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의사 수 늘려야 합니다.”
인터넷 커뮤니티 엠팍에는 걸핏하면 이런 글이 올라온다. 서울아산병원에서 간호사가 뇌출혈로 사망했을 때도 그랬고, 의대 연봉이 높다는 기사가 나왔을 때도,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의대 증원에 공감을 표할 때도 비슷한 글이 우후죽순 올라오곤 했다.
최근 의사 수를 늘리자는 글이 빗발치는 건 가천대병원 사태가 그 계기다. 상급 종합병원인 가천대 길병원이 내년 2월까지 소아청소년과(이하 소아과) 입원 진료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는데, 그 이유가 ‘의료진 부족’이었으니 말이다. 입원 환자를 돌보는 임무는 전공의 몫이지만, 길병원에서 동원 가능한 전공의는 1명이 전부. 이래선 입원 환자 진료가 불가능하다. 더 큰 문제는 이게 길병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 있다. 소아과는 소위 ‘기피과’다. 내년도 정원이 199명인데, 지원자는 단 33명, 지원율이 16.6%에 불과하다. 지원자 품귀 현상은 빅5 병원도 예외가 아니어서, 세브란스병원은 11명 모집에 아무도 지원하지 않았다. 이대로 가다간 당직을 설 전공의도 없어, 밤늦게 아이가 아파도 가지 못하는 세상이 올 수도 있다.
해결책을 찾으려면 왜 의사들이 소아과를 기피하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첫째 난관은, 누구나 다 예상하겠지만, 출산율 저하다. 요즘은 아이를 안 낳는 이가 많고, 아이가 있어봤자 하나가 고작이다. 다른 과라면 비급여 진료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지만, 소아과는 비급여라 할 만한 항목이 거의 없다. 그렇다고 저출산이 소아과를 기피하는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대한민국은 의료 과잉인 나라. 2021년 통계에 따르면 우리 국민 1명이 의사에게 외래 진료를 받은 횟수는 연간 17.2회다. 이 숫자는 OECD 평균(6.8회)의 2.5배로 OECD 1위다. 병원 접근성이 좋다 보니 가벼운 병에도 병원을 찾는다는 얘기다. 아이에 대한 부모 마음은 한층 더 각별해, 아이가 조금만 아파도 병원에 달려가곤 한다. 돈은 좀 덜 벌지라도 사명감을 가지고 소아과를 하겠다는 의사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런 의사에게 닥치는 둘째 난관은, 환자가 어려 의사 소통이 힘들고 진단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2013년, 태권도 대련 도중 배를 걷어차여 ‘횡격막 탈장’이 생긴 여덟 살 아이가 병원에 왔다. 아이는 배를 차였다는 얘기 대신 복통만 호소했기에, 의사는 별다른 검사를 하지 않은 채 그 나이대 아이에게 흔한 ‘변비’라고 치명적인 오진을 했다. 아이 일이라면 유달리 관심을 갖는 부모의 존재도 부담스럽다. 인터넷이나 맘 카페에서 얻은 정보로 무장한 그들은 의사의 실력을 늘 의심한다. “인터넷에는 그렇게 나와있지 않던데요?” “저 아래 병원에선 다르게 얘기하던데요.” 치료가 늦어지면 갑질을 당하기도 한다. “한 종합병원에서 A씨가 이 병원 소아청소년과 의사 B씨를 마구 때렸다. A씨는 생후 11개월 된 자기 딸이 구토 증세로 설 연휴 기간 B씨에게 진료를 받았음에도 설사가 계속되자, 처방에 문제가 있다며 B씨를 찾아가 폭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료를 잘 마쳐도 안심할 수 없다. 맘 카페는 사소한 점을 꼬투리 잡아 해당 병원을 매장할 수 있으니까. “A 병원, 의사가 좀 불친절한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그 병원 거른 지 오래됐습니다.” “그 의사 인성 유명한데, 모르셨나 봐요?” 이 정도 찍혔으면 문을 닫든지 해야 한다.
이것도 사명감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이런 이에게 찾아오는 셋째 난관은 법정에 서야 한다는 것. 위에서 말한 횡격막 탈장 얘기를 더 해보자. 차도가 없자 아이 부모는 다른 의사에게 아이를 데려갔지만, 거기서도 진단은 ‘변비’였다. 결국 아이는 사망했고, 의사들은 유가족에게 형사 고소당해 법정에 섰다. 결과는 어땠을까. “복부 통증으로 병원을 찾은 어린이를 오진해 사망하게 한 의료진에게 법원이 금고형의 실형을 선고했다. …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전모(42·여)씨에게 금고 1년 6개월, 송모(41·여)씨와 이모(36·남)씨에게 각각 금고 1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2017년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도 사명감을 떨어뜨린 이유였다. 신생아 중환자실 인큐베이터에 있던 미숙아 4명이 하루 동안 사망한 그 사건 때문에 조수진 교수를 비롯한 의료진 세 명이 구속됐다. 과실이 입증되지 않아 결국 무죄가 나왔지만, 이 사건의 여파는 컸다. 나무위키를 보자. “진료상 과실 혐의에 대해 형사 고발이 이루어진 것은 국내에서는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사건으로, 이후 2020년대부터 이어진 소아과 지원자의 급감에 큰 영향을 주었다.”
자, 사정이 이런데도 의사 수를 늘리는 게 소아과 의사를 충원하는 방법일까? 기피과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기에 사람들이 안 가는 것이라, 의사 수를 늘린다고 소아과를 하는 이가 별반 늘어날 것 같진 않다. 기피과에 가기보다는 일반의로 요양 병원이나 미용·성형에 뛰어드는 게 훨씬 나은 선택이니까. 더 무서운 일은 이게 소아과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다른 기피과, 즉 산부인과·흉부외과·외과 등등에서 비슷한 위기가 생기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를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전히 ‘의사 수 늘리자’는 분이 계실 테지만, 그건 정말 아니다. 기피과 수가 인상을 통해 큰 병원에서 해당 전공 교수를 더 많이 채용하게 하면 붕괴 시기를 더 늦출 수 있지만, 이건 미봉책에 불과하다. 그럼 진짜 해결책은 뭘까. 외국인 노동력을 빌려 3D 업종의 위기를 해결한 것처럼, 해외에서 의사를 모셔 와 기피과 위기를 해결하는 것이다. ‘어떻게 동남아 의사에게 내 생명을 맡기냐’고 할 분도 계시겠지만, 그런 마음은 버리시기 바란다. 우리나라 기피과의 열악한 상황에 질려 외국인도 안 오려 할지 모르는 판에, 무슨 사치인가. 한 가지 또 알아둬야 할 점이 있다. 이 모든 일이 다, 우리가 자초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