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대형 마트에서 고객이 우유를 고르는 모습. 최근 우유 값이 고공 행진을 하며 빵·치즈 등 우유가 들어가는 식료품 가격까지 오를 조짐을 보이고 있다. /고운호 기자

“발에 차일 정도로 남아도는 게 흰 우유인데, 제 발목을 잡을 거라고 생각도 못했습니다.”

서울 성동구에서 10평 크기 카페를 운영하는 김석진(42)씨는 다음 달부터 코코아와 따뜻한 우유를 매장 메뉴에서 뺄 생각이다. 최근 우유 가격이 너무 오른 탓이다. 매일 1리터 우유를 20개 넘게 사용하는데, 우유가 들어가는 메뉴를 줄이지 않을 경우 2~3개월 안에 적자가 날 지경이다. 김씨는 “우유값 상승이 계속되면 내년엔 생강차, 유자차라도 팔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코로나로 손님이 없었을 때 못지않게 힘든 상황”이라고 했다.

우유값이 로켓처럼 치솟고 있다. 우유 한 팩(1리터)의 소비자 가격이 지난해 200원, 올해 500원 가까이 올라 사상 처음 3000원을 넘을 전망이다. 최근의 가파른 우유 가격 상승은 단순히 일반 가정에서 우유를 사 마시기 부담스러워지는 문제에서 그치지 않는다. 빵·아이스크림·커피·치즈·버터 등 우유가 들어가는 식료품의 물가까지 연쇄적으로 높아지는 ‘밀크플레이션’(밀크+인플레이션)을 촉발할 수 있다. 최근 마트에서 흰 우유의 급등한 가격을 접한 소비자들은 “뉴스에선 우유 소비가 크게 줄어 우유가 남는다고 하던데 왜 가격은 오르는 거냐”며 불만을 터뜨린다. 도대체 한국 우유는 왜 비싼 걸까.

◇原油보다 무서운 原乳 가격

한국에서 일어나는 우유값 상승의 미스터리를 이해하려면 목장에서 생산되는 원유(原乳)의 가격이 결정되는 구조를 들여다봐야 한다. 한국의 경우 원유 가격이 시장보다는 정부 정책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 보통 제품이 안 팔리면 싸게 파는 게 정상인데 정부가 우유를 산업 보호 차원에서 쌀처럼 매년 매입 가격을 올려주다 보니 원유로 만든 우유, 유제품 가격이 떨어지지 않고 오르는 기현상이 발생하는 것. 정부는 낙농업계의 안정적 생산을 위해 생산비, 물가 상승률에 연동해 원유 가격을 올리고 있다. 한 번 가격이 정해지면 시장 수요와 상관없이 1년 동안 같은 가격이 유지된다. 이는 지난 2013년 구제역 파동으로 낙농가와 우유 가공업체가 큰 피해를 보자 도입한 방식이다.

정부가 원유 가격을 보전해주는 이유는 우유 시장이 다른 산업과 달리 수요 변화에 따라 공급을 늘리거나 줄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젖소에서 얻는 원유는 기계처럼 수급을 늘렸다가 줄이기가 힘들다. 새끼 소가 태어나 우유를 생산할 수 있게 되기까지 2년이 걸린다. 또 젖소는 한 번 우유를 짜기 시작하면 1년 365일 같은 양을 짜야 한다. 매일 젖을 짜지 않으면 소가 병에 걸려 더 큰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우리 농가의 낮은 우유 생산 경쟁력도 문제다. 한국 농가는 미국, 유럽에 비해 영세하기 때문에 원유 생산 단가가 높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한국 원유 가격은 72% 상승했다. 같은 기간 미국과 유럽의 원유 가격 상승률은 10%대였다. 한국의 1리터당 우유 소비자 가격(2710원)은 미국의 5배, 독일의 4배 수준이다. 젖소 사료의 95%를 수입에 의존하는 점도 우유값을 비싸게 만드는 요인. 한 우유업체 관계자는 “비싼 가격에도 기업들이 농가로부터 일정량의 원유를 계속 사주기 때문에 농가 입장에서는 굳이 생산비를 낮추려는 개선을 하지 않는다”며 “우유 가격이 정상화되기 어려운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중간 마진이 지나치게 많이 붙는 불투명한 유통 구조도 우유값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지난해 국내 원유는 리터당 21원이 올랐는데 마트에서 소비자들이 구입하는 우유 제품의 소매 가격은 200원가량 올랐다. 원유 상승폭의 10배다. 국내 우유업체들은 정확한 우유 가격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데 통상 우유값의 30~40%가 유통 마진인 것으로 추정된다. 유통 업계 관계자는 “한국 우유의 유통 마진은 일본의 2배 수준”이라며 “어떤 식으로든 우유 가격 상승의 피해는 소비자들이 떠안고 있는 구조”라고 했다.

◇뿔난 소비자 ‘반값우유’ 찾는다

국내 우유 가격이 오르면서 소비자들은 저렴한 수입 멸균 우유로 눈을 돌리고 있다. 대규모 젖소 목장을 운영하는 폴란드·호주 등에서 수입하는 이들 우유는 리터당 가격이 1000~1300원으로 국내산의 절반 정도다. 1인당 연간 우유 소비량(32kg·지난해 기준)을 감안하면 수입 우유로 바꿀 경우 1년 동안 15만원(4인 가구 기준)가량의 우유 구입 비용을 아낄 수 있다. 상대적으로 긴 유통기한도 수입 우유의 강점. 수입산 멸균 우유는 고온에서 멸균 처리해 6개월에서 최대 1년까지 보관할 수 있다. 국내 업체들이 판매하는 일반 살균 우유는 열처리 강도가 낮아 병을 일으키는 미생물만 없애지만 멸균 우유는 모든 균을 없애 상온 유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수입 우유가 영양분이나 맛에서 국내산 우유와 거의 차이가 없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찾는 사람도 크게 늘고 있다. 올 상반기 멸균 우유 수입량은 1만4000여톤으로 전년 동기 대비 57% 증가했다. 한 대형 마트 관계자는 “폴란드처럼 먼 나라에서 운송료를 내고 수입한 우유를 1000원에 살 수 있다는 건 역설적으로 한국 우유 산업이 그동안 소비자들에게 바가지를 씌웠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라며 “소고기는 ‘한우’라는 프리미엄이라도 있지만 국산 흰 우유는 해외 멸균 우유와 비교해 다른 이점이 없는데도 가격을 낮추지 않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해결 방법은 없을까. 정부는 우유값 안정을 위해 우유를 용도에 따라 판매가격을 다르게 정하는 차등 가격제 시행을 추진하고 있다. 마시는 음용유(흰 우유)와 가공유(치즈·버터 등 생산에 쓰이는 우유) 가격을 다르게 책정해 음용유의 가격 인상을 막겠다는 것. 여기에 원유 과잉 생산이 심각할 경우 원유 가격을 낮추는 방안도 추진된다. 하지만 원유 판매 수입 감소를 우려한 낙농가에서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 실제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한 대학 교수는 “우유 가격을 현실화하려면 생산, 유통 단계에서 거품을 거둬내는 게 우선”이라며 “농가에선 젖소를 전문으로 키우는 육성우 전문 목장을 공동으로 운영해 생산 비용을 줄이고, 우유업체는 출고가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등 왜곡된 유통 구조 개선에 앞장서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