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이디와 트램프'의 두 주인공이 서로의 마음을 미트볼 스파게티로 확인하고 있다. 이 장면은 이후 수많은 패러디를 탄생시켰다.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스 모션 픽처스

1909년 미국 중서부의 한 마을에 코커스패니얼 강아지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입양된다. ‘레이디’라는 이름이 붙은 강아지는 ‘금쪽이’ 대접을 받으며 어여쁜 성견으로 성장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달라진 집안의 분위기를 알아차리고 당황한다. 아무도 자신에게 예전과 같은 관심을 쏟아주지 않는 것을 느끼고는 이웃집의 자크와 트러스티에게 털어 놓는다.

두 이웃 개가 레이디네 집에 아이가 생겼노라고 추측하는 가운데, 근처를 지나던 떠돌이 개 트램프가 우연히 대화에 끼어든다. 그는 경험에 바탕한 이야기라며 ‘아기가 생기면 개가 집을 나갈 차례’라고 말을 하다가 자크와 다툼을 하고 자리를 뜬다. 트램프의 이야기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레이디는 집사의 임신 기간 내내 투정을 부리지만, 막상 아이가 태어나자 다시 식구로서 환영받는다.

그렇게 레이디에게 태평스러운 나날이 다시 돌아왔지만 안타깝게도 오래가지는 못한다. 집사네 부부가 아기를 사라 숙모에게 맡기고 여행을 떠나는데, 숙모가 데려온 악독한 샴 고양이 쌍둥이가 말썽을 부리기 시작한다. 쌍둥이 고양이는 집사 부부가 키우는 새와 금붕어를 잡아먹으려 들고, 이를 말리려던 레이디가 모든 문제의 원인처럼 덤터기를 쓴다. 레이디는 사라 숙모에 의해 애견숍에 끌려가 입마개를 쓰는 처지가 되지만, 마지막 순간 도망쳐 안온한 마을과 이웃 개들의 세계로부터 일시적으로 이탈된다. 그러다가 험악한 들개들에게 둘러싸이게 되는데 어디에선가 트램프가 홀연히 나타나서는 혼자 맞서 싸워 레이디를 구해준다.

트램프는 레이디에게 안온한 마을과 이웃 개들 너머에 흥미진진한 세계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는, 늘 끼니를 신세지는 토니네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레이디를 데려간다. 평소라면 살점이 붙은 뼈다귀 정도를 주는 수준이었지만 레이디를 보자 토니는 트램프가 여자친구를 데리고 왔노라며 미트볼 스파게티를 차려준다. 예상치 못한 특별 메뉴를 맛있게 즐기는 사이에, 같은 가락의 스파게티를 먹다가 레이디와 트램프는 입을 맞춘다.

월드 디즈니의 1955년 만화영화 ‘레이디와 트램프’의 미트볼 스파게티 장면은 소위 ‘스파게티 키스’의 원조이다. 그렇다. 두 연인이 한 가닥의 스파게티를 먹다가 입을 맞추게 되는 장면이 바로 이 만화에서, 그것도 인간이 아닌 동물의 연기로 비롯된 것이다. 주체가 인간이 아니라 더 로맨틱하게 느껴지는 가운데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사실 이탈리아에서는 미트볼과 스파게티를 같이 먹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로 내가 번역한, 이탈리아 전통 레시피를 총망라한 요리책 <실버 스푼>에도 미트볼은 스파게티와 함께 등장하지 않는다. 대체로 외따로 먹고 토마토 소스와도 잘 짝짓지 않는다.

미트볼 스파게티는 미국식 이탈리아 음식이다. 1880년부터 1920년 사이에 무려 400만에 이르는 이탈리아인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이들 가운데 대략 85퍼센트는 시칠리아, 칼라브리아, 캄파냐 등 남부 이탈리아 출신이었다. 고향의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다 못해 이민을 떠난 이들은 미국의 생활 여건이 그래도 훨씬 낫다는 것을 발견한다. 고국에서 소득의 75%를 식비로 썼다면, 미국에서는 25%만 써도 훨씬 풍족하게 먹고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환경에 맞춰 고향의 음식을 발전시킨 가운데 남부 이탈리아의 미트볼 ‘폴펫(polpette)’이 자연스레 크기도 커지고 고기의 비중도 늘어나면서 토마토 소스 및 긴 면발의 스파게티와 짝을 이루게 되었다. 덕분에 오늘날 이탈리아 음식의 대명사처럼 오해받는 스파게티와 미트볼이 탄생했다. 이 밖에도 치킨 파르메르산, 알프레도 소스, 생선 수프인 치피노 등이 미국식 이탈리안 요리이다.

한편 미트볼 스파게티로 서로의 감정을 확인한 레이디와 트램프에게는 시련이 닥친다. 레이디는 말썽을 부린 대가로 사라 숙모에게 목줄이 채워져 뒷마당에서 천대받는 한편, 그를 만나러 온 트램프는 미등록 개라는 이유로 붙들려 안락사의 위기에 처한다. 그런 트램프를 자크와 트러스티가 쫓아가 구해오고, 곧 모든 오해가 풀려 레이디와 트램프는 네 마리의 강아지를 낳고 행복하게 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