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복도를 걸으며 눈이 어둠에 익숙해질 때쯤, 반가사유상 두 점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른발을 왼 무릎에 가볍게 얹고 오른손을 살짝 뺨에 갖다 댄 채 보일 듯 말 듯 미소 지으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보고 또 봐도 물리지 않는지, 관람객들은 자리를 뜰 줄 몰랐다. 소셜미디어엔 “불멍, 물멍보다 나은 게 반가사유상멍” “관람하러 왔다가 치유받고 간다” “1400년을 견딘 반가사유상의 미소를 보고 평온을 찾았다”는 후기가 연일 올라온다.
삼국시대를 대표하는 국보 반가사유상 두 점이 나란히 전시된 국립중앙박물관(이하 국박) ‘사유의 방’이 오픈 1년 만에 누적 관람객 66만명(11월 23일 기준)을 돌파했다. 2006~2007년 ‘루브르박물관전’을 뛰어넘은 국박 최고 흥행 기록이다. ‘사유의 방’은 국박이 전시 공간을 위해 건축가(최욱)와 협업한 첫 사례. 건축뿐 아니라 브랜딩, 미디어아트, 다큐멘터리 제작 등 다양한 분야의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이 중 ‘사유의 방’이란 이름을 지은 김아린(45) 비마이게스트(BE MY GUEST) 대표는 국내 손꼽히는 브랜딩 전문가다.
김 대표는 신세계 SSG 푸드마켓(2012년), 아모레퍼시픽 설화수 플래그십 공간 프로그램(2015년), 남양유업 1964 백미당(2016년), 오설록 북촌(2021년) 등 굵직한 브랜드 컨설팅을 90건 넘게 진행했다. 그중에서도 사유의 방 브랜딩은 특별한 의미인 듯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박물관에서 제일 중요한 보물을 선보이는 공간에 저희가 제안한 이름(사유의 방)이 사용되다니, 진짜 ‘가문의 영광’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브랜딩의 핵심은 ‘이야기’
-‘사유의 방’ 프로젝트에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공간 설계를 맡은 최욱 원오원 아키텍츠 소장이 박물관 측에 우리를 추천했다. 최 소장과는 여러 프로젝트를 함께했던 사이다.”
-정부 기관의 브랜드 컨설팅은 흔치 않은데.
“관장님(민병찬 전 관장)과 학예연구사들에게 ‘새롭게 해보자’는 의지가 있었던 것 같다. ‘저희가 박물관의 눈으로 박물관 취향에 맞춰서 제안하는 건 의미 없는 일이 될 거다. 박물관 안에 더 잘 알고 잘하는 분들이 많지 않으냐. 반가사유상이 하나의 ‘브랜드’라면 우리가 어떻게 할까라는 마음으로 접근해 보겠다’고 말씀드렸다. 박물관 측이 흔쾌히 받아주셨다.”
-정말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할 정도의 프로젝트였나.
“파리 루브르박물관을 찾는 관람객의 70~80%가 모나리자를 보러 온다고 한다. 아이콘(상징물)이 있으면 한 번 더 방문하게 되고, 의미 있는 공간으로 기억에 남게 하는 요소가 된다.”
-브랜딩이란 무엇인가.
“물건이 세상에 나가서 팔리려면 이름부터 분위기, 디자인, 공간과 공간 안에서의 경험까지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걸 아우르는 작업이 브랜딩이다.”
-브랜딩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뭘까.
“이야기다. 브랜드마다 가지고 있는 스토리가 있다. 남보다 잘났다고 자랑하는 게 아니라, 남과 다를 수밖에 없는 브랜드만의 내력(來歷)이 바로 스토리이고 차별화 포인트가 된다. 이걸 논리적으로 연결하면 브랜드 철학이 된다. 거기에 맞게 물건이 디자인·포장되고 매장이 설계되고 인테리어가 이뤄져야 감동을 전할 수 있다. 이런 큰 구도를 만드는 게 내가 생각하는 브랜딩이다.”
-브랜딩 하면 ‘예쁘게 꾸미는 것’으로 흔히 여겨진다.
“예쁘다는 기준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 브랜드의 척추와 같은 철학은 영원하다.”
-’브랜드로서의 반가사유상’은 어떤 스토리를 품고 있었나.
“‘사유’와 ‘여정’이었다. 인간은 사유하는 동물이고, 인간이 존재하는 한 사유하는 형상은 중요한 가치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또 관람객들이 ‘사유의 방’에서는 단순히 반가사유상을 보고 떠나는 게 아니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깊은 생각에 빠져 사유하는, 하나의 여정을 경험하게 된다. 이 두 개념을 함께 가져가야 한다고 판단했다.”
-입구에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사유의 방’이 관람객에게 제공하는 건 시간,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일반 기업 브랜딩과 비교해 ‘사유의 방’은 더 쉬웠나, 힘들었나.
“매우 힘들었다. 주제 자체가 일반 소비재와 비교해 훨씬 무거운 데다, 공부를 많이 해야 했다. 싯다르타부터 시작해서 불교 역사, 철학, 미술 등 반가사유상에 깃든 깊은 이야기들을 이해해야 스토리를 풀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다 아는 상태로 시작하자’는 생각에 국박, 정독도서관 등에서 구할 수 있는 자료는 다 인쇄해서 최대한 읽었다. 여기에다 ‘모나리자가 뭐길래 사람들이 그렇게 모나리자 모나리자 그러나’도 조사했다.”
