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경기 후 일본 관중이 경기장을 청소하는 모습. /FIFA

‘아타리마에(あたりまえ·일본어로 ‘당연함, 예삿일’을 뜻함).’

미국·유럽 매체들이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일본 응원단과 축구 대표팀이 전문 청소부 수준으로 경기장을 정리하고 떠난 이유를 물을 때마다 일본인들이 공통적으로 한 대답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일본 팬들은 자국 축구 대표팀의 ‘사무라이 블루’를 상징하는 파란색 대형 비닐 봉지를 수백 개 준비해 응원 도구로 쓰고 경기 후엔 그 안에 쓰레기를 담았다. 일본 선수들은 사용한 로커룸을 말끔하게 비운 채 ‘감사하다’는 메모와 함께 접은 종이학을 두고 떠났다. 경기에 이겼을 때뿐 아니라 지고 나서도 마찬가지. 일본 대표팀 경기가 아닌 해외팀의 경기를 보러 간 경우에도 여지없이 경기장을 청소했다.

이 모습을 본 외신들은 ‘완벽한 손님’(미 ESPN), ‘스포츠 최고의 전통’(폭스스포츠)이라며 찬사를 쏟아냈다. 국내 축구 팬 사이에서도 ‘청소 하나만큼은 발롱도르(축구 최고 권위 상)감’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일본인들은 특별히 월드컵이어서가 아니라 평소처럼 똑같이 청소를 한 것일 뿐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일본인들은 왜 이토록 청소에 집착하는 걸까.

손걸레 들고 등교하는 日 초등생

일본인들의 청소 습관은 어려서부터 세뇌 교육에 가까울 정도의 엄격한 청소 교육에서 시작된다. 일본에선 초등학교 1학년부터 학생들에게 교실·화장실·복도 청소를 의무적으로 하도록 한다. 한국은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학부모가 학생 대신 학교를 청소한다. 우리처럼 ‘깨끗하게 해’라는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청소를 시키지도 않는다. 일본위생관리협회라는 정부 산하 단체가 제작한 청소 매뉴얼을 수업 시간에 가르치고 그 내용에 따르도록 한다. 청소 매뉴얼에는 5~6명씩 조를 이뤄 청소 영역을 나누는 기초적인 내용부터 빗자루를 드는 각도와 계단을 마대로 닦을 때의 발 위치 등 세세한 방법이 실려 있다. 이걸로도 모자라 초등학생 교과서에 10가지가 넘는 분리수거 방법을 싣고 시험 문제로도 낸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청소를 통해 학생들이 자립심을 키우고 함께 지내는 공간을 깨끗하게 써야 한다는 것을 깨닫도록 하려는 취지”라고 설명한다.

일본은 어릴 적 엄격한 교육 영향으로 대부분 국민이 결벽에 가까울 정도로 주변을 깨끗이 한다. 사진은 일본 초등학생들이 손걸레로 바닥을 닦는 모습. /이키다네

최근 3년간 국내 대기업의 일본 도쿄 주재원으로 근무한 장성우(47)씨는 “일본 초등학교에 다닌 아들은 개인 ‘조킨’(걸레)을 매일 들고 가 자신의 책상을 닦아야 했다”며 “일본 교사가 가정 방문 때 처음 한 말도 ‘아드님이 청소에 열심히 참여한다’였다”고 했다.

골목 안까지 깨끗한 일본의 청결함은 어려서부터 체화된 국민들의 청소 습관에 엄격한 사법 시스템이 더해지면서 완성됐다. 일본에선 쓰레기를 불법 투기하다 걸릴 경우 법인은 1억엔(약 9억5000만원), 일반 시민은 1000만엔(약 9500만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실제 부과된 사례는 많지 않지만, 쓰레기 투기에 엄격한 사회 분위기 덕에 많은 국민이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고 자기가 버린 쓰레기는 되가져가는 습관이 굳어진 것이다.

