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이상했다’ ‘한 기업이 음원에 이어 바이럴 업체까지 소유하다니’….
지난달 말 국내 아이돌 그룹의 근황을 주로 소개하는 페이스북 페이지 ‘아이돌 연구소’의 실소유주가 알려진 뒤 각종 온라인 게시판에 달린 반응이다. ‘아이돌 연구소’는 K팝 관련 콘텐츠를 카드 뉴스 형태로 올리는 온라인 매체로, 이 분야 최다 팔로어(132만명)를 자랑한다. 아이돌 그룹이 데뷔하거나 새 앨범으로 컴백하면 이들을 평가하는 내용의 게시물이 실시간으로 올라오기 때문에 전 세계 K팝 팬들이 찾는다.
문제는 최근 카카오 산하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이 매체의 실제 소유주인 것이 밝혀지면서 ‘역(逆)바이럴(입소문) 마케팅’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 것이다. 바이럴 마케팅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소비자가 자연스럽게 정보를 얻게 하는 광고 방식인데, 역바이럴은 반대로 특정 경쟁사에 대해 의도적으로 부정적인 입소문을 내는 것을 말한다. 아이돌 팬들은 “아이돌연구소에서 최근 카카오엔터 소속 연예인과 아이돌 그룹에 대해선 우호적인 콘텐츠가 다수 나간 반면, 다른 기획사 소속 아이돌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불리한 내용의 비방성 콘텐츠가 다수 올라갔다”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카카오엔터의 역바이럴 논란이 불거진 것은 최근 한 온라인 매체가 ‘아이돌 연구소’의 저작권 침해 논란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아이돌연구소가 연예 관련 게시물을 페이스북에 올리면서 출처가 표기되지 않은 기사, 사진을 무단으로 게재한 사실이 문제가 된 것. 특정 언론사의 단독 기사를 연예 콘텐츠로 올리면서 매체 로고를 지우고 올리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아이돌연구소’의 실소유주가 카카오엔터인 것이 드러났다.
아이돌 팬들은 “카카오엔터가 아이돌 연구소를 통해 근거 없는 비방성 콘텐츠로 경쟁사 아이돌 그룹 이미지를 떨어뜨렸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호불호 갈리는 르세라핌 바뀐 스타일링’ ‘호불호 갈리고 있는 있지(ITZY) 신곡 의상’ 등 마치 특정 아이돌의 의상이나 신곡이 팬들 사이 논란이 되는 것처럼 제목을 단 콘텐츠를 올리는 식이다. 해당 게시물을 클릭해 들어가면 무엇이 논란이 되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다. 뉴진스(어도어), 엔믹스(JYP) 등 카카오엔터 소속이 아닌 다른 아이돌 그룹도 비슷한 방식으로 역바이럴이 의심되는 콘텐츠에 올랐다. 반면 스타쉽엔터테인먼트, IST엔터테인먼트 등 카카오 산하 기획사에 대해선 주로 우호적인 콘텐츠를 올렸다.
본지 취재 결과, 카카오는 자사 콘텐츠 마케팅을 위해 2~3년 전 개인이 운영하던 ‘아이돌 연구소’를 인수했고, 카카오엔터 산하 뮤직 마케팅팀에서 이를 관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 온라인 매체 기자는 “카카오가 자사 연예인을 홍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영향력 있는 페이지를 인수했을 것”이라며 “아이돌연구소가 그동안 기자들 사이에도 개인이 운영하는 페이스북 페이지 정도로 알려져 있었지만 기획사를 운영하는 업체의 소유가 밝혀진 이상 역바이럴 게시물들은 분명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고 했다. 한 대중 문화 평론가는 “최근 영화 ‘비상선언’에 대한 일방적 악평을 퍼뜨렸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처럼 문화계에서 역바이럴 마케팅은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며 “특히 아이돌 그룹은 품성과 외모 등에 대한 입소문에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그 피해가 더 클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카카오엔터 측은 “아이돌연구소에 각종 게시물을 올리고 관리하는 건 외주 대행사에서 했다”고 밝혔다. 역바이럴의 의도가 없었다는 것이다.
업계에선 이런 역바이럴 논란이 카카오가 금융, 게임, 웹툰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문어발 확장을 하면서 생긴 부작용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최근 여러 대형 연예 기획사를 인수하는 등 빠르게 사업을 키웠다. 2013년 16개였던 카카오 계열사는 지난 6월 기준 187개로 늘어났다. 이는 삼성, 현대차 등 대기업보다 많은 수준이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IP(지적재산권) 사업 강화에 집중 투자하고 있는 카카오엔터는 웹툰, 웹소설에 비해 음악 분야에서 성과가 약하다”며 “이 부분을 급하게 메우기 위해 역바이럴 같은 무리수를 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