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의 닥터카 탑승, 뇌물 수수 혐의를 받은 같은 당 노웅래 의원의 체포동의안 부결로 인해 국회의원 특권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노 의원 체포동의안이 부결 처리된 모습. /연합뉴스

지난 2019년 2월 한 60대 남성이 여의도 국회의사당 잔디밭에 흰색 세단을 몰고 들어갔다. 그리고 차에 불을 질러 분신을 했다. 차량에선 ‘국회의원 특권 폐지하라’는 내용이 담긴 전단 200여 장이 발견됐다. 특권 의식에 빠진 국회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기 위해 시위를 벌이다 전신에 3도 화상을 입는 큰 사고로 이어졌다. 당시 분신 사건보다 사람들을 더 놀라게 한 건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의 한 7급 비서가 분신 시도 남성에 대해 보인 반응이었다. 이 비서는 사건 직후 소셜미디어에 ‘통구이 됐어 ㅋㅋ’라며 조롱하는 댓글을 달았다. ‘국회 세비 루팡’ ‘과잉 의전’ 등 국회의원이 과도한 특권을 누린다는 비판이 나올 때마다 겉으로는 개선하겠다며 목소리를 내면서도 실제로는 반성 없이 특권을 사수하는 데 여념이 없는 한국 의회 정치의 현주소를 보여준 장면이었다.

국회의원 특혜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이 이태원 참사 당일 의료진의 이동 수단인 닥터카에 남편과 함께 탑승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데 이어 뇌물 수수 혐의를 받고 있는 같은 당 노웅래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28일 국회에서 부결되면서 다시 한번 의원 특혜가 적절한지에 대한 공방이 뜨거워지고 있다. 금배지만 달면 200종류가 넘는 특권을 누릴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올 만큼 세계 최고 혜택을 자랑하는 ‘신의 직장’ 대한민국 국회. 한국 정치 발전을 가로막는 국회 특권 문제를 개선할 수 없는 걸까.

셀프 인상으로 이룬 세계 최고 수준 세비

국회의원 특권 중 가장 자주 도마에 오르는 것은 ‘세비’다.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국회의원 1명당 연간 약 1억5426만원(올해 기준)의 수당을 받는다. 보좌진 9명의 인건비, 자동차 유지비·유류비, 출장비 등을 포함하면 매년 의원실 1곳당 들어가는 세금은 5억~6억원에 이른다. 한국 국회의원이 받는 보수는 1인당 GDP(국내총생산) 대비 5.2배(2015년 기준)로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국가 중에서도 일본·이탈리아에 이어 3번째로 높다.

문제는 의원 세비 낭비가 심하다는 점이다. 의원이 의정 활동을 하지 않아도 세비가 매달 꼬박꼬박 지급되기 때문. 21대 국회의원 300명은 지난여름 50일 이상 국회 파행 속에서 단 하루만 출석하고도 1200만원이 넘는 월급을 받아갔다. 당시 이런 문제를 지적하며 세비를 반납한 국민의힘 조은희 의원이 화제가 될 정도. 지난 2014년 내란선동 혐의로 재판을 받느라 1년간 의정 활동을 하지 않은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은 6억2800만원(개인, 보좌진 인건비 등 포함)의 수당을 받았고, 지난해 이스타항공 배임·횡령 혐의로 구속된 이상직 의원은 옥중에서도 수당 2000만원을 챙겼다.

국회의원 특혜 논란은 단순히 돈에 국한되지 않는다. 의원실 소속 비서관은 의원의 약을 대리 처방받거나 의원 자녀의 대입 자기소개서를 대신 써주는 등 집사처럼 일을 봐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의원 가족들은 국회 의원회관 내 병원에서 무료로 의사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정재철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는 “이런 풍족한 특혜에도 한국 국회의 경쟁력은 OECD에서도 매년 최하위를 맴돈다”며 “민간 기업이라면 이런 저(低)성과자들은 정리 해고 0순위인데 국회는 자신들의 특권을 스스로 법제화하는 ‘셀프 발의’ ‘셀프 세비 인상’이 가능하기 때문에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게 아니라 특권층이라는 생각만 강해지는 것”이라고 했다.

자전거 타고 출근하는 유럽 의원들

의회 역사가 오래된 유럽에선 한국과 같은 의원 특권은 찾아보기 어렵다. 국회의원 특권이 가장 적은 국가는 스웨덴. 스웨덴 의원들도 국민 평균 임금보다 많은 수당을 받기 때문에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무보수 명예직’은 아니다. 다만 평균 임금과 차이가 한국의 절반 수준인 데다 우리와 달리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확고히 따른다. 회기 중 회의에 결근하면 빠진 만큼 세비를 받지 못한다. 독일, 덴마크도 마찬가지다.

