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프로그램 ‘캐나다 체크인’에서 이효리가 해외로 입양 보낸 유기견 ‘산’이와 재회하는 장면. 산이는 자신을 3개월간 돌봤던 이효리를 보고 세차게 꼬리를 흔들었다. /tvN

“산이가 처음 보는 사람을 이렇게 좋아하나요?”

지난해 6월 캐나다로 입양된 보더콜리 믹스견 ‘산’이가 자신에게 와락 안기며 쉴 새 없이 꼬리를 흔들자 이효리가 묻는다. 그러자 캐나다인 주인이 대답한다. “보통 이 정도까지는 (사람을) 안 좋아하는데…. 당신이 특별한가 봐요.” tvN 예능 ‘캐나다 체크인’에서다.

‘산’이는 지난해 3월 이효리가 제주도 어느 밭에서 구조해 임시 보호하다 캐나다로 입양 보낸 유기견. 이효리는 지금까지 20~30마리의 유기견을 산이처럼 구조해 해외로 입양 보냈다고 한다. ‘캐나다 체크인’은 이효리가 입양 보낸 개들을 만나기 위해 캐나다로 떠나는 여정을 담은 예능 프로그램. 방송에 나온 모든 개는 임시 보호자였던 이효리를 알아보는 듯하다. 단 한 마리도 으르렁대거나, 발톱을 세우지 않는다. 대신 프로펠러처럼 꼬리를 흔들며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고작 수 개월 간 임시로 보호해 준 주인임에도 그렇다.

농림축산검역본부 반려동물 보호·복지 실태 조사에 따르면 2021년 우리나라에서 전국 동물보호센터를 통해 구조·보호된 유실·유기 동물은 약 12만마리다. 이 중 32.1%만 새 가정을 찾았고, 25.8%는 자연사했으며, 15.7%는 안락사했다. 12만마리 중 3만8000마리 정도만 새 가정을 찾았다는 이야기다. 이 중 몇 마리가 해외로 갔는지는 알 수 없다. 제대로 된 통계조차 없기 때문이다. 같은 기간 2만3278마리의 개가 해외로 ‘수출’됐으나(농림축산검역본부 수출입 동·축산물 검역 현황), 그중엔 유기견뿐 아니라 품종견 등 여러 개가 섞여 있어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긴 어렵다. 가장 많이 수출된 국가가 미국(1만5165마리), 캐나다(3037마리) 정도라는 점만 짐작할 뿐이다. 한국에서 태어난 개들은 어쩌다 비행기를 타고, 9000㎞ 떨어진 타국까지 가게 됐을까.

◇진돗개가 한국을 떠나는 현실

“믹스견이거나 대형견이거나 혹은 둘 다이거나.”

지난해 동물권 단체 ‘케어’에서 일하며 100마리의 개를 해외 입양 보낸 송 그레이스 활동가는 한국을 떠나는 개의 특징으로 이 두 가지를 말했다. “아무래도 한국에선 품종견에 대한 선호가 높다 보니, 믹스견은 국내 입양이 거의 이뤄지지 않아요. 특히 큰 개는 한국에서 키우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 가장 많이 입양 보내지는 개가 ‘진도 믹스견’입니다. 참, 아이러니하죠?”

품종견은 순수하게 같은 품종의 핏줄만 이어받은 개를 말한다. 우리가 흔히 보는 작고 귀여운 외모의 소형견들이 그렇다. 믹스견은 그 반대. MZ세대가 믹스견을 익살스럽게 표현하는 말 ‘시고르 자브종’을 들으면 이해가 쉽다. ‘시골 잡종’을 풀어서 표현했다.

미국이나 캐나다 등에선 품종견도 많이 키우지만, 믹스견도 편견 없이 좋아한다. 부정교합이 있는 개를 보면 한국에선 ‘못생겼다’는 반응이 나오지만, 해외에선 ‘특이하다’며 오히려 좋아한다. 대형견 역시 마찬가지. 대형견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환경 조성도 잘돼 있다. 대형견이 목줄 없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펜스로 구분해 놓은 공간 등이 대표적이다.

