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박해가 심해지던 1844년, 페레올 주교로부터 부제품을 받고 혈혈단신 육로를 통해 고국인 조선 땅 입국로 답사를 계획하던 청년 김대건에게 한 신자가 지도를 가리키며 “여기(의주 쪽)는 길이 아니지(없지) 않으냐?”고 만류하자 김대건은 이렇게 말한다. “길은, 걸어가면 뒤에 생기는 것입니다.” 한국인 최초로 로마 가톨릭교회 사제 서품을 받은 신부이자 조선 근대의 길을 연 김대건 안드레아의 삶을 그린 영화 ‘탄생’의 한 장면. 조선의 첫 사제가 되기 위한 한 청년의 모험이 숭고한 삶이 되어가는 여정은 종교를 초월해 묵직한 감동을 준다. ‘성지(聖地)’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난무하는 요즘, 크리스마스를 맞아 ‘진짜 성지’들을 찾아 나섰다. 영화 ‘탄생’ 속 김대건 신부의 발자취부터 ‘건축 성지’가 된 성당과 교회까지, 묵상을 위한 피정과 여행의 장소로 사랑받는 곳들을 ‘순례’했다.
◇영화 ‘탄생’ 속 성지는 지금
“종교와는 상관없이 ‘탄생’ 보고 영화 속 배경이 된 곳을 찾아 성지 순례 중입니다. 그중 영화에 가장 많이 등장했던 곳이 은이공소여서 이곳부터 와봤는데 경건한 분위기에 마음이 차분해지네요.”
지난 20일 경기도 용인시 남곡리 은이성지에서 만난 김단아(26)씨 커플은 눈 쌓인 성당 곳곳에 발자국을 찍으며 성지를 둘러봤다. 성물판매소 직원은 “신자들뿐 아니라 ‘탄생’ 관람 후 탐방을 목적으로 오는 이들이 꽤 늘었다”고 했다.
영화 ‘탄생’은 ‘은이공소’에서 출발해 새남터에서 끝을 맺는다. 은이(隱里)는 ‘숨어 있는 마을’이라는 뜻처럼 박해를 피해 천주교 신자들이 숨어 지내던 교우촌. 김대건 신부와도 인연이 깊다. 박해를 피해 고향인 충남 당진 솔뫼를 떠나 서울 청파동과 용인 한덕골을 거쳐 은이의 윗마을인 골배마실로 이주해 살던 청년 김대건은 열여섯 살 되던 해인 1836년 이곳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인 선교사 모방(Maubant) 신부와 만나 세례를 받고 신학생 후보가 된다. 이후 마카오로 떠나 신학 공부를 하다 1845년 사제가 되어 고국으로 돌아와 첫 사목 활동을 펼친 곳도, 1846년 9월 스물여섯 꽃다운 나이에 새남터에서 군문 효수형을 당해 순교하기 전 마지막 공식 미사를 봉헌한 곳도 은이공소였다.
지금의 은이성지는 2013년부터 조성하기 시작했다. 성지의 중심에는 김가항(金家港) 성당이 있다. 1845년 8월 17일 김대건 부제가 페레올 주교에게 사제품을 받았던 중국 상하이의 김가항 성당을 본떠 2016년 지은 성당이다. 2001년 도시개발계획으로 상하이에서 김가항 성당이 철거되기 전 정밀 실측을 진행하고, 철거 후 당시 성당의 주축이 됐던 기둥과 보, 이음새, 벽돌, 기와 등을 들여와 복원 작업에 활용했다. 단아한 성당 건물은 경건함에 앞서 고즈넉한 정취로 방문객들을 맞는다. 성당 오른편 김대건 기념관에는 김 신부의 친필 영문 편지, 밀입국 과정의 기록 등이 전시돼 있다.
은이성지 가까이엔 골배 마실 성지가, 차로 30분 거리 안성엔 미리내성지가 있다. 은이성지와 미리내성지는 ‘청년 김대건 길’로 이어져 있다. 김대건 신부가 박해의 위험 속에 밤마다 이른바 ‘삼덕고개’를 오가며 사목활동을 펼치던 10여㎞의 성지 순례 코스다.
