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에 걸려오는 전화가 ‘굿 뉴스’일 가능성은 별로 없다. 그 시간에 전화해 “축하합니다, 복권 1등에 당첨되셨습니다”는 소식을 전할 리 없고, 옆집 윤후 아빠가 “한잔 어때?” 꾀는 일 또한 없을 것이다. 휴대폰 발신자 이름이 우리 편의점 직원인 경우는 더욱 그렇다.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지. “죄송합니다, 저도 코로나에 걸렸어요.” 저녁부터 목이 칼칼하더니 진단키트에 ‘두 줄’이 나왔단다. 죄송하긴, 몸조리 잘해라.

일러스트=김영석

우리 편의점엔 양대 계파가 존재한다. ‘걸린파’와 ‘안걸린파’. 안걸린파 쪽에서는 자신들의 계파 이름을 ‘수퍼유전자파’로 불러달라 요청하지만 걸린파 쪽에서는 어림없는 소리라며 의안 상정을 거부해왔고, 밤 11시에 걸려오는 전화는 안걸린파에 속해 있던 인물이 걸린파 쪽으로 소속을 옮긴다는 통보였다. 이로써 우리 편의점 다수파도 바뀌었다. 걸린파 3명, 안걸린파 2명.

한 명이 걸렸으니, 빈자리는 채워야 하지 않겠는가. 안걸린파의 일원으로, 당분간 아침 근무는 내가 맡기로 했다. 얼마만의 오전반인가. 게다가 이 얼마 만에 편의점 계산대 앞에 서는 것인가. 어쭙잖게 작가라는 직업을 겸하게 되면서 편의점 창고 안에서 글 쓰며 물건 정리하는 박쥐 생활을 한 지도 어언 2년. 편의점에 처음 출근하던 날 두근거리던 마음으로 다시 편의점 문을 열었다. 삼각김밥, 샌드위치, 햄버거 진열부터 시작했다. 시계는 새벽 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런데 어라? 워낙 오랜만에 진열하다 보니 위치가 헷갈린다. 삼각김밥 윗단이 샌드위치였던가, 샌드위치 아래는 햄버거였던가? 도시락 위치는 여기가 맞겠지? 뒤죽박죽, 일단 내 맘대로 진열했다. 찜기에 호빵 채워 넣고, 군고구마 통에 통통한 고구마 녀석들을 일렬로 눕혀놓고, 커피머신에서 아메리카노 한잔 내려받아 나름대로 호젓한 시간을 보내고 있으려니 손님 한 분이 들어와 묻는다. “새로 오신 분인가 보네요?” 네, 새로 왔습니다!

돌아보면 10년 전 편의점을 처음 열었던 날 아침,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였다. 물건 값이 비싸다는 편견 때문에 평소 편의점은 거들떠보지도 않던 사람이 편의점을 차렸으니 이게 뭐가 뭔지 알 수 있어야지. POS(금전출납기)는 어떻게 다루며, 상품은 어떻게 진열하며, 그러면서 발주와 검수는 어떻게 하는 것이며, 손님 클레임까지 혼자 처리하느라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 분명 예비 점주 교육을 받았는데도 머릿속은 새까매졌다. 게다가 담배 종류는 뭐가 그리 많은지, 손님이 담배 이름 말하면 ‘윌리를 찾아라’를 펼쳐 들고 윌리를 찾아 헤매는 어린아이처럼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깄잖아요, 저기!” 있긴 어딨다는 건지.

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발이 퉁퉁 부어있었다. 이제 와 웃으며 고백하는 거지만 차가운 물에 발 담그고 냉찜질하면서 엉엉 울었던 날도 있다. 내가 어쩌다 편의점을 차려 가지고, 엉엉. 1년쯤 지나니 10시간 정도는 거뜬히 서 있을 수 있는 강철 발바닥이 되었다. 다른 건 몰라도 한자리에 서서 버티는 것 하나는 자신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래, 앞으로 인생도 이렇게 버티며 살아가면 되는 거야! 오랜만에 홀로 편의점을 지키고 있으려니 갑자기 현자라도 된 모양이다.

편의점 손님은 언제나 그 손님이 그 손님이라 생각하시겠지만 아침에 만날 수 있는 손님이 있고 저녁에만 만날 수 있는 손님이 있다. 1600원짜리 사이다를 사면서 만원짜리 한 장을 내미는 미화원 아주머니. “잔돈이 없네요. 미안해서 어쩌나.” 그게 무에 미안할 일인가. 애틋한 마음에 감동하며 거스름돈 건네는데, 생각해보니 2년 전에도 같은 모습이었다. 호빵 시즌 시작하면 늘 단팥 호빵에 따뜻한 두유 하나 가방에 담아 출근하던 남자 손님도 그대로고, 아침 8시에 참치마요 삼각김밥을 사러 오던 여자 손님도 여전히 그 시간이며, 자정 무렵 출근해 밤새 빵 만들고 오전에 퇴근한다는 제빵사 손님도 2년 만에 다시 얼굴을 본다. “와, 아저씨, 그동안 어디 계셨던 거예요? 더 젊어지셨네?” ‘원래 젊었습니다’라는 내 썰렁한 농담도 2년 새 변한 게 없다.

시간을 거슬러 20여 년 전, 어머니랑 술집을 운영했던 적이 있다. 내가 다닌 대학 앞에 차린 주점이라 선후배들이 권하는 잔을 받다 보면 마감 무렵엔 항상 절반쯤 취해 있었는데, 어느 날은 어머니가 “앞으로 장은 네가 봐라” 하셨다. 다음 날 식재료 사러 새벽 시장에 나갔더니 거기에는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허연 입김 내뿜으며 장사치들 틈에 끼어 물건 고르고 가격 깎고 거친 농담 몇 마디 주고받다 보면,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 각성의 공간이 스르르 열린다. 어머니가 장을 보란 이유도 거기 있었겠지. 첫차를 기다리는 뿌듯한 마음은 겪어본 사람만 알리라.

아침에 만나는 얼굴들이 있다. 새벽을 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제 손수 운전하다 보니 첫차를 기다리는 시간은 비록 없지만, 언제나 그 다짐을 잊지 않으려 한다. “몸 상태는 좀 어때?” 코로나 앓는 직원은 견딜 만하다고 했다. “저 때문에 미안합니다.” “아냐, 그런 말 말고 일주일 후에 건강하게 돌아와. 덕분에 아침에만 만날 수 있는 손님들을 만날 수 있어 좋아.” 오늘 햇살, 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