스웨덴을 비롯해 유럽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은 한국과 달리 의전 차량이나 유류비 지원이 없다. 수행원 없이 자전거, 버스를 타고 국회에 출근하는 게 유럽에선 익숙한 풍경이다. 해외 출장을 갈 때도 가장 저렴한 이코노미석을 이용해야 나중에 비용을 청구할 수 있다. 모든 공무상 식사, 교통 비용 영수증을 국회에 제출하고 초등학생도 이 내용들을 언제든 확인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의 경우 국회의원은 해외에 갈 때 비즈니스석을 무료로 제공받는다. 어떤 의원이 어느 국가를 방문하면서 비즈니스석을 탔는지 기록은 공개하지 않는다. 15년차 국회 보좌관은 “세금 아끼겠다고 이코노미석을 이용하는 의원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스웨덴은 또 개인 보좌관 제도가 없어 1명의 정책보좌관이 4명의 의원을 보좌한다. 의원 사무실에 전화를 받아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국회의원이 직접 전화를 받고 개인 일정을 관리한다.

상대적으로 적은 특권 때문에 유럽 국회의원은 ‘극한 직업’으로 통하지만 일은 더 열심히 한다. 스웨덴 의원당 평균 발·의안 수는 4년 임기 동안 100개가 넘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지난 2015년 OECD 국가 의회 경쟁력 조사에서 노르웨이, 스웨덴, 스위스 등 유럽국이 1~3위를 차지했다. 한국은 27국 중 26위였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스웨덴이나 다른 유럽 국가들과 한국의 의회 시스템을 단순 비교하긴 어렵지만 쓸데없는 혜택을 줄이고 의정 활동 효율성을 높인 점은 분명 배워야 할 점”이라고 했다.

특권 지킬 때만큼은 與野 합심하는 한국

국회의원 특혜를 폐지, 축소하자는 목소리는 선거 때마다 나온다. 하지만 실제 제도화된 경우는 거의 없다. 지난 19대 국회에선 65세 이상 전직 의원에게 월 120만원을 지급하는 의원 연금을 폐지했다. 이마저도 국민 여론에 떠밀려 법을 개정한 것으로 18대 국회의원까지는 연금이 지급돼 여전히 300명 정도가 이 혜택을 누리고 있다.

국회에선 특혜 비판이 제기돼도 이를 없애기는커녕 오히려 강화한다. 안홍준 새누리당 전 의원은 2015년 외교관 여권 발급 대상에 국회의원을 포함시켜 해외에서도 면책특권을 누릴 수 있는 내용 입법을 추진했고, 2020년 김성원 미래통합당 전 의원은 국회의원을 현충원 안장 대상자에 포함하는 법안을 발의해 비판을 받았다. 두 법안은 처리되지 못했다.

가장 큰 국회 특권인 불체포 특권, 면책 특권을 폐지하거나 축소하자는 논의도 수년째 진전이 없는 상황. 현직 의원은 현행범이 아닌 한 회기 중 국회 동의 없이 체포·구금되지 않는다는 불체포 특권은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어 이를 손보려면 개헌을 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면서 여야 모두 특권을 내려놓지 않는 것이다. 위법 사안에 대해 국회 밖에서 형사·민사적 책임은 지지 않더라도 국회가 자체 징계를 내릴 수 있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권성동(피감기관장 모욕), 남인순(성폭력 2차 가해) 등 여야 의원 30여 명이 국회 윤리위에 회부돼 있지만 18대 국회부터 현재 21대 국회까지 윤리위에서 가결된 징계안은 2건(2011년 강용석, 2015년 심학봉)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무작정 국회 특권을 없애는 ‘국특완박’(국회의원 특권 완전 박탈) 식으로 모든 특혜를 없애기보다 제대로 일할 수 있게 권한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의원 특혜 제도를 손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일 안 하니까 월급 안 준다’가 아니라, 일만 제대로 하면 혜택받아도 된다는 전제가 필요하는 것. 김황식 전 국무총리는 “독일에도 국회의원 면책특권이 있지만 비방적, 모욕적 행위에 대해서는 인정이 안 되고, 대법원 민사 판결에서도 명백히 허위·고의에 의한 것은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 판례가 있다”며 “이번 기회에 국회뿐 아니라 국민들의 의견을 모아 국회의원 특권을 합리적인 수준에서 조정하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