◇박해받던 신자들이 화전 일구던 마을
미리내성지는 한 해에만 15만~20만명이 찾는 곳이다. 이곳 지철현 성지 전담 신부는 “30% 정도가 신자이거나 순례객이고, 60~70%가 일반 탐방객들”이라며 “종교를 초월해 스님 등 타종교인들도 찾는 곳”이라고 했다. 영화에는 미리내성지가 직접적으로 등장하진 않지만, 김대건 신부를 각별하게 대했던 신자 이민식(빈첸시오)이 눈물 흘리며 “유해는 우리가 따로 모시겠다”는 내용에 언급된다. 이민식은 김대건 신부 순교 40일 뒤 몰래 새남터에서 유해를 수습해 험한 산길로만 150여 리 걸어 자신의 종중 땅 한쪽에 모신다.
미리내성지는 박해 속 천주교 신자들이 숨어들어 옹기를 굽고 화전을 일구어 살던 곳으로 밤이면 불빛이 은하수처럼 보여 미리내(은하수의 우리말)라 불렸다고 전해진다. 병오박해 때 김대건 신부의 유해가 안장되면서 천주교 역사에서 더욱 의미 있는 장소로 거듭났다.
성지 초입에서 가장 위쪽 산 자락으로 올라가면 1928년에 세운 ‘김대건 신부 기념 성당 및 묘소’가 나온다. 눈 맞은 나무가 둘러친 자그마한 성당 앞엔 김대건 신부, 페레올 주교의 묘를 비롯해 김대건의 어머니, 이민식의 묘가 서로 멀지 않은 거리에 자리 잡고 있다. 성당 내부 돔 형태의 천장 아래 제대에는 김대건 신부의 아래턱뼈와 척추뼈 등이 안치돼 있다. 대전에서 왔다는 양열석·김희정씨 부부는 “3년에 걸쳐 전국 성지 순례 중”이라며 “크리스마스를 앞둔 주말을 이용해 은이성지, 미리내성지, 구산성지 등을 돌아볼 계획”이라고 했다. 역사적 가치가 있는 김대건 신부 기념 성당은 지난 20일 문화재청으로부터 국가등록문화재 등록 예고 통보를 받았다.
성가곡이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묵주 기도의 길’을 걸어나와 ‘미리내 성 요셉 성당’에 가볼 차례다. 1896년 설립된 이 성당은 강도영 신부와 미리내 신자들이 주변 산과 골짜기에서 주운 자연석과 산에서 채취한 생석회 등을 활용해 1907년에 완공했다. 성당 안 제대 아래엔 김대건 신부의 발가락뼈 유해가 안치돼 있다. 미리내 성 요셉 성당 부근 언덕으로는 무명 순교자의 묘역도 있다. 지 신부는 “박해 방법이 워낙 다양해서 순교자 수를 정확하게 파악하긴 어렵다”면서도 “공식적으로 2만여 명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고 했다. 미리내성지로 가는 길은 ‘미산저수지’ 등 드라이브 코스가 있어 주말이면 나들이를 겸해 탐방하는 이들도 많다. 지 신부는 “순례 시 땅의 역사를 존중하며 다녀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대건 신부의 생애를 이야기할 때 탄생지인 당진 솔뫼성지를 빼놓을 수 없다. ‘솔뫼’는 나무가 우거진 산이라는 뜻. 성지 내엔 고매한 소나무 숲이 겨울을 함께하고 있어 운치를 더한다. 김대건 탄생을 기념하는 기와집 생가 ‘대건당’이 복원돼 있다. 마당에 세워진 기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동상은 2014년 8월 교황이 방한한 것을 기념해 제작됐다. 이달 말까지 성지 내 김대건 신부 기념관에선 영화 ‘탄생’에도 등장하는 조선전도를 주제로 한 전시 ‘김대건 조선을 그리다’를 관람할 수 있다. 포교 활동과 정확한 지리 정보를 위해 김대건이 제작한 조선전도 완성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솔뫼성지에서 차로 5~10여 분 거리에 있는 합덕읍 합덕성당과 신리성지는 솔뫼성지와 함께 ‘버그내순례길’ 코스다. 버그내순례길은 한국 천주교 초창기부터 선교자들의 입국 경로이자 주 활동 무대였던 곳. 지금은 널리 알려져 묵상을 위한 여행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진다. 성 다블뤼 주교관 외에 2014년 조성한 5개의 작은 경당과 기념관 지하 ‘순교 미술관’에선 조용히 명상하며 마음을 비우고 갈 수 있다.