-반가사유상 미니어처도 인기다.
“굿즈(기념품)는 이전에도 있었는데 ‘사유의 방’과 함께 더 인기를 얻었다.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사유의 방 안에서 가야금 산조 공연, 명상 클래스 등 다양한 행사도 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앞으로는 가능할 것 같다. 루브르는 숙박 공유 서비스 ‘에어비앤비’와 함께 모나리자 전시실에서 하룻밤 자는 데 얼마 이런 식으로 이벤트를 벌이기도 하고, 패션 브랜드 ‘유니클로’와 협업해 모나리자가 그려진 티셔츠를 만들기도 하는 등 별의별 시도를 다 해가며 모나리자를 아이콘으로 만들고 있다.”
◇한국을 해외에 브랜딩하고 싶다
김 대표는 미술과 요리를 공부했다. 브랜딩 전문가치고는 특이한 이력이다. 어머니 영향으로 예원학교를 거쳐 이화여대 조소과를 나와 프랑스 국립 요리 학교 페랑디(Ferrandi)에서 공부했다. 대학에서 사진이나 패션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기초 학문을 하지 않으면 학비를 대주지 않겠다”며 반대하는 아버지 때문에 순수미술을 선택했다. 그의 아버지는 프랑스 문학자이자 번역가인 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 어머니는 1세대 설치미술가 양주혜 작가다. 부모의 프랑스 유학 시절 태어난 김 대표를 4년 동안 키워준 외할머니는 한국 현대 여성 시인 1세대에 속하는 고(故) 홍윤숙씨다.
-요리 유학을 가게 된 계기도 아버지였다고.
“약간 방만하게 대학 생활을 하고 있었다(웃음). 아빠가 보기에 너무 나태해 보이고 안 되겠다 싶으셨나 보다. 외출 금지령을 내리고는 ‘문화기호학’ 같은 책 10권을 주면서 다 읽고 독후감과 앞으로의 진로 계획을 써내라고 했다.”
-책에서 요리라는 진로를 찾은 건가.
“아니다. 책들이 너무 재미없고 머리에도 안 들어왔다. 그런데 집에서 찬찬히 나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됐다. ‘나는 뭘 잘할까.’ 너무 어렸을 때부터 미술이라는 길에 들어와 대학까지 오다 보니 미술을 제일 잘한다고 생각했다. 집에서 끼니를 직접 해결하다 보니, 내가 요리도 잘한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아버지가 반대하진 않았나. 90년대 후반만 해도 요리 유학 가는 사람이 드물었는데.
“먹는 걸 좋아하셔서 그랬는지 뜻밖에도 찬성하셨다(웃음). 어머니는 새로운 도전이라며 응원했다. 아버지가 프랑스에 있는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을 찾아 다니며 식사한 후 이런 식당에서 일하려면 어느 학교를 나와야 하는지 알아봐 주셨다. 그때 모든 셰프들이 말했던 학교가 페랑디였다.”
-페랑디는 입학도 졸업도 매우 힘든 요리 학교로 알려져 있다.
“10년 이상 직업 경력 있는 셰프들만 들어갈 수 있는 학교였다. 대학 졸업을 경력으로 인정받고 요리사 자격증을 따 힘들게 입학했다.”
-어렵게 입학했는데 전공을 연회 기획&경영으로 바꿨다.
“들어가 보니 너무 늦게 시작한 거였다. 16살에 벌써 주방 경력이 2, 3년씩 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안 되겠다 싶어 비즈니스를 접목한 연회 기획&경영으로 전공을 바꿨다. 졸업 후 뉴욕과 파리 케이터링 업체에서 일하다 한국에 돌아와 2004년 비마이게스트를 차렸다.”
-한동안 레스토랑 컨설턴트로 더 유명했다.
“레스토랑 컨설팅도 기본은 브랜딩이다. 외식업에서 영역이 점차 확대된 거다. 18년 전 일을 시작할 때는 외식업 부흥기였고, 레스토랑 브랜딩·컨설팅 일이 많이 들어왔다. 뷰티·패션 등 브랜드 영역도 넓어졌다. 요즘은 레스토랑 컨설팅은 거의 안 한다. 레스토랑 주인들이 직접 할 수 있을 만큼 역량이 커졌다.”
-첫 히트작이 국내에 브런치를 유행시킨 레스토랑 ‘텔 미 어바웃 잇(Tell Me About It)’이라 레스토랑 컨설턴트로 알려진 듯하다.
“당시 레스토랑 대표는 다른 콘셉트를 고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국내에선 쉽지 않아 보여 브런치를 제안했다. 식당이 있었던 도산공원 뒤가 그때는 퀵서비스를 부르면 어딘지 설명해야 하는 외진 골목이었는데, 지금은 금싸라기 땅이 됐다.”
-앞으로 뭘 브랜딩하고 싶은가.
“한국을 외국에 파는 브랜딩. 얼마 전 현대 덴마크 디자인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꼽히는 ‘프라마(Frama)’와 협업해 디퓨저를 내놨다. 한국 소나무로 짠 길쭉한 상자에 황토와 숯으로 빚어 구운 작은 공을 가지런히 담았다. 상자를 열고 공에 한국의 숲에서 나는 냄새에서 영감받아 만든 ‘딥 포레스트(Deep Forest)’ 향수를 뿌리면 흡수됐다가 천천히 발산되는 디퓨저다. 한글을 쓰거나 하지 않아도 제품에서 한국적 감성이 느껴진다며 유럽에서 인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