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이와 송강이는 풍산개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 때 북한이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선물로 주면서 우리나라에 오게 됐다. 이후 청와대에서 살게 된 곰이와 송강이는 자손도 많이 낳고 ‘문재인 달력’에 모델로도 나서는 등 대통령 반려견으로서 충실한 나날을 보내왔다. 문 전 대통령 퇴임 후에는 신구 대통령 간 구두 양해하에 문 전 대통령의 사저에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달 초 문 전 대통령이 갑작스레 곰이와 송강이를 데려가라고 대통령기록관에 통보하면서 사달이 났다.
알고 보니 곰이와 송강이 사육비 문제로 전·현직 대통령 간 갈등이 있었던 것이다. 문 전 대통령 측은 자신의 퇴임 전 대통령실과 대통령기록관 간에 양해됐던 월 약 250만원의 사육비가 지급될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고, 현 대통령 측에서는 사료나 의료비에 더해 월 약 200만원 상당의 사육사 비용까지 국민 세금으로 지급하는 것에 유보적이었던 모양이다.
이 문제는 로이터통신을 통해 전 세계로 타전된 뒤, 워싱턴포스트, CNN 등 해외 유력 매체들도 별도 기사로 다루며 세계적 관심을 끌었다. 대통령이 재임 중 선물로 받은 반려견은 퇴임 후 사저로 이동하여 여생을 함께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문화로 자리 잡은 구미의 관점에서는 퇴임 대통령이 사저로 데려갔던 반려견을 반납한다는 것이 희한한 일로 비칠 법했다.
그렇다면 정말 문제의 원인은 ‘돈’인가? 설마 매월 1400만원 가까운 돈을 연금으로 받는 전직 대통령이 돈이 없어 4년간 정들었던 반려견들을 반납한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원인을 한번 꼼꼼히 따져보고자 관련 법령을 찾아봤다.
현행 법령상 곰이와 송강이는 ‘대통령 선물’로서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이하 관리법) 3조에 따라 소유권이 국가에 있다. 그러니 곰이와 송강이에 대한 소유권이 원래 자기에게 없고, 자신은 위탁 관리를 했던 것일 뿐이니 이제 원래 소유권자(대통령 기록관)에게 돌려보내겠다는 문 전 대통령의 항변이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물론 현행 ‘관리법’ 시행령 제6조의 3, 2항에 대통령 선물 중 동식물의 경우, 다른 기관(문 전 대통령실)에 “이관하여 관리하게 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으니 그냥 문 전 대통령이 계속 키워도 된다는 현 대통령실의 반박 또한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 시행령 조항은 엄밀히 말하면 모법의 위임이 불명확하다. 시행령 규정은 모법으로부터 구체적인 위임이 필요한데, 모법인 ‘관리법’ 제2조 제1호의 2다목에는 아무런 위임이 없다.
사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에 대통령 선물 조항이 들어간 것 자체가 다소 엉뚱하다. 관리법은 문서와 음성 형태의 대통령 기록물을 어떻게 지정, 해제, 관리하느냐를 다룬다. 거기에 난데없이 2010년 대통령 선물 규정이 추가된 것이다.
공직자가 외국으로부터 받는 선물에 대해서는 이미 공직자윤리법과 시행령에 자세한 규정이 있다. 미화 100달러 이상 선물은 즉시 소속 기관에 신고하고 인도해야 한다(신고와 인도 의무). 인도된 선물은 보존 가치가 있으면 보존하고, 아니면 조달청에 넘겨 감정가로 판매한다(보존 혹은 판매 원칙). 이 경우, 원래 선물을 받은 사람은 우선구매권을 갖는다.
공직자가 외국으로부터 받은 선물에 대한 신고와 인도 의무, 보존 혹은 판매라는 원칙은 다른 나라들 역시 매한가지다. 미국의 경우,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연방공무원은 선물 가액이 415달러(약 55만원)를 초과하면, 정부에 인도해야 한다. 하지만 당초 선물을 받은 공무원은 감정가를 치르고 구매할 수 있다. 영국의 경우, 15파운드(약 2만3천원) 이상 선물은 신고 대상이며, 75파운드(약 12만원) 이하인 경우, 본인이 무상 소유할 수 있고, 75파운드 초과면 유상 구매할 수 있다. 호주도 마찬가지다. 750호주달러(약 66만원)를 초과하는 선물은 신고 대상이지만, 공정가로 구매 가능하다.
만약 2010년 대통령기록물관리법에 ‘대통령 선물’ 항목을 신설하여 소유권을 모두 국가에 귀속시킨다고 못 박지 않았다면, 곰이와 송강이 문제 역시 이렇게 갈등으로 비화될 일이 없었다. 문 전 대통령이 감정가를 지불하고 입양한 후에 자비로 잘 키우면 될 일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에 대통령 선물은 공직자윤리법을 준용하되, 영구 보존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한해 대통령기록관에서 관리한다는 조항을 추가하면 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이미 곰이와 송강이를 “입양하는 것이야말로 애초에 내가 가장 원했던 바”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차제에 생뚱맞은 대통령 선물 조항을 수정해서 문 전 대통령이 곰이와 송강이를 입양할 수 있게 해주자.
이 문제는 여야 간 정쟁이 아니라 곰이와 송강이의 눈높이에서 생각해줘야 한다. 곰이와 송강이는 말이 대통령 선물이지, 문서도 음성 자료도 아닌 생물이다. 엄연히 감수성과 애착심을 갖고 있으며, 수명이 정해져 있는 생물을 대통령 기록물 취급을 한 것부터가 잘못이다.
지금 곰이와 송강이에게 가장 좋은 선택은 이미 4년간 함께 생활하여 유대가 형성된 문 전 대통령 내외에게 돌려보내 거기서 여생을 보내도록 하는 것이다. 입양이 허용된다면 더 이상 구구절절 비용 문제가 제기될 여지도 없다. 이것이 졸지에 고아가 된 풍산개 커플에게 보금자리를 되찾아주는 최적의 해법이 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