◇'라파엘호’가 닿은 조선의 땅
당진과 함께 서산·아산·홍성·청양 지역 등을 칭하는 내포(內浦) 지역은 수로, 바닷길, 육로가 발달해 천주교 전파 통로가 됐던 곳이다. 영화 ‘탄생’에서 사제가 된 김대건 신부가 페레올·다블뤼 신부 등 일행과 함께 중국 상하이항에서 ‘라파엘호’를 타고 조선 입국을 시도하던 중 풍랑으로 서해에서 표류하다 제주를 거쳐 본래 목적지인 서울 대신 택한 곳이 강경 황산포 나루터(나바위) 부근, 지금의 전북 익산 나바위성지다. 나바위성지는 김대건 신부의 조선 본토 첫 착지처로 의미 있다. 배가 오가던 나바위성지 주변은 일본인들이 간척 사업을 벌여 논밭으로 변한 지 오래지만, 성지엔 이를 기념하기 위한 김대건 순교 기념탑과 라파엘호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1907년 건립된 나바위성당은 서울 명동성당의 설계자인 푸아넬 신부의 설계를 맡았다. 처음엔 한옥으로 지어졌다가 이후 흙벽을 벽돌로 개축하고 고딕식 벽돌로 종탑을 세우면서 한옥과 고딕 양식을 띄는 독특한 건축이 됐다. 성당 내부엔 남녀의 예배 자리를 구분한 기둥이 그대로 남아 있다.
천주교 성지는 아니지만 나바위성지에서 차로 10여 분 거리에 있는 두동교회 구본당도 들러볼 만하다. 일제때 한옥 교회로, 이 지역 기독교 전파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다. 전북 김제의 ‘금산교회’와 함께 ‘ㄱ’ 자 형태 한옥 교회의 원형이 잘 보존된 곳이다.
◇남양성모성지로 건축 순례
성스러움을 담아 짓는 만큼 성당과 교회는 유난히 건축 성지로 통하는 곳이 많다. 성지 순례객들뿐 아니라 건축학도들도 일부러 ‘순례’를 나서는 곳이다. 서울과 비교적 가까운 경기도 화성의 남양성모성지는 병인박해 때의 순교지다. 우리나라 천주교회 내에서는 처음으로 성모 성지로 선포된 곳이기도 하다. 종교적 의미 외에 교보타워, 리움 등을 설계한 스위스의 세계적 건축 거장 마리오 보타의 작품으로 주목받는다. 순교자들을 기리며 기도하는 봉헌실과 야외의 성모 마리아 조각상을 지나면 거대한 2개의 원형 탑이 압도적 위용으로 맞는다. 두 원형 탑 사이엔 종이 설치돼 있어 때가 되면 웅장한 소리로 맞이한다. 수직과 수평이 만들어내는 건축미를 감상하며 언덕을 오르면 반원형의 중정이 나온다. 눈이 내린 후 찾으면 흰 눈과 붉은색 벽돌 건물의 대비가 강렬하게 다가온다.