청소를 ‘도(道)’의 경지로 끌어올려

일본에서 모든 청소부는 정식 유니폼을 입는다. 그리고 관공서, 기업 건물에서 청소 일을 하려면 국가에서 발급하는 빌딩청소기능사라는 자격증을 따야 한다. 청소 하나를 해도 전문 지식을 갖추고 제대로 해야 한다는 의식이 강하게 뿌리내렸기 때문이다. 카펫에 묻은 얼룩을 지우는 데 알맞은 세제를 고르기 위해 대학교 수준의 기초화학을 공부할 것을 요구한다.

가정에서 따라할 수 있는 청소, 수납·정리 기술을 알려주는 도서도 매년 100권 이상 출간된다. 집집마다 청소 백과사전을 구비해두고 있는 셈. 일본하우스클리닝협회, 일본가사대행협회, 일본정리수납협회, 에어컨클리닝협회 등 청소 관련 교본을 내는 협회만 10여 곳에 이른다. 내용도 상세하다. 예를 들어 일본위생관리협회의 교본에는 물이 얼마나 묻어 있는지, 얼마나 더러운지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마대를 한쪽 손으로 만지면서 쓰도록 권장하고 있다.

일본에서 청소는 관광 상품으로 진화했다. 일본 초고속열차 신칸센이 도쿄역에 정차하면 청소 업체 ‘텟세이’ 직원들이 열차 내부를 청소한다. ‘7분의 기적’이라 불리는 이 청소 이벤트가 영국의 왕실 근위병 교대식처럼 도쿄의 관광 코스가 된 것이다. 20여 명이 한 조가 돼 1명당 100석의 먼지를 없애고 창문·바닥 선반을 닦고, 소독하고 승객에게 인사까지 하는 데 정확히 7분이 걸린다.

일본은 이제 우주 공간으로까지 청소 영역을 넓히고 있다. 지구 궤도에 떠다니는 위성, 로켓 잔해가 다른 위성에 위협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쓰레기들을 청소하는 분야에서 일본이 크게 앞서고 있는 것. 일본 위성 스타트업 아스트로스케일은 지난해 위성에 달린 거대한 자석을 이용해 우주 쓰레기를 수거하는 실험에 성공했다. 장부승 일본관서외국어대 교수는 “일본은 청소도 단순 기술을 넘어 이제는 ‘도(道)’의 경지로 끌어올리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타고난 국민성? 자기 검열 때문”

청소에 유독 집착하는 일본 사회 심리의 기저에는 메이와쿠(めいわく·민폐), 즉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행위를 극도로 꺼리는 문화가 있다. 일본에선 휴대용 재떨이 주머니를 들고 다니면서 본인이 담배를 피우고 나온 재를 수거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는 신분제가 엄격했던 전국 시대부터 자신에게 허락된 영역을 최대한 깔끔하게 유지하는 행위가 백성들이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과거 교토에선 쓰레기나 동물 사체가 집 문 앞에 버려져 방치돼 있으면 군주가 해당 집 주인의 목을 베었다는 일화도 있다.

휴대용 재떨이에 담뱃재를 떨구는 모습. /라쿠텐

일본의 이지메(집단 따돌림) 문화가 역설적으로 청결을 유지하게 한 동력이 됐다는 분석도 있다. 동네에서 나 혼자 집 앞을 청소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추운 새벽이라도 빗자루를 들고 나가 눈을 치운다는 것이다. 이창민 한국외대 교수(일본학과)는 “일본 가정집에 가보면 의외로 집 안은 지저분한 경우가 많은데 대문 앞처럼 남에게 보이는 곳만 열심히 청소하고 남이 안 보는 곳은 청소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일본 사람들이 월드컵에서 자국 응원석만 청소하고 경기장 전체를 하지 않는 걸 보면 (경기장 청소가) 선한 의지에서 시작된 자발적 봉사라기보다 외국인들의 시선을 의식한 자기검열에서 시작된 행동에 가깝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