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에 사는 버네사 챈씨에게는 한국인을 구별하는 마법의 단어가 있다. 바로 감탄사 ‘아이구(aigoo)’다. 평소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다는 버네사씨는 “유튜브에서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을 보고 ‘아이구’란 단어를 처음 알게 됐다”며 “한국인을 구별할 수 있는 고유한 소리 중 하나가 ‘아이구’란 감탄사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란 유학생 니우샤(28)씨도 마찬가지. “처음 유학 와서는 한국, 일본, 중국 사람을 구분하는 게 어려웠다. 잘 들어보니 한국 사람들은 많은 상황에서 ‘아이고’란 말을 쓰더라”고 했다.
K 콘텐츠 열풍에 힘입어 ‘아이고’가 ‘K 감탄사’로 떠오르고 있다. ‘오징어 게임’ ‘종이의 집’ 등 넷플릭스를 통한 한국 콘텐츠가 전 세계로 퍼지면서 이 감탄사에 대한 관심이 더 커졌다. 미국의 지식 공유 플랫폼인 쿼라(quora)에는 이런 질문도 등장했다. “한국인들은 정말 실제로 ‘아이구(aigoo)’란 말을 쓰나요?” “한국어의 아이구(aigoo)는 도대체 무슨 뜻인가요?”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제대로 하기는 쉽지 않다. ‘아이고’라는 세 글자 안에 걱정, 두려움, 좌절, 놀라움, 기쁨 등 모든 게 들어있기 때문이다. 표준대국어사전에 따르면 ‘아이고’는 여러 감정을 나타내는 감탄사로 설명된다. ‘아프거나 힘들거나 놀라거나 원통하거나 기막힐 때 내는 소리’, ‘반갑거나 좋을 때 내는 소리’, ‘절망하거나 좌절하거나 탄식할 때 내는 소리’, ‘상중에 곡하는 소리’. 이 모든 뜻이 ‘아이고’에 해당된다. 단순히 ‘oh, my’ ‘geez’ 등의 영어 감탄사로 번역되기 어려운 이유다. ‘아이구’는 이 ‘아이고’보다 더 구어체적인 표현이라, 드라마에서는 ‘아이구’가 더 자주 들리는 것으로 보인다.
10년 이상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쳐 온 박미향 강사는 “‘아이고'는 상황이나 용례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번역하기 어렵다”며 “문화마다 고유의 감탄사들이 있는데, 그게 한국어에서는 ‘아이고’인 셈이다. 실제 한국어와 문화에 익숙해진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아이고’란 말을 쓰더라”고 했다.
이런 점 때문에 영화 ‘기생충’ ‘헤어질 결심’ 등을 번역한 달시 파켓은 가장 번역하기 어려운 한국어 중 하나로 ‘아이고’를 꼽기도 했다. 파켓은 과거 한 방송에서 “한국어에서 ‘아이고’란 말이 되게 자주 나오는데 이걸 ‘오 마이(oh, my)’로 번역하면 너무 할머니들이 하는 말처럼 된다”며 “젊은 사람들이 ‘아이고’라고 하면 번역하기가 너무 어렵다”고 했다.
이런 점을 살려 ‘아이구’를 아예 소리 나는 대로 ‘aigoo’라고 번역하는 경우도 있다. 과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증언집을 영어로 옮길 때 할머니들 고유의 탄식을 살리기 위해 “아이구”를 “aigoo”로 옮겼다. 남태평양 ‘팔라우’섬에는 ‘아이고 다리’가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 강제 징용으로 끌려온 한국인들이 “아이고, 아이고” 하며 다리를 지었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다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