성당 내부엔 타원형 천장의 틈을 통해 빛이 스며들며 성스러운 분위기를 더한다. 범상치 않은 조각상과 성화(聖畵) 역시 이탈리아 조각가 줄리아노 반지의 작품. 현재 미사를 보는 성당 내엔 임시 의자가 놓여 있는데 이상각 신부는 “마리오 보타가 현재 성당 내 의자까지 직접 만드는 등 공을 들이고 있다”며 “직원들의 월급 정도만 받고 거의 재능 기부처럼 성당 완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했다. 건축물뿐 아니라 화강암 대형 묵주알, 성모동굴 등 이색 탐방 코스다. 대부분의 천주교 성지는 동절기 오후 5시를 전후해 일몰 전까지 탐방 가능하나 일대를 성지로 한창 조성 중인 남양성모성지 성당 내부는 오전 9시 30분부터 미사가 끝나는 11시 30분까지 순례 가능하다.
[ ‘교황 밥상’에 올랐던 솔뫼 ‘꺼먹지’ 요리 먹으러 가볼까? ]
추위 녹이는 성지 옆 맛집 순례
성지 순례 후 맛보는 따뜻한 음식 한 그릇은 영혼과 마음에 온기를 더해준다. 충남 당진 우강면 솔뫼성지 부근 식당 길목은 꺼먹지정식(1만5000원)이 유명하다. 2014년 8월 교황 방문 당시 주목받았던 꺼먹지는 무시래기(무청)를 소금에 절였다 먹는 이 지역 향토 음식. 꺼먹지정식을 주문하면 꺼먹지를 넣은 서리태콩국을 비롯해 꺼먹지나물을 곁들인 보쌈 등을 골고루 맛볼 수 있다. 꺼먹지 자체는 시래기보다는 부드러우면서 짭짤하다. 들깨향이 은은한 콩국은 서양식 수프 같다. 고소하면서 꺼먹지의 간이 느껴져 밥에 곁들이기 좋다. 당시 교황 밥상 구성 메뉴로 꺼먹지 요리를 내놓은 길목 주인은 “꺼먹지는 서민들조차도 흔하다 생각하는 하찮은 재료지만, 귀하신 분들을 대접할 만큼 좋은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걸 알리고 싶어 이를 활용한 요리를 만들었다”고 했다.
미리내성지로 가는 길은 맛집 선택의 폭이 비교적 넓다. 매운탕부터 곰탕까지 뜨끈뜨끈한 메뉴를 내세우는 식당들이 차도를 따라 심심찮게 이어진다. 한옥 카페 더 정감은 통유리창 너머 미산저수지 설경이 그림처럼 걸린다. 수제대추차(7000원) 한잔에 온몸이 녹아내린다. 따뜻한 핫초코(6000원)에 소금빵이나 애플파이도 ‘꿀 조합’이다. 장작불 때는 야외석은 잠시나마 불멍하기 좋다. 근처에 있는 물레방앗간도 미산저수지 전망의 매운탕 전문점이다.
노곡리삼거리 방향으로 가는 길,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은 남이 끓여주는 라면’이라고 내세우는 안성라면집은 이 구역 새내기 맛집이다. 양은냄비에 담아주는 냄비라면(4500원), 황태와 콩나물 등을 넣은 해장라면(7000원), 뼈 추가를 할 수 있는 짬뽕(7500원)이 주메뉴. 크리스피삼겹살(1만5000원)을 ‘사이드 메뉴’로 추천한다. 라면의 인공적인 수프 맛이 덜 느껴지는 이유는 “끓일 때 천연 조미료를 가미하기 때문.” 라면에 콩나물 등 ‘토핑’은 셀프 방식으로 운영한다.
솔뫼성지, 경기도 화성 남양성모성지 등 규모가 있는 성지는 미사에 맞춰 식당을 운영한다. 영리를 위한 식당이 아니기에 예약제로 운영하기도 한다. 대개 국수 등 간단히 먹을 만한 음식을 부담 없는 가격에 판다. 남양성모성지 초입의 식당에서 정오부터 오후 2시까지 맛볼 수 있는 잔치국수(5000원)는 성지 탐방하며 꽁꽁 언 몸을 녹여주는 유일한 음식. 국수에 곁들여 주는 김치가 맛있다. 재료 소진 시 일찍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