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근본주의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원래 아랍권에서도 복장 규제가 센 편이었습니다. 그러나 2017년 무함마드 빈 살만이 왕세자가 된 후, ‘온건한 이슬람’을 지향하며 복장 규제들을 풀기 시작했습니다. 여성들은 검은색 긴 아바야를 벗을 수 있었고요. 이웃나라 이란에서 히잡 시위가 발생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입니다.
왕세자가 말했다고 분위기가 바로 바뀌진 않겠지요? 빈 살만 왕세자는 스스로 현대와 전통을 오가는 패션을 선보입니다. 그의 패션 중 가장 먼저 화제가 됐던 사진입니다.
2019년 사우디 리야드에서 열린 전기차 레이싱 대회 ‘포뮬러 E 행사장’에서 입은 옷입니다. 흰색 토브와 붉은 체크 슈마그, 검은색 이칼까지는 전통 의상으로 챙겨 입었지만 그 위에는 영국 브랜드 바버의 남색 재킷을 걸치고, 톰포드 에비에이터 선글라스를 쓴 다음, 검은색 아디다스 이지부스트 350 운동화를 착용했습니다.
이렇게 검은색 토브 위에 조끼를 걸치기도 하고요.
이건 지난해 사우디 국부펀드 이사회에서 의장 자격으로 참석한 빈 살만이 입은 프랑스 캐시미어 브랜드 ‘프랭크 나마니’의 조끼입니다. 이 조끼는 ‘왕세자의 조끼’로 불리며 아랍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했다고 하는데요. 그가 입은 제품은 2020~2021 가을⋅겨울 컬렉션 모델로 6551달러(약887만원)입니다. 카멜색 겉면과 밝은 청록색 안감이 주는 독특한 배색이 특징입니다.
흰색 토브 밑에 버켄스탁으로 보이는 슬리퍼를 신기도 합니다.
최근 방한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만났을 때도 보면 흰색 토브와 카멜색 미실라 사이로 회색 정장 재킷이 보이지요?
총리에 오르기 전 그는 조금 더 현대적으로 입었는데요.
2016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마크 저크버그 페이스북 창업자를 만났을 때는 청바지와 흰색 셔츠, 캐주얼 회색 재킷으로 ‘실리콘밸리룩’처럼 입었고요. 참고로 저크버그가 84년생으로, 빈 살만보다 1살 형입니다.
반면, 조금 더 보수적인 미국 시애틀 마이크로소프트 본사를 방문해 빌 게이츠 창업자를 만났을 때는 정장에 붉은색 넥타이를 착용했습니다.
이렇게 편한 차림으로도 활동합니다.
최근 총리에 오른 이후에는 전통 의상을 갖춰 입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래도 한 나라의 정상으로 회담에 참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최근 카타르 월드컵 개막식에서는 이렇게 흰색 토브와 미색 미실라를 입었고요.
개막전 경기에서는 미실라를 벗고 빨간색 축구 응원 수건을 목에 걸쳤죠.
경향적으로는 군주로서 참석할 때는 전통 의상을, 기업인으로 활동할 때는 현대 복장을 즐겨 입습니다. 최근 방한 중 가진 롯데호텔 기업인 차담회에서는 미실라를 벗고, 재킷을 입었었지요.
사진을 보면 오른쪽 토브를 입고 있는 사우디 관계자들과, 정장을 입고 있는 왼쪽 국내 기업 총수들 사이에서 양쪽 패션을 적절히 혼합해 입은 듯하지요?
누군가는 “정치인이 옷 입는 것이 왜 중요하느냐?”고 물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빈 살만은 2018년 “여성은 자신의 옷을 스스로 선택할 자유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빈 살만의 TPO(시간·장소·경우)에 맞는 패션이 주목 받는 건 이 때문입니다. 전 세계 누구나 자신의 옷을 스스로 선택할 자유를 갖게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