만 눈망울이 떠올라 코끝이 시큰해지는데, 나도 커서 ‘사철탕’이란 것을 먹는 어른이 되었다. 고백하건대 7~8년 전까지도 먹었다. 개를 식용으로 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해묵은 논쟁에 끼어들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달팽이 한 마리라도 키워보니 개고기라는 말만 들어도 혐오하는 그 마음을 작으나마 알겠다.

지난 여름휴가 때는 처남네에 갔더니 거실 구석에 유아용 욕조가 있었다. 미꾸라지 두 마리가 그 안에서 놀고 있었다. “태권도 학원에서 생태 학습 갔는데, 글쎄 저런 걸 보내왔지 뭐예요.” 처남댁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우리 처남이 ‘미꾸라지 집사’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이 기회에 아뢸 말씀이 있사오니, 보육 시설 관계자 여러분. 생명체를 학습용으로 주는 것은 조금 생각해보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전국 가정에 계획에 없던 셋째 넷째가 생긴답니다. 외래종 달팽이를 자연에 방생할 수도 없는 일이고요. 글을 쓰는 지금, 민달이는 옆에서 쿨쿨 자고 있다. 세상 평온한 녀석…. 내가 달팽이로 위로받게 될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