결국 국내에서 입양처를 찾기 어려운 믹스견, 대형견이 자연사나 안락사하기 전 마지막으로 가질 수 있는 희망이 해외 입양인 셈이다.

◇인천공항엔 ‘통곡의 벽’ 있다

해외 입양 절차는 이렇다. 먼저 개인 구조자나 한국 동물 보호 단체들이 구조한 개의 프로필을 해외 단체에 보내, 입양 가정을 구한다. 쉼터가 갖춰진 해외 단체로 보내는 경우도 있다. 일부 해외 단체는 식용 목적의 개 농장에서 구출한 한국 개만을 입양하기도 한다.

유기견들은 대개 건강 상태가 좋지 않고, 사람의 손길을 무서워한다. 이런 유기견들을 임시로 맡아 보호하는 사람들이 ‘임시 보호자’다. 이효리가 맡았던 역할이다. 이들은 개들이 무사히 입양되기까지 임시로 맡아 기르며, 개들의 건강을 돌보고 사회성 함양에 도움을 준다. 마치 영아가 입양되기 전 위탁 가정에서 일정 기간 생활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들은 “이미 기르는 개가 많거나” “더 많은 개를 임시 보호하기 위해” 같은 이유로 입양까지 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인천공항엔 ‘통곡의 벽’이 있다. 많은 임시 보호자가 개를 입양 보내며 출국장 앞에 서서 하염없이 운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효리의 표현대로라면 “내가 맡아 기르지 못하는 미안함, 다시 못 보게 되는 서운함”에 운다.

비행에는 ‘해외 이동 봉사자’들이 함께한다. 개가 혼자서 갈 경우 수백만 원을 내야 하지만, 해외 출국자가 개를 동반할 경우, 30만~50만원 정도만 내면 된다. 이 비용도 입양 단체가 부담하기 때문에, 봉사자가 낼 돈은 없다.

◇해외 입양 가는 일 없어지길

30대 후반 직장인 김민주씨는 지난 6월 미국 LA까지 개 두 마리의 이동을 도왔다. 한 마리는 개 농장에서 구조됐고, 또 다른 한 마리는 다리를 수술받은 대형견. 김씨는 “미국에 도착해 새 가족과 만나는 개들의 모습은 내 인생에서 꼭 기억하고 싶은 순간으로 남았다. 아무런 대가 없이 봉사하며, 동물을 사랑하고 아끼는 분이 많다는 걸 직접 체험하게 돼 가슴이 따뜻해지는 순간이었다”고 했다. 지난 4월 남편과 함께 미국 뉴욕으로 개 4마리의 이동을 도운 이정희(34)씨도 “나 역시 유기견을 입양해 키우기에 이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알고 있어 주저 없이 신청했다”고 말했다. 배우 이기우, 유연석 등도 이동 봉사 단골손님이다.

유기견의 해외 입양을 위해 이동 봉사를 하는 배우 이기우. 그는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이 사진을 올리고 "출국 전 30분, 도착 후 30분. 나의 한 시간이 유기견을 기다리는 가족에겐 평생의 선물이 될 수 있다"고 썼다. /인스타그램

송 활동가는 “지난 3년간은 코로나로 인해 해외 입양 보내기가 정말 어려웠다”며 “매번 버려진 개들은 구조해도 끝이 없고, 입양엔 한계가 있으니 좌절감을 느낄 때도 많았다”고 했다. 해외로 간 개들이 좋은 가정을 만나 잘 지낸다는 소식만이 이들에게 한 줌 위안이 된다. “어떤 해외 입양자는 매년 크리스마스에 강아지 소식을 보내 주세요. 정말 기쁘죠. 하지만 해외 입양 갈 일이 없으면 좋겠어요. 어쨌든 타지잖아요. 새해엔 국내 입양이 더 늘고, 유기·학대당한 동물을 보호해 줄 수 있는 법이 생겨나길 바랍니다.”