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첫 우주 탐사선 ‘다누리’가 달 임무 궤도 진입에 성공했다. 지난 8월 5일 발사된 다누리는 4개월이 넘는 긴 항행 끝에 지난 17일 달 궤도에 도착한 뒤 세 차례 역추진 기동을 통해 달 상공 100㎞ 궤도에 안착했다. 이제 약 2시간 주기로 달의 남극과 북극을 통과하는 원 궤도를 돌며 1년 동안 달의 자원과 착륙선 착륙 후보지를 탐색한다. 다누리의 성공으로 세계 7번째 달 탐사국 지위에 오른 우리나라는 2031년 달 착륙선을 보낼 계획이다.
한국은 다른 국가들과 비교하면 달 탐사 사업에선 한발 늦은 편이다. 미국, 유럽 등 우주 강국들은 이미 민간 기업들까지 달 탐사에 뛰어들며 ‘문 러시’(Moon Rush)를 벌이고 있다. 유인 달 탐사 프로젝트 ‘아르테미스’를 추진하고 있는 미국은 최근 무인 탐사선 오리온을 달 궤도에 보냈다. 오리온은 한 달간 비행을 마치고 지난 11일 무사 귀환했다. 같은 날 일본의 민간 기업 아이스페이스는 아랍에미리트의 달 탐사로봇 ‘라시드’를 탑재한 달 착륙선 ‘하쿠토’를 발사했다. 2019년 세계 최초로 달 뒷면 착륙에 성공한 중국은 2030년 이전에 달 유인 탐사와 달 기지 건설을 성공시킨다는 목표를 세웠다.
달을 향한 인류의 도전이 본격화되면서 1969년 아폴로 11호가 처음 도착한 ‘고요의 바다’라는 착륙지의 이름이 무색해질 만큼 달은 앞으로 상당히 시끌벅적해질 것으로 보인다. 향후 10년 이내 각국 정부와 민간기업의 착륙선과 로봇, 달 기지 등 인간의 손때가 묻은 인공물들이 달 표면을 잠식하기 때문이다. 1959년 9월 13일 달 표면에 보내진 첫 인공물인 구소련의 루나 2호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지구에서 달로 가져간 인공물의 질량이 170톤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달에 남겨진 인공물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아폴로 11호를 탄 우주인 3명이 달 표면에 내렸던 착륙지에는 달 착륙선 이글호의 하단부가 그대로 남아 있다. 아폴로 11호는 사령선인 컬럼비아호와 착륙선 이글호로 이뤄졌다. 이글호의 하단부는 달 궤도선이 촬영한 고해상도의 달 표면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영상으로는 식별이 안 되지만 달에는 미국 성조기, 전 미국 대통령과 73국 정상의 성명이 담긴 실리콘 디스크, 화재로 사망한 아폴로 1호 우주비행사 3명을 추모하는 황금 올리브 가지와 같은 상징물 외에도 우주비행사 신발 덮개, 음식 포장지, 망치 등 우주 탐사 과정에서 버려진 물건을 포함해 106개의 인공물이 남겨져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달 표면에 남겨진 인공물이 달 표면에 있는 동안 어떻게 변하는지는 엔지니어와 과학자에게 큰 관심거리다. 낮에 섭씨 130도, 밤에 영하 130도까지 떨어지는 달의 온도 변화와 먼지, 미세 유성체, 태양 복사 등이 음식, 페인트, 나일론, 고무, 금속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폴로 착륙지는 인간이 만든 시스템이 극한의 달 환경에서 50년 이상 장기간 노출될 경우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지 확인하고, 추후 달 식민지를 설계하는 데 필요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인 셈이다.
과학자들만큼이나 고고학자들도 달에 남겨진 인공물들에 대한 관심이 크다. 고고학이라고 하면 선사시대나 그리스의 유적지 연구 같은 고대 문명에 대한 연구가 떠오르지만, 인간의 모든 물질 문명의 역사를 대상으로 확장하면 우주 탐사의 흔적 역시 고고학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우주 탐사 유산을 연구하는 고고학자들은 우주를 인류문명이 새로이 만든 문화 공간(cultural landscape)이라고 설명한다. 이들은 지구 중력을 정복한 인류 문명의 독특한 역사를 담고 있는 인공물은 유산으로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지난 2007년 구글이 달 착륙에 처음 성공하는 민간 기업에 2000만달러의 상금을 건 루나 엑스 프라이즈 대회를 열었을 때 심각한 우려를 제기했다. 민간 기업들이 달 탐사를 서두르다 보면 자칫 아폴로 착륙지에 남겨진 인류의 유산을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NASA는 2011년에 과학자, 법률가, 공무원, 고고학자와 박물관 학예사로 구성된 대응팀을 조직해 민간 기업의 달 탐사 사업에 필요한 권고안을 마련했다. 권고안에는 아폴로 프로젝트의 처음과 마지막인 11호와 17호 착륙지를 보존할 가치가 있는 유적지로 선정하고, 로켓이 달 표면에 착륙할 시 배기가스로 인해 닐 암스트롱의 달 표면 첫 번째 발자국이 지워지지 않도록 최소 2㎞ 밖에 착륙해야 한다는 등의 가이드라인이 담겼다.
2020년 12월 31일, 미국 의회는 이 권고안을 국가법으로 전환한 ‘작은 한 걸음 법’(One Small Step Act)을 통과시켰다. 닐 암스트롱이 달 표면에 처음 발자국을 남기며 했던 “인간에게는 한 걸음에 불과하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라는 명언의 한 구절을 딴 이 법은, 지구 밖 문화 유산의 가치를 인정한 최초의 법이다. 물론 미국 국내법이어서 국제 사회 구속력이 없고, 자칫 국제적으로 달 영토에 대한 소유권 논쟁으로 확대될 우려의 소지가 있다는 점은 현재 논의의 한계다.
인류는 공통된 문화 유산의 보편적 가치를 인식하고 이를 보호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 미국의 제임스타운 식민 유적지, 인도의 타지마할, 탄자니아의 인류 최초 원시적 동굴 벽화에 이르기까지 인류 문명의 찬란한 업적은 국경을 넘어 공동의 유산으로 보호해 왔다. 지금까지 달에 남겨진 유산들에 대한 보존 문제는 계속되는 국가 간 탐사 경쟁과 상업적 이익을 목표로 하는 기업의 이해 상충이라는 도전에 직면할지도 모른다. 2031년 달 착륙을 목표로 한 한국도 고민해